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지는 코리빙 시장

2012년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셰어하우스 사업이 시작된 후 ‘함께 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엔 최초의 기업형 코리빙 업체가 등장했고, 최근엔 대기업과 사회주택업체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흥미로운 건 코리빙 업체들의 사업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는 거다. 입주민끼리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어낸 코리빙 업체까지 등장했다.
 

대기업부터 사회주택까치 최근 3년간 코리빙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부터 사회주택까지 최근 3년간 코리빙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뜩이나 내집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데 무심한 집값은 끝없이 오르고 있다. 낯선 이와 집을 공유하는 ‘코리빙’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새집을 사긴 어렵고 좋은 집에 살자니 돈이 모자란 청년 세대에게 코리빙은 알맞은 해결책처럼 보였다. 
셰어하우스 플랫폼 ㈜컴앤스테이에 따르면 2017년 487채였던 코리빙 주택은 2018년 772채, 2019년 상반기 1020채로 늘며 연평균 45%씩 늘어났다. 첫 시작은 다세대 주택을 중심으로 개인이 운영하던 형태였지만 최근 2~3년간 코리빙 시장에 가세하는 대기업까지 생기면서 상품도 다양해졌다. 

■ 극소수를 노려라 = 국내에서 기업 단위로 코리빙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건 코오롱글로벌(자회사 코오롱하우스비전)이다. 이 회사가 코리빙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요 상품은 압구정ㆍ청담ㆍ한남ㆍ여의도 등에 있는 대형 아파트였다. 주요 이용자는 도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여성이었다. 
최근 사업 방향은 다르다. ‘리베토’란 신설법인을 설립한 코오롱하우스비전은 토지주의 의뢰를 받아 코리빙 건물을 만들고 운영까지 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입주 서비스는 빌딩 단위로 이뤄진다. 커뮤니티 활동 공간을 마련해 회원제로 운영하거나 추가 서비스 요금을 받고 입주자에게 주거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은 상당히 고가다. 역삼동 지점을 기준으로 16㎡(약 5평) 규모의 방을 사용하려면 월 100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리베토가 운영하는 코리빙 사업장의 재계약률은 55~6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특정 직업군이나 고액 수입이 있는 입주자의 선호가 높다”며 “입주율은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리빙 사업을 하는 대기업은 또 있다. SK 계열사인 SK D&D다. 한일시멘트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리모델링해 임대ㆍ관리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현대가家 3세 정경선 대표가 만든 임팩트 투자사 HGI도 MGRV(맹그로브)라는 코리빙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HGI MGRV는 청년 주거의 열악함을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지켜봐야 할 부분이 많다. 월 임대료와 서비스 이용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가성비는 우리 몫 = 이처럼 높은 임대료를 내세워 ‘극소수 임차인’을 노리는 대기업 코리빙 업체들과 달리 스타트업 등 중소업체들은 시세와 비슷한 수준을 콘셉트로 삼고 있다. 상위 30~70% 시장을 노리는 거다. 2015년 설립된 부동산 스타트업 홈즈컴퍼니는 코리빙 운영ㆍ개발사업을 해왔다. 2017년 용산구 남영동을 시작으로 현재 5개 지점을 서울에서 운영 중이다. 보증금은 시세보다 낮추고 임대료는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운영한다.

대부분의 코리빙ㆍ셰어하우스 업체는 아파트 1가구나 다세대 주택 일부를 빌려 운영하지만 홈즈컴퍼니는 건물 전체를 통으로 임대하는 ‘마스터 리스(Master Lease)’를 선택했다. 임차인 수요가 많지 않은 낡은 빌딩 일부를 리모델링하고 층별 용도를 다르게 만들었다. 2층 이상은 개인 및 공용 공간으로 만들고, 1층엔 입주자들이 드나들 만한 상가를 유치하는 식이다.

 

최근엔 확장 계획도 발표했다. 수도권 외곽에 600세대 규모의 1~2인 가구 중심 주거지를 만들겠다는 거다. 홈즈컴퍼니 관계자는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형태의 생활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임대료도 일반적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땅값이 너무 높은 지역은 피하고 상대적으로 매입 부담이 적은 도시에서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입주민 위한 개성만점 생태계 = 규모와 비용의 차이가 있을 뿐 코리빙 업체의 사업 형태는 입주자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주거 서비스를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사회주택’은 개성이 뚜렷하다. 사회주택기업 아이부키가 만든 ‘장안생활(동대문구 장안동)’은 올해 초 입주가 시작된 8층 빌딩에 있다. 32세대 중 3분의 2가 입주한 상태다.

임대건물이 아니다. 코리빙에 알맞게 설계해 새로 지었다. 도시재생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도시재생기금을 빌려 사업비의 80%를 충당했다. 현재 입주민들은 시세의 80~ 90%의 임대료를 내고 1인실과 공용공간으로 이뤄진 주택에서 살고 있다. 공용공간을 작업실로 이용해 수익을 내거나 옥상ㆍ테라스 등 옥외 유휴공간에서 함께 농작물을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특이한 점은 주거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보다 입주자가 직접 꾸려나가는 게 많다는 거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자신이 영화 리스트를 짜서 상영 이벤트를 마련해 입주민을 불러모을 수 있다. 

‘장안생활’의 공유 선반에서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가 누적될수록 함게 쓸 수 있는 재화도 늘어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장안생활’의 공유 선반에서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가 누적될수록 함게 쓸 수 있는 재화도 늘어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셰어하우스에서 흔히 이뤄지는 ‘남는 물건 공유하기’도 독특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입주민끼리 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인 ‘송이’를 통해 남는 물건을 팔거나 혹은 살 수 있다. 발생하는 거래금액의 5%는 입주민 자치회를 위해 적립된다. 교류가 활발할수록 입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재화가 쌓이는 구조다.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는 “입주민들이 움직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면 그 안에서 많은 활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장안생활’에 사는 1인 가구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동네 이웃도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의 반경이 넓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상’을 담고 있는 코리빙 사업은 또다른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HGI MGRV는 신촌에 300여세대의 코리빙 시설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홈즈컴퍼니는 언급했듯 서울 외곽에 대규모 1인 가구 타운을 만든다. 아이부키는 올 하반기 성북구 안암동에 120여세대 규모 ‘안암생활’을 열 예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전체 가구수의 30% 수준인 1인 가구는 2045년 37%까지 늘어난다. 대기업부터 사회주택까지 코리빙을 담아내는 모습은 서로 다르다. 새로운 주거상을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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