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라쇼몽羅生門❷

영화 ‘라쇼몽’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빠지는 ‘거짓’의 함정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유래된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는 이후 학술용어로 철학ㆍ해석학ㆍ심리학 등 학문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뤄진다. 라쇼몽 효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자의 기억이 엇갈리면서도 각각 개연성을 갖게 되는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론을 말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 기묘한 존재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라쇼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미개한 원숭이’로 조롱하고 혐오했던 서구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영화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던진 ‘거짓’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은 당시 서구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듯하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념비적 일본 영화가 됐다. 

아내를 데리고 숲을 지나던 한 사무라이가 산적에게 살해당한다. 무슨 영문인지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은 모두가 다른 진술을 한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은 결국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의 진술에 의해 그들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심지어 무당이 어렵사리 불러낸, 살해당한 사무라이의 원귀寃鬼마저 거짓을 말한다. 우리네 ‘전설의 고향’에서는 적어도 원님 앞에 나타난 원귀들은 절대 거짓을 고하지는 않는데 일본은 원귀들까지 거짓말을 하는 모양이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거짓말은 본능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변치 않는 본능이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거짓말 한두번 안 하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거짓’을 말하고 있는 대단한 ‘거짓말쟁이’임에 틀림없다. 

2015년 캐나다 맥길 대학의 심리학자인 빅토리와 탈와(Victoria Talwar)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세살 무렵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며 여섯살 무렵이면 95%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말을 배우면 바로 거짓말부터 하는 셈이다. 

미국 최고의 ‘거짓말 전문가’라는 매우 특이한 타이틀 보유자인 파멜라 메이어(Pamela Meyer)는 저서 「거짓말쟁이 찾아내기(How to Spot a Liar)」에서 “인간은 하루에 10~200회 정도의 거짓말을 하며, 특히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최초 10분 동안은 평균 3회의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맞선이나 면접은 거짓말의 향연이 될 수밖에 없겠다. 이쯤 되면 “그가 말하는 그가 그가 아니라 그가 감추는 그가 바로 그다”라는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냉소가 냉소만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라쇼몽 효과는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론을 말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라쇼몽 효과는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론을 말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라쇼몽은 단순히 인간이 숨쉬듯 해대는 거짓말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다. 산적 다조마루나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 그리고 목격자 모두 자신들의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하나의 ‘사실’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혹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해석하고 그것이 그 사건의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아마도 이들 모두 거짓말 탐지기마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겠다.

로버트 앤더슨 카네기멜론대(심리학)교수에 따르면 ‘라쇼몽 효과’란 하나의 복잡하거나 애매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요구되는 ‘인식의 틀’이나 ‘사고와 아는 것’ 그리고 ‘기억의 틀’을 말한다. 우리의 인식이나 기억은 자신이 설정해 놓은 ‘틀(frame)’ 밖의 모든 정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누락시켜 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필요에 따라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 기묘한 존재들이다. 

라쇼몽 효과는 또한 반드시 인식상 오류에서 발생하는 것만도 아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 내리기엔 모두 그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정확하거나 오도된 진술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그 사건을 한쪽으로 결론 내고자 하는 사회적 압력이 강할 때 그 진술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림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대형 사건들의 재판 결과가 라쇼몽 효과에서 자유로운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진=뉴시스]
대형 사건들의 재판 결과가 라쇼몽 효과에서 자유로운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진=뉴시스]

과거 왕조시대에 수없이 일어났던 소위 ‘역모 사건’들의 결말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빨리 역적으로 몰아 처형해야만 나라가 편할 수도 있다. 꼭 왕조시대가 아니어도 숱한 쿠데타나 국가전복 음모 사건들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폴레옹은 “역사란 사람들이 동의한 거짓말의 집합체(History is a set of lies agreed upon)”라고 정의한다.

아마 히틀러의 조롱처럼 “큰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If you tell a big enough lie and tell it frequently enough, it will be believed)” 되기 때문인 모양이다. 오늘 신문 지면을 통해 접하는 수많은 대형 사건들의 재판 결과는 과연 라쇼몽 효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들일까. 왠지 썩 미덥지 못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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