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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초부자 상속세안 부결
이미 시행 중인 상속세와 겹쳐
스위스 부유세 시행 3국 중 하나
모든 순자산의 1% 내외 매년 과세
주식 미실현 수익에도 예외 없어
韓 배당소득 최고세율 주식부자들
소수 지배지분 유지하려면…
스위스 친부자 정책도 도입 힘들 듯

스위스가 최근 국민투표에서 초부자 상속세안案을 부결시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지방세인 상속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자본 과세에 가장 관대한 나라 중 하나이지만, 전체 자산에 부유세를 과세하는 3개 나라 중 한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년간 자본 과세 완화로 시끄럽다. 우리가 ‘부자들의 나라’ 스위스만큼이라도 조세 정의를 지킬 수 있을지 알아봤다.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초부자 상속세 안건이 부결됐다. 베른주에 있는 스위스 연방 국회의사당. [사진 | 뉴시스]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초부자 상속세 안건이 부결됐다. 베른주에 있는 스위스 연방 국회의사당. [사진 | 뉴시스]

상속받은 재산이 914억원(5000만 스위스프랑)을 넘는 초부자에게 단일 세율 50%인 상속세를 추가로 부과하자는 세법 개정안이 지난 11월 30일(현지시간)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스위스는 세법 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는 나라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43.0% 중에서 78.3%가 스위스 청년사회주의자당이 제안한 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벤야민 뮐레만 자유급진당 공동대표는 “유권자들이 우리 경제와 번영을 우려한 결과”라는 자의적 해석을 내놨다. 스위스 내에서 부유층의 해외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스위스 국민들은 2009년 루체른 주정부가 세율을 내리자, 베른 주정부에서 부자들이 대거 이주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스위스판 한국경제인협회인 이코노미스위스는 공영매체 스위스인포에 “강력한 가족기업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재미있는 말을 했다. “스위스 유권자는 중앙정부 수준의(national-level) 상속세를 따로 원하지 않는다.”

스위스에는 이미 상속세가 존재한다. 연방국가인 스위스에서 지방정부가 이미 상속세를 걷고 있는데, 일부 부유층 대상이라고 해도 중앙정부가 또 세금을 걷겠다면 저항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이 연방 상속세는 기후 보호를 위해 써야 하는 목적세라는 점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징벌적인 이중 세금을 단일 세율로 걷지 않아도 복합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스위스에서 추가 상속세는 이상한 세금일 수밖에 없다. 스위스는 낮은 세율로 최대한 많은 사람의 상속 재산에 과세하는 나라다. 수도인 베른의 경우 상속 재산이 2193만원(1만2000스위스프랑)만 넘어도 1% 세율로 상속세를 낸다. 대신 최고세율은 상속 재산 73억원인 경우 2.5%로 낮다.

우리나라가 2005년 부동산 보유세인 재산세 외에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부동산에 과세하는 세금을 이중으로 신설하지 않고, 보유세 최고세율 구간을 조정했으면 될 일이었다. 우리 정부가 종부세 세율을 올릴 때마다 벌어지는 조세저항을 생각해 보면 스위스 사람들의 반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스위스는 원래부터 부자들의 나라였다. 다른 나라보다 부자가 많고, 자본과 금융 소득에 굉장히 관대하다. 미국의 부유층 전문 컨설팅회사 노마드 캐피탈리스트도 “스위스는 여전히 조세 피난처”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스위스의 느슨한 듯한 과세 정책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부유세의 존재다. 스위스는 스페인·노르웨이와 함께 지금도 부유세를 부과하는 3개 나라 중 하나다. 대부분 유럽국가가 차례로 없앴다가 조세저항에 부닥쳐 다시 입법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세금이다. 우리로 치면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존재다.

[자료 | 스위스 베른 주정부, 사진 | 뉴시스]
[자료 | 스위스 베른 주정부, 사진 | 뉴시스]

부유세는 납세자의 모든 자산을 대상으로 매년 부과하는 재산세다. 스위스 국민은 부동산, 요트, 그림, 비트코인, 주식, 해외 재산을 포함한 모든 순자산 가치의 1% 내외를 매년 부유세로 내야 한다. 토마 피케티, 가브리엘 주크만 등이 주장하는 글로벌 초부자세 최고세율이 2%인 것에 비교하면 스위스 부유세는 절대 가볍지 않다.

부유세는 스위스 세금 수입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대략 1.16%에 해당하고, 전체 세금 수입의 무려 4.26%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친 게 2023년 기준 14조6000억원인데, 이 정도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다. 스페인 부유세의 세수 비중은 0.57%고, 노르웨이 부유세 비중도 1.48%에 불과하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부자들의 사금고 역할을 한 스위스인 만큼 여전히 어느 나라보다 자본 이득에 관대하다. 올해 개인투자자가 스위스 주식시장에서 주식·펀드에 투자해 1000원을 벌든 100억원을 벌든 금융투자소득세로 단 1원도 내지 않는다. 전문 트레이더는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그마저도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하거나 연간 거래량이 주식 자산의 5배를 초과하지 않으면 개인 투자자로 분류해 비과세 대상이다.

스위스의 친자본 과세 정책에도 조세 정의의 희미한 선은 존재한다. 부유세가 그렇고, 주식을 보유한 데서 추가로 얻는 이득인 배당소득세 탕감 과정이 그렇다. 스위스에서 배당받으면, 개인이든 회사든 상관없이 배당소득의 35%를 원천징수하고 남은 금액만 받는다. 세금 신고를 정확하게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지 돌려받을 수 있다. 스위스 연방세무청은 정직한 신고라는 유일한 조건을 충족하면, 배당소득 원천징수금 100%를 환급해 준다.

부유세는 이 모든 느슨한 자본 과세를 어느 정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주식을 팔지 않아도 매년 주가가 오르면, 주식의 미실현 수익에 과세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제네바에 사는 한 투자자의 순자산이 73억원(400만 스위스프랑) 이상이어서 부유세 최고세율 0.84%를 적용받는다고 치자. 보유한 주식의 시장 가치가 올해 3.20% 증가했다면, 이 투자자는 주식 미실현 이익의 약 25%를 부유세로 내야 한다.

그런데 스위스의 징벌적인 추가 연방 상속세가 좌초되자 엉뚱한 이들이 환호했다. 전 세계 경제 매체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위스는 부자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사설까지 썼다. 사설은 스위스의 친자본 과세를 부유세가 어느 정도 교정해 주고, 징벌적인 추가 상속세를 원하지 않는 상황은 설명하지 않았다. 스위스 사람들은 부자가 외국으로 도망가는 게 무섭다는 둥 기후 자금을 마련해 봤자 도움도 안 된다는 둥 억지 주장만 있었다.

[자료 | 스위스 제네바 주정부, 사진 | 뉴시스]
[자료 | 스위스 제네바 주정부, 사진 | 뉴시스]

스위스가 부자를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 대다수 서민도 부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평범한 서민이 원망하는 것은 따로 있다. 법을 어겨가며 부를 축적했는데 조세 정의가 지켜지지 않을 때, 이 막대한 부를 법을 고쳐가며 후손에게 넘겨줄 때, 그럼에도 정작 국가 경제발전에는 도움이 안 될 때다. 서민들은 사회의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최소한의 조건인 기회를 잃었을 때 사회를 원망한다.

자본친화적 정책을 대거 선보이고 있는 현 정부가 스위스의 과세 정책을 그대로 도입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보유한 주식의 미실현 수익 상당 부분을 매년 부유세로 과세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성실 납세 신고를 조건으로 배당소득의 35%를 원천징수한 후 돌려주는 무척 관대한 과세 정책도 시행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이 합의해 곧 신설할, 배당소득세 최고세율 30% 구간의 주식 부자들 때문이다. 부유세 세율이 아무리 낮아도, 이들의 소수 지배지분으로는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기 힘들다. 우리가 가장 자본친화적인 ‘부자들의 나라’ 스위스만큼도 초부자들에게 과세하기 힘든 배경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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