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실적 기록한 두 원양선사
힘든 시기 보내는 근해선사들
K-얼라이언스, KSP와 다를까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반환점을 돌았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본 걸까. 우연의 일치일까. 국내 두 원양선사 HMM과 SM상선이 지난해 기대 이상의 호실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아시아역내 항로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중소형 해운사들은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의 바다에 빠져 있는 한국 해운의 재건계획, 정말 괜찮을까.
 

HMM과 SM상선이 지난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지만 중소형 근해선사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사진=뉴시스]
HMM과 SM상선이 지난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지만 중소형 근해선사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1월 27일, 갑작스러운 HMM(옛 현대상선)의 매각설에 시장이 술렁였다. 인수 의사를 밝혔다는 기업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HMM의 최대주주(보유 지분 12.61%) 산업은행이 HMM의 민영화 방안을 기획재정부에 보고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소문의 진원지였다. 

결과적으로 소문은 사실무근이었다. 산은이 매각설을 전면 부인하며 단순 해프닝에 그쳤지만 매각설이 나온 배경은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HMM의 경영사정이 좋아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HMM은 오랜 침묵을 깨고 이제 막 부활의 돛을 올렸다. 지난해 2분기엔 21분기 만에 분기 흑자를 기록했고, 연간 영업이익도 9년 만의 흑자전환(잠정)을 달성했다. 글로벌 해운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배를 대거 사들인 결과다.

배가 크고 많을수록 유리한 게 해운시장의 섭리다. 2017년 13위에 그쳤던 HMM의 세계 해운사 순위도 선박을 사들인 이후 껑충 뛰어올랐다(2020년 8위). 지난 3일엔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2만4000TEU급)으로 ‘30회 연속 만선 출항’이라는 대기록도 썼다.

부활의 뱃고동을 울린 건 HMM만이 아니다. 또다른 국적 원양선사 SM상선도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약 1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는데, 이는 2016년에 출범한 이후 최대 실적이다. SM상선은 이를 발판 삼아 올 하반기를 목표로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다.

HMM과 SM상선이 실적 반등에 성공하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부활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2016년 한진해운이 무너진 이후 꽁꽁 얼어붙은 국내 해운업계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는 기대감이 쏟아지고 있다. 때마침 해양수산부는 “올해 해운 매출액을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인 40조원으로 회복하겠다”면서 반환점을 돌아선 ‘해운재건 5개년(2018~2022년) 계획’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해수부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시아역내(인트라아시아) 항로를 운영하는 중소형 근해선사들 때문이다. 해수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해운 매출액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형 해운사들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HMMㆍSM상선 등 두 원양선사와 달리 중소형 해운사들은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출혈경쟁이 심각한 데다, 세勢를 넓히고 있는 글로벌 대형 해운사들 탓에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실장은 “한일韓日 항로는 선적상한선(실링)을 통해 해운사들이 공급을 조절하고 있어 상황이 낫지만 동남아와 한중韓中 항로에선 공급과잉이 심하고 대형선사들의 공격적 운영까지 더해져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시아역내 항로를 운영하는 국내 해운사만 15곳이다. 한정적인 노선에서 많은 업체가 경쟁하다 보니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운항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15개 해운사 중에서 아시아역내 항로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점유율 순위 10권 내에 드는 곳도 고려해운(8위)ㆍ장금상선(10위) 2곳밖에 없다. 그마저도 1~2위 해운사인 코스코와 머스크 점유율의 3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얼마나 크고 많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곧 경쟁력이 된 해운시장에서 덩치가 작은 국내 해운사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해수부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난해 해수부가 해운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K-얼라이언스’를 구축한 건 아시아역내 항로를 운영하는 해운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국내 해운사들 간의 해운동맹을 통해 효율적으로 선박을 운영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K-얼라이언스는 오는 2분기 본격 출범할 예정이지만 벌써부터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K-얼라이언스에 가입한 해운사가 5곳에 불과하다. HMM, SM상선, 장금상선, 흥아라인, 팬오션이다. 나머지 10개 해운사는 K-얼라이언스 가입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건데,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17년 K-얼라이언스와 같은 목적으로 출범한 한국해운연합(KSP)을 통해 이미 한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시 KSP에 15개 해운사가 의욕적으로 참여했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면서 “중복된 노선을 통합하고 선박 공급을 조정하는 등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개편 작업을 단행했지만 결과적으로 글로벌 해운사들에 시장을 내어준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선 과감한 구조조정이 없이는 위기를 탈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내 해운사들이 처리하고 있는 선적이 15개 해운사가 나눠 먹을 만큼 많지 않다. 글로벌 해운사들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국내 해운사들과도 과당경쟁을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3~4개 해운사로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경쟁구조를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반환점을 돌았다. 해운업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국내 두 원양선사 HMM과 SM상선도 기대 이상의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해운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역내 항로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중소형 해운사들의 부활 없이는 반쪽자리 꿈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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