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주거급여 조사원 안전 빨간불

“폭행ㆍ성추행 등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겠다.” 지난해 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주거급여 조사원들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조사원들은 정부로부터 ‘주거급여’를 지원받는 수급자의 상황을 방문조사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부정수급’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LH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인1조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조사원들의 요구도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원들은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단했던 방문조사를 7월 1일 재개했다. 코로나 위험까지 떠안은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LH 주거급여 조사원의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지금도 여전히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은 폭언과 폭행, 성폭행 등에 노출돼 있다.[사진=뉴시스]
지금도 여전히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은 폭언과 폭행, 성폭행 등에 노출돼 있다.[사진=뉴시스]

“방문조사 중에 폭언ㆍ폭행ㆍ성추행을 수시로 겪는다. ‘2인 1조’로 일하게 해달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속 주거급여 조사원(이하 조사원)들이 회사 측에 꾸준히 제기해온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더스쿠프(The SCOOPㆍ통권 364호)는 조사원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 배경을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참고 : 주거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급여항목 중 하나다. 월 임대료의 일부를 수급자에게 지원한다. 서울 기준 월 23만원이 최대치다. 주거급여 조사는 수급 대상자가 자격요건을 갖췄는지 직접 방문해 확인하는 것이다. 부정수급 방지가 목적인 셈이다. 원래는 보건복지부 소속 업무로 각 지자체 사회복지 분야 공무원들이 담당했다. 2015년 이 업무가 국토교통부로 이관됐고, 국토부는 다시 LH에 업무를 위탁했다.] 

그로부터 8개월 LH는 조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였을까. LH 측의 말을 들어보자. “위험가구를 조사할 때는 ‘2인 1조’로 하고 있다. 모든 조사를 ‘2인 1조’로 하는 것은 사업 예산이 그만큼 편성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위험가구’란 수급자 중에 전과가 있거나 방문조사 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가구를 지칭한다. 언뜻 조사원들의 애로를 들어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사원들은 “사실상 변한 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첫째 이유는 ‘2인 1조’로 조사를 나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복수의 조사원은 “경험에 비춰볼 때 ‘2인 1조’로 움직인 건 손에 꼽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위험가구를 특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조사원은 이렇게 말했다. “LH 측에선 위험가구에 2인 1조를 내보낸다고 하는데, 숨은 위험가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지자체를 통해서든 LH 내부 데이터를 통해서든 조사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 

LH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종합안전대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반박을 이어나갔다. “위험가구 등을 조사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갖가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토부가 각 지자체에 위험가구 등 조사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공유해 주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도 보냈다. 지난 상반기에 사업소별로 조사원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취합해달라고 해서 의견까지 들었다.” 

지난해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이 다양한 고충들을 겪는다고 해서 논란이 됐지만 해결은 요원하다.[사진=뉴시스]
지난해 방문서비스노동자들이 다양한 고충들을 겪는다고 해서 논란이 됐지만 해결은 요원하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조사원들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대로 의견을 들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 조사원의 말을 들어보자. “국토부가 조사원들의 안전을 위해 각 지자체에 위험가구 관련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면 할 일을 다한 건가. 요청을 했으면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는지, 잘 안 되고 있다면 왜 안 되는지를 조사원들을 통해서라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후속조치는 전혀 없었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위험가구 이력을 조사원들이 매일 기록으로 남기도록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데, 그런 조치도 한 적 없다.” 

조사원의 말은 근거가 있다. ‘조사원에게 협조해 달라’는 국토부의 요청을 받은 지자체가 곧이곧대로 ‘위험가구 정보를 제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자체가 협조해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 간혹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신규 수급자 정보는 전무하다. 

LH 대책 마련한다더니

“사업소별 조사원들의 의견을 들었다”는 LH 측의 주장도 사실 과장된 측면이 많다. 더스쿠프 취재팀이 ‘조사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고 취합한 게 맞느냐’고 다시 묻자 LH 측은 말의 뉘앙스를 살짝 바꿨다. “470여명의 의견을 다 들을 수는 없었다. 의견 청취가 설문조사처럼 절차를 거쳐서 진행하는 걸 의미한다면 그런 건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LH는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 2월 말부터 중단했던 방문조사를 7월 1일 재개했다. 방문조사의 재개를 결정한 건 국토부다. 이들은 지난 5월에도 LH 측에 ‘조사 재개’ 지침을 하달했다가 조사원들이 반발하자 번복한 적 있다. 참고로 국토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내부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한다.

방문조사 재개 결정에 조사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LH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기존 안전문제에 관한 종합안전대책을 수립하는 걸 미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최소한의 안전대책이 세워지기도 전에 코로나19의 위험까지 떠안으며 방문조사를 해야 하는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위험가구 정보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전달될 리 없다. 방역물품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조사원들의 의견을 듣고 수량을 결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라텍스 장갑의 경우 ‘1일 2매(양쪽 손 기준으로 실제로는 1매)’만 지급된다.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게 목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한 양이 아니다. 화장실을 갈 때나 식사를 할 때 등 장갑을 벗어야 하고 한번 쓴 장갑은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스크도 ‘주 3매’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적인 직장인의 출퇴근을 기준으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위에 여러 가구를 방문해야 하는 조사원들의 경우 마스크 오염 속도가 빨라 현실적이지 않다. 조사원들이 “LH의 종합안전대책이 세워질 때까지만이라도 방문조사를 미뤄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방문조사를 해야만 주거급여의 부정수급을 적발할 수 있는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첫째, 지금의 주거급여 조사시스템으론 부정수급을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 LH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원들의 조사 건수는 100만건(1인당 2100건) 이상이다. 이 가운데 조사원들이 부정수급 의심사례로 보고한 것은 170건에 불과하고, 실제 부정수급으로 결론 난 건 더 적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해 투입된 조사예산은 300억원이다. 170건을 모두 부정수급(가구당 주거급여 최대치 월 26만6000원ㆍ올해 서울 기준)으로 판정해 급여를 회수했다손 치더라도 5억4264만원(170건×26만6000원×12개월)을 회수하기 위해 300억원을 투입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다. 

둘째, 방문조사는 사전에 유선통보를 하는 게 원칙이다. 혹여 부정수급을 하고 있더라도 대비할 시간을 넉넉히 주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셋째, 방문조사를 대체할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 조사원은 “지금의 조사 시스템은 정말 원시적”이라면서 이런 의견을 냈다. “방문조사를 해보면 부정수급이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가 꽤 많다. 악용될 소지가 있어 어떤 곳들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다만 명확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부정수급 의견을 내지 않는 거다. 조사기간의 공백도 있다. 현재 일반적인 임대차 계약이 된 주거지의 경우 2년에 한번 조사를 하고, 고시원처럼 이동이 잦은 곳은 6개월에 한번씩 한다. 따라서 정확하게 조사를 하려면 매월 해야 한다.” 

안전하지 못한데 코로나19까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주거급여는 수급자가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월세를 지원하는 거다. 그럼 가상계좌를 만들어서 그쪽으로 급여를 넣어주고, 수급자의 동의를 거쳐 임대인에게 지급되도록 하면 그만이다. 모자라는 임대료는 따로 수급자가 임대인에게 주면 된다. 주거급여가 엉뚱하게 전용돼 임대료가 연체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방문조사를 통해 임대인에게 임대료가 제대로 들어오는지 물어볼 이유가 뭐 있나. 이렇게 하면 가상계좌만 봐도 다 알 수 있다. 매월 조사도 가능하고 부정수급의 여지도 줄어든다.”

어쨌거나 조사원들은 방문조사를 시작했다. 많은 집의 문을 두드려야 하지만, 그곳이 위험가구인지 코로나19와 무관한지 등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LH 측은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거듭했다. 조사원은 대부분 40~50대 주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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