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낸시랭

Flying Fontaine, 29.5×29.5×29.7㎝, resin, 2021
Flying Fontaine, 29.5×29.5×29.7㎝, resin, 2021

수년 전 홍대 출신 중견작가의 작업실에서 모처럼 모임이 열렸다. 때마침 필자도 인터뷰차 그 자리에 동석했다. 명문 미대를 나온 작가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예술과 삶의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필자는 낯선 궁금증이 일었고, 낸시랭을 입에 올렸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들을 미술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란 이유에서였다. 

작가들의 대답은 뜻밖에도 명확했다. “진지하게 작업하는 작가이고 자기세계가 명확해서 평가절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작가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낸시랭이 과거부터 이어온 작품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적지 않은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명확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볼 때 낸시랭의 작품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민중미술에서 볼 수 있는 저항적인 색채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작가 대우’를 받아도, 정작 미술계에선 인정을 못 받는 이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점에 팝아티스트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낸시랭은 가치가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Bubble Coco Hymm, 18×18×30㎝, resin, 2021
Bubble Coco Hymm, 18×18×30㎝, resin, 2021

이런 낸시랭의 최근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10월 19일까지 갤러리그림손에서 열린다. 전시를 간략하게 표현하면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만들어낸 멀티버스’라고 할 수 있다. 작업을 기획하면서 고민도 많이 했겠지만, 작업을 시작한 이후엔 즐거웠을 것 같다.

먼저 낸시랭의 ‘버블코코 Bubble Coco’는 미술 문외한도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지만 미술사를 잘 아는 사람에겐 더 큰 가치를 전해준다. 다양한 감상 포인트가 있는데, 우선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코코샤넬이다. 이 고양이는 안정과 영원을 의미한다. 낸시랭의 트레이드마크인 ‘어깨 위에 올려진 인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전엔 하얀 고양이만 보였는데, 이번엔 검은 고양이가 새롭게 등장했다. 하얀 고양이는 입모양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면 검은 고양이는 강인한 의지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일본의 마네키네코를 연상케 하는 느낌인데, 행운을 불러오는 고양이라고 한다.


실제로 하얀 고양이는 순수성과 금전운을 불러오는데, 검은 고양이는 액막이를 해준다고 한다. 이 둘은 작품 내내 등장을 한다. 전체적인 색감은 일본 팝아트의 거장인 무라카미 다카시 작가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전반적인 느낌이 경쾌하다.

그럼 필자가 앞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했던 이유를 설명해 보자. 이는 작품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Micky and i는 미키마우스와 함께 있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스타일을 보면 팝아트의 전설인 앤디 워홀 고유의 화법을 보여준다. Bubble Coco Hymm은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 조각상을 아트 토이 형태로 오마주한 느낌이다. 

Good to go, 91.0×91.0㎝, Acrylic on canvas, 2021
Good to go, 91.0×91.0㎝, Acrylic on canvas, 2021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Flying Fontaine이란 작품은 낸시랭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Flying Fontaine은 1917년 개념미술의 신호탄 역할을 한 뒤샹의 샘(Fontaine)이란 작품을 낸시랭이 재해석한 것이다. 

검은 고양이가 소변기에 들어가 서 있고 뒤샹이 가상으로 만든 작가인 ‘알뮤트’의 사인이 있던 위치에 ‘NANCy’라고 서명했다. 이는 중대한 미술양식의 시작을 연 작품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동시에 낸시랭이 되고자 하는 이상향을 향한 열망일 것이다. 


낸시랭은 이번 전시를 통해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작품에 넣었다. 아울러 더욱 원숙해진 자신의 작품세계를 미술사적인 아이콘에 믹스해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예술가 낸시랭의 진가를 볼 수 있는 멋진 전시회가 될 것 같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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