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M&A 잇따라 성사시켜
역대 4번째로 연임에 성공
산업 생태계 파괴 논란 일어

이동걸(68) 산업은행 회장이 부실기업의 인수ㆍ합병(M&A)을 잇따라 성사시키고 있다. “기업에 끌려다니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이 회장 특유의 강공책이 알찬 열매로 이어졌다. 그 결과, 26년 만에 연임이라는 쾌거도 올렸다. 하지만 이 회장이 올린 공적을 제대로 평가하기엔 시기가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이동걸호號 산은이 주도한 굵직굵직한 빅딜이 산업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이동걸 회장이 난항이 예상됐던 M&A 건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점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사진=뉴시스]
이동걸 회장이 난항이 예상됐던 M&A 건을 잇따라 성사시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점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사진=뉴시스]

현대중공업그룹이 결국 두산인프라코어를 품에 안았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인수ㆍ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지 8개월여 만인 지난 5일 현대중공업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4.97%를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건설기계 시장 1ㆍ2위 기업 간 빅딜로 이목을 끌었던 M&A가 마침내 성사된 셈이다.

이번 M&A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엔 산업은행이 있다. 지난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벌린 두산그룹에 채권단은 고강도 자구책을 주문했는데, 여기엔 독자생존을 목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내세운 이동걸(68) 산업은행 회장의 ‘원칙’이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원칙론을 앞세우자 두산그룹으로선 알짜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를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 회장의 의지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두 공룡의 M&A를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중-두산의 M&A를 향한 이동걸호號 산은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산은은 현대중공업그룹과 두산그룹의 ‘매치메이커’ 역할을 도맡았고,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재무적투자자(FI)로 직접 참여하며 M&A를 성사시키는 데 힘을 실었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굵직한 M&A가 성사되려면 기업의 자율의지에만 맡겨선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서로의 이익만 내세우다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불발되기 일쑤라서다. 이럴 땐 기업에 휘둘리지 않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순기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이 성사시킨 M&A는 이뿐만이 아니다. 빅딜만 따져도 세건이나 된다. 첫째는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한 대우조선해양, 둘째는 지난해 11월 이뤄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M&A다. [※참고 : 셋째는 언급했듯 현대중공업그룹-두산인프라코어의 M&A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데 성공한 건 2000년 12월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로 올라선 지 19년 만이었다. 대우조선해양 M&A 과정에 이 회장의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는 거다. 

아시아나항공 M&A 역시 마찬가지다.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계약이 불발되는 등 변수가 숱했음에도 이 회장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 덕에 M&A가 성사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ㆍ동부제철 매각, STX조선해양 구조조정 등 산적해 있던 과제들을 해결했고, 시장에선 이를 ‘이동걸 매직’이라고 불렀다. [※참고 : 현대중공업그룹-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그룹-두산인프라코어 등 3건의 M&A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건 아니다. 기업결합심사를 비롯한 절차가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회장이 취임한 이후 산은의 DNA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전까지의 산은이 지지부진한 구조조정ㆍ매각과 잇따른 혈세투입으로 대마불사를 주도해왔다면, 이 회장은 무분별한 지원을 줄이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에 놓인 산업을 재편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 노력으로 열매가 열린 건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은 덕분인지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재신임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산은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건 지난 1994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1954년 산은이 설립된 이후 지난 66년간 연임에 성공한 회장은 이 회장을 포함해 4명뿐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단호하게 추진할 적임자로 낙점됐던 이 회장이 소임을 톡톡히 해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공적에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업계 안팎엔 “산은이 주도한 빅딜이 일부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가령,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을 보자. 현재 국내 조선업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3강 구조다. 지난해 3사가 기록한 수주실적은 각각 100억 달러, 56억 달러, 55억 달러다. 세 기업 간의 점유율을 따지면 약 50%, 25%, 25%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점유율은 75% 대 25%로 바뀐다.
 
항공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국내 대형항공사(FSC)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둘뿐이다. M&A 이후엔 단 1곳만 남는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국내 건설기계 시장 1ㆍ2위 기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독과점 우려가 크다. 

물론 이런 반문이 나올 법하다.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과점화를 논해야 하지 않느냐. 특히 규모의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현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서 산업을 재편하는 게 중요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지배력이 일부 기업에 집중됐을 때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악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국내 산업의 미래와 정책 당국의 기조가 일부 기업의 행보에 휘둘릴 수 있어서다. 산업 경쟁력이 1~2개 기업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리스크다. 

빅딜이 산업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실제로 빅딜로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원청ㆍ하청 간의 전속거래ㆍ불공정거래ㆍ기술탈취 문제가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지역경제에 미칠 여파가 크고, 인력 구조조정 문제가 취약해질 수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조선업과 항공업 모두 전반적으로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모든 기업이 살아남기가 힘든 게 현실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과 그로인한 생태계 변화를 따져봐야 하는데, 이런 이슈들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은이 대형 M&A를 주도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숱하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시장지배력을 키워주는 기업결합은 원칙적으로 승인하면 안 되지만 몇가지 예외가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시장지배력 강화에 따른 피해보다 효율성이 높으면 그런 유형의 기업결합이 용인될 수도 있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경우에 그렇다. 과거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 노동자 생존권 보호, 독자생존, 인수자 물색 등 문제들을 국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보니 독점이 되더라도 기존 대기업에 넘기는 건데, 이런 구조는 굉장히 후진적이다. 사실 그 밑바닥엔 기촉법이라는 변칙과 모피아의 이해관계 등 고질적 문제가 얽혀 있는데, 시장지배력 증가ㆍ과점화 등은 이런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기업구조조정 플레이어인 산업은행부터 손을 떼야 한다.”

이처럼 26년 만에 연임에 성공한 이동걸 회장을 둘러싼 평가는 극과 극이다. 엄두도 내지 못하던 M&A를 성사시켰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시장 생태계를 마비시켜놨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이 주도한 M&A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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