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38편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미술사 새 지평 연 작품
다각적으로 분해와 재결합
5명의 직업여성들과 과일
달콤한 사과는 원죄에 빗대
무분별한 원초적 본능 비판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채,  244×264㎝, MoMA. [그림 | 뉴욕현대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채,  244×264㎝, MoMA. [그림 | 뉴욕현대 미술관]

19세기 화가들은 표현과 조형에 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연구해 회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했다. 나폴레옹 군대의 참상을 고발한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에서 시작된 작가의 높은 현실 참여 정신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거쳐, 쿠르베의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선생님’으로 이어졌다. 

이들 작품엔 화가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투영돼 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야기한 정치적 혼란과 빈부 격차 등 새로운 현실에서 힘들어하는 시민의 고통을 공감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의 정체성도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직시한 그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로 현실의 도덕적 타락과 위선을 경고했다. 그래서 마네는 많은 파리의 지식인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마네가 자신들의 부끄러운 면을 노출해 화가 났던 거다. 

드가의 작품 ‘발레 교실’도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작품 속 구석에 앉은 정장 입은 남성은 마네가 비판한 이들과 같은 부류인데, 드가는 그림을 통해 이들을 질타하고 있다. 

20세기 들어서도 많은 작가가 마네와 드가의 비판 의식을 이어갔다. 그중엔 파블로 피카소도 있었는데, 대표 작품은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이는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다. 인상파 작품이 등장했을 때의 놀람을 여기에 빗대면 놀람도 아니다.

피카소의 친구들까지 혀를 내둘렀으니, 그 파격성을 짐작할 만하다. 조르주 브라크만이 피카소의 난해하고 기이한 그림을 이해하려고 관심과 노력을 보였다고 한다. 부라크는 피카소와 함께 새로운 화풍 입체주의(큐비즘)를 추구한 화가다. 이들은 서양 미술의 기본 원리인 원근감과 입체감, 그리고 사실감을 무시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혁신을 넘어선 파격이었다. 

피카소는 인상주의 화가 세잔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세잔은 모든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고, 그림 속 사물의 시점을 다각화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를 피카소가 받아들여 사물을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조형을 창출했다. 그 개념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첫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은 1907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피카소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그림은 평면화하고, 기하학적 도형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사물의 형태는 다각적 시점으로 분해하고 재결합했다. 그리하여 형태는 강렬하고 날카롭고 자극적이다. 그림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모두 다섯명의 나체 여인이 등장한다. 오른쪽 두 여인은 가면을 쓰고 있다. 발 아래쪽엔 과일이 있다.

무슨 뜻일까. 주어진 형상과 상징으로 이 작품의 개념과 주제를 읽어보자. 우선 제목에 담긴 ‘아비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세 교황청이 잠시 있었던 남프랑스의 그 아비뇽이 아니다. 스페인 뱃사람들이 즐겨 찾던 바로셀로나의 사창가 아비뇽 거리를 의미한다.

조르주 브라크만, 에스타크의 나무들. [그림 | 위키피디아]
조르주 브라크만, 에스타크의 나무들. [그림 | 위키피디아]

그림 속 여인들은 직업 여성들이다. 누드의 다섯 여인은 원색적이고 원초적이다. 아프리카와 옛 리베리아의 가면 같은 도구로 얼굴을 가렸다. 원시의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는 가면은 원초적이고 원시적 본능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가면은 본심을 가린 가식일 수도 있다. 다섯명의 여인은 다양한 얼굴로 본능적 인간의 욕구를 상품화하고 있다.

아래에 보이는 과일은 포도와 사과, 망고, 수박쯤으로 읽힌다. 서양 미술에서 과일이 등장하는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개는 노화 또는 죽음과 관련이 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의 시들고 썩어감을 빗대 늙음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사과는 인류의 원죄를 뜻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무분별한 원초적 본능을 사고파는 행위를 경고하면서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는 그림을 완성하고 피카소가 이야기했다는 “나는 이제 형태를 넘어 본질로 향한다”의 의미이기도 하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무수한 메시지와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날카롭고 함축성 있게 표현한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 이 파격적 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을 만하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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