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투데이 이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대담
“AI 시대, 화폐도 소프트웨어처럼”
스테이블 코인, 우선 은행 중심 도입
완전 자유화 신중, 사회적 합의 필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 논란에 입을 열었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막는다는 것은 오해다.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와야 한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한국 금융시스템에도 AI 간의 초고속·자동거래가 가능한 프로그래밍된 화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총재의 말은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스템이 도입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5일 열린 ‘제4회 대한상공회의소-한국은행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지금의 화폐 시스템이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AI가 에이전트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결제를 실행하는 경우가 계속 출몰할 것”이라며 “AI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이 총재는 기존 금융 인프라로는 AI 경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그는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자동으로 거래를 실행하면 사람이 하나하나 (중간에) 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화폐에 프로그래밍을 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금처럼 프로그래밍 불가능한 기존 화폐 체계는 곧 한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금이 오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프로그램을 넣을 수 없는 형태의 화폐가 통용되는 시기도 곧 끝날 것”이라며 AI가 스스로 거래를 처리하는 세계에서는 화폐 자체가 소프트웨어처럼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해법으로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을 제시했다. 그는 “화폐가 프로그래밍 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은행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당분간 그런 수요에 대응하자는 게 우리 견해”라고 말했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고, 초기에는 은행을 중심으로 안전한 구조에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한편에서 제기된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막는다는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이걸 막자는 것이 아니라, 화폐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되 다른 제도까지 좀 보면서 가자는 견해”라고 설명했다.
다만 첫 단계에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 총재는 “왜 은행이 먼저냐 하면 규제가 있고 감시 장치가 있기 때문”이라며 “은행을 통해 KYC(고객확인)와 AML(자금세탁방지)을 확인한 뒤, 이게 되는 걸 봐서 비은행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자금 이동 경로가 빠르고 국제 거래가 쉬워 자금세탁 위험이 큰 만큼, 우선적으로 금융 규제 체계가 이미 갖춰진 은행을 발행 주체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테이블코인을 은행에서 벗어나 완전 자유화하자는 주장에는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사회 엘리트가 굉장히 많은 자산을 해외에 갖고 있던 나라들은 우리만큼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면서 “금융이 빨라지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아무리 만들어지더라도 우리가 이런 규제를 가질지 안 가질지 그런 사회적 공감대 하에서 이런 기술 발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0%대로 내려가고 이 상태가 5년 후 쯤 되면 거의 마이너스로 내려갈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5년 안에 어떻게 하든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서라도 성장하도록 경제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70년에 걸쳐서 이뤄왔던 성장 신화가 다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위기감을 나타냈다.
최 회장은 “AI라는 것이 여태까지 쓰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아이템을 잘 다뤄서, 결국은 성장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일이 되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 AI를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중요한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봄 더스쿠프 기자
sp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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