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 ‘블레이드&소울2’ 출시 후
90만원 바라보던 주가 폭락
그 배경엔 돌아서버린 팬덤 있어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는 8월 26일 새 게임 ‘블레이드&소울2’를 출시한 후 주가 폭락 사태를 겪고 있다. 90만원을 바라보던 이 회사 주가는 2주 정도 지나 50만원대로 내려섰다. 그 배경엔 돌아서버린 팬덤이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엔씨소프트 주가의 낯선 폭락과 팬덤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엔씨소프트는 올 초부터 3차례에 결쳐 충성고객들의 분명한 분노를 들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사진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사진=뉴시스] 
엔씨소프트는 올 초부터 3차례에 결쳐 충성고객들의 분명한 분노를 들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사진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사진=뉴시스] 

1998년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시작으로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을 선보이며 국내 게임업계를 주도하던 엔씨소프트 주가가 폭락세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매출 2조4162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연매출 2조원 시대를 열었다.

영업이익도 2019년보다 무려 72% 증가한 8248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엔씨소프트가 사상 최대 실적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8월 말까지 엔씨소프트 주가는 70만~80만원대를 유지했다. 8월 25일 엔씨소프트 종가는 83만7000원이었다.

그런데 8월 26일 ‘블레이드&소울2’ 출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날 하루 주가는 무려 15%나 하락해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8월 27일 주가는 65만9000원까지 폭락했다. 거의 매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열흘 만인 9월 7일 엔씨소프트는 주가방어를 위해 자사주 1899억원어치를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소용없었다. 9월 9일에는 장중 59만원대를 기록했고, 9월 13일에는 59만1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보통 이 정도의 폭락세는 회사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스캔들급의 악재로 발생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엔씨소프트 주가 폭락은 이런 악재와는 상관이 없다. 신작 ‘블레이드&소울2’ 흥행이 참패한 것은 맞지만, 과하다. 하지만 이를 팬덤의 붕괴 차원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쉽다.

올해 1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의 문양 시스템 과금을 낮추는 개편을 했다. 하지만 돈을 가장 많이 쓴 최상위 유저들이 반발하자 2월 1일 시스템을 다시 과거로 돌렸다(롤백). 갈등은 여기서 시작됐다.

개편된 문양 시스템에 과금했던 게임 유저들은 현금으로 환불할 것을 요구했지만 엔씨소프트는 이를 거부하고 게임에서 쓰이는 현금성 재화 ‘다이아’로 돌려줬다. 유저 입장에선 문양 아이템을 현금을 내고 샀는데, 게임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소해놓고 돈 대신 아이템으로 돌려주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회사가 유저들의 상식적인 요구를 귓등으로 흘리고, 반복되는 요구와 비판을 묵살했다는 데 있다. 그냥 묵살한 것도 아니고, 회사는 불매운동과 트럭 시위를 준비한 일부 유저를 고발했다. 그래도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에 보낸 시위 트럭에는 게임의 세계관을 반영한 유머에 가까운 “엔씨야, 우리도 순정이 있다”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돈의 문제 아닌 감정의 문제

그러던 5월 출시된 ‘트릭스터M’이 사전에 홍보하던 내용과는 다르게 나왔고, 현금 결제 유도도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유저들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8월 ‘블레이드&소울2’가 과금 등 비즈니스 모델을 전혀 바꾸지 않고 출시됐다.

팬덤은 이 시점에서 무너졌다. 유저들의 분노는 게임은 물론이고 게임을 홍보하는 스트리머들에게까지 향했다. 이 게임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사과하는 유튜버들이 속출했고,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스트리머들도 늘어났다.


엔씨소프트는 이런 상황에도 ‘블레이드&소울2’를 그대로 출시해 운영했고, 주가 폭락 사태를 빚었다. 물론 주가 폭락은 분노한 팬덤이 일으킨 일이 아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가장 먼저 엔씨소프트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 엔씨소프트는 비교적 빨리 자사 주식 매수를 결정했는데, 기관투자자들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팬덤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현금 결제를 한 유저들에게 아이템을 대신 주려고 했던 회사가 주가가 빠지자 2000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했던 모습이 팬덤에겐 어떻게 비쳤을까.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은 음악이나 소리와 같은 청각 요소로 브랜드를 차별화해주는 소닉 브랜딩 회사 ‘시그니처 톤스’의 공동 창업자다. 그가 쓴 「팬덤 경제학」은 팬과 고객의 차이를 애정으로 나눈다. 애정을 가진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팬으로서 이들은 기업과 브랜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성장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팬덤을 만드는 브랜딩 전략 9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평소보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둘째, 당신의 창작물을 놓아버려라. 셋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하라. 넷째, 정체성을 형성하라.

다섯째, 브랜드 옹호자를 활용하라. 여섯째, 장벽을 허물어라. 일곱째, 데이터가 아닌 고객의 말을 들어라. 여덟째, 진실을 말하라. 아홉째, 직원들을 팬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팬덤도 일순간에 떠나보내는 일들이 있다. 「팬덤 경제학」은 2018년 미국 팬케이크 프랜차이즈인 ‘아이홉’ 사건을 언급한다. 아이홉은 2018년 6월 4일 트위터 공식계정에서 자신들의 회사 이름을 일주일 후에 ‘IHOP’에서 ‘IHOB’으로 바꾼다고 발표한다.

 팬덤 유지하고 싶다면…

약속한 당일 아이홉은 트위터 계정에 “농담”이라는 한마디를 남긴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미디어들은 아이홉의 사명이 바뀐다는 기사를 내보낸 후였다. 만우절도 아니었고,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을 일으키려는 의도였다고는 하는데, 팬케이크 전문점의 마케팅 헛발질이 대단히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하게 식었고, 팬덤은 무너졌다.

「팬덤 경제학」은 이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아이홉의 거짓말을 마케팅 수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전략대로 이 사건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존 팬들을 떠나가게 했다. 그것도 최고의 충성고객들을 말이다.”

엔씨소프트의 낯선 주가 폭락은 팬의 입장에서 봐야 문제점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엔씨소프트의 낯선 주가 폭락은 팬의 입장에서 봐야 문제점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엔씨소프트는 올 초부터 무려 6개월 이상 3차례에 걸쳐 핵심 충성고객들의 분명하고 분노한 목소리를 들었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 개발하는 데 몇년씩 걸리는 새 게임을 갑자기 내놓을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충성고객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일을 풀었다면 어땠을까. 팬덤에도 한계는 있다. 팬덤의 형성이 돈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듯, 팬덤의 한계도 100% 돈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팬덤은 브랜드가 자신들로부터 멀어진다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무너져 내린다.

한정연 더스쿠프 경제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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