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리는 대신 용량 줄이는 전략
고물가에 확산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의 덫
슈링크플레이션, 꼼수인가 합법인가

# 치킨 한마리를 주문했는데 닭다리가 하나뿐이라면…. 이걸 눈치채지 못하는 소비자가 있을까. 그럼 과자 한 봉지를 샀는데, 중량이 5g 줄었다면 어떨까. 아마도 고개만 갸웃하는 소비자가 더 많을 것이다. 봉지에 표기된 내용을 살펴봐도 별 소용이 없다. 이전 중량이 얼마였는지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줄어들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고안한 용어다. 이런 슈링크플레이션이 최근 국내외에서 확산하고 있다. 

# 이유는 간단하다. 고물가 탓이다. 물가 상승으로 제품 생산 비용이 오르자 판매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제품 용량을 줄이는 기업들이 늘어난 거다. 그렇다면 슈링크플레이션은 과연 정당한 행위일까. 소비자를 일순간 ‘호구’로 만드는 꼼수는 아닐까. 만약 이게 합법이라면, 누가 소비자의 눈총을 받으며 가격을 인상할 것인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슈링크플레이션에 숨은 의문을 취재했다.

가격 인상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제품의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방법으로 마진을 챙기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가격 인상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제품의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방법으로 마진을 챙기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카스타드(롯데제과)’ 과자를 좋아하는 이성훈(가명·36)씨. 얼마 전까지 다이어트를 하느라 과자를 끊었던 그는 1년여 만에 카스타드를 구입했다. 시간을 들여 하나둘 먹다 보니 과자는 금세 동이 났다. 

텅 빈 과자 박스를 본 성훈씨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주 먹었던 과자이다 보니 한두개 정도는 남아있어야 개수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스 어디에도 용량이나 개수가 줄었다는 문구는 쓰여 있지 않았다. 

성훈씨는 ‘기분 탓이겠지’하고 넘겼지만 그의 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실제로 카스타드의 제조사인 롯데제과는 지난해 9월 카스타드 한 박스당 제품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줄였다.

이 사실을 알아챈 성훈씨는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제품 개수를 줄이고,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는 건 괜찮은 걸까? 불법 아닐까?”

어떤가.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은가. 그 의문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보자. 

일단 답을 찾기 위해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바로 물가다. 코로나19에 이어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은 물론 곡물 가격도 급등했다. 글로벌 공급망까지 비틀어지면서 물가는 천장까지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우리나라 상황도 다르지 않다.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 이후 24년 만이다. 여기에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본격화하면 물가가 7%까지 오를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판매 가격은 그대로인데 생산 비용이 가파르게 올랐으니 마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들은 줄줄이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베이커리 전문점 뚜레쥬르(CJ푸드빌)는 7월 11일 80여개 제품의 소비자가격을 평균 9.5% 올렸다. 지난해 2월 제품 가격을 평균 9% 인상한 지 1년 6개월여 만이다.

샌드위치 전문점 써브웨이도 12일부터 74개 메뉴 가격을 500~1600원 끌어올렸다. 이탈리안비엠티 샌드위치 가격은 5700원에서 6100원으로, 터키베이컨아보카도 샌드위치는 6900원에서 7400원으로 인상됐다. 

써브웨이 측은 “코로나19 여파로 자재·물류비·인건비가 상승했다”면서 “러시아-우크라 전쟁으로 곡물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제품 원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가격 인상 이유를 밝혔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로 불리는 치킨 가격도 치솟고 있다. 교촌·bhc·BBQ 등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3사는 지난해 말부터 치킨 가격을 최대 2000원 인상했다. 평균 인상률은 8.1%로 ‘치킨 2만원 시대’까지 활짝 열렸다.[※참고: BBQ가 ‘황금올리브치킨’ 가격을 1만8000원에서 2만원으로 인상하면서 치킨값 2만원 시대가 됐다.]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은 식품 업계엔 익숙한 전략이다.[사진=뉴시스]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은 식품 업계엔 익숙한 전략이다.[사진=뉴시스]

라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오뚜기가 총대를 메고 라면 제품 가격을 평균 11.9% 올리자 농심(8월·평균 6.8%), 삼양식품(9월·평균 6.9%)도 줄줄이 가격을 인상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라면 가격 인상률은 11.0%(통계청)를 기록하면서 1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기업들이 맘 놓고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건 아니다.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값을 올렸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비자의 거부감이다. 수익성을 위해 가격을 1000원 끌어올렸다가 고객을 놓치면 되레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그래서 가격을 인상하는 기업들은 으레 ‘○○년 만의 인상’ ‘어쩔 수 없는 인상’ 등 그 이유와 명분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쓴다. 각종 프로모션을 펼쳐 가격 인상분만큼의 혜택을 주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하지만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려는 기업들도 많다. 방법은 간단하다. 제품의 개수나 중량 등을 은근슬쩍 줄이는 식이다. 앞서 언급했듯 롯데제과는 지난해 9월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의 개수를 12개에서 10개로 2개 줄이고,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꼬깔콘’ 역시 가격(1500원)은 동결했지만 중량은 72g에서 67g으로 줄였다. 롯데제과가 카스타드 6개입 제품 가격을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인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롯데제과 측은 “카스타드 대용량 제품의 경우 플라스틱 트레이를 종이 트레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제품 개수를 조정한 것”이라면서 “제품의 중량을 줄이는 경우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 사실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용량을 줄이는 행위는 불법 소지가 있다. 다만, 공정거래법 특유의 모호함 때문에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변수가 많다는 점은 문제다. 이 문제는 후술했다. 아울러 롯데제과처럼 ‘보도자료’를 통해서라도 중량이나 용량을 줄였다고 밝히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보도자료’가 소비자를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제과를 포함한 식품업체들이 개선할 점은 숱하다.] 

중량이나 규격에 손을 대는 건 식품업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식당가에서도 알게 모르게 반찬 수를 줄이거나 더 작은 달걀을 쓰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13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써브웨이는 미국 전역에서 치킨랩과 샌드위치에 넣는 고기의 중량을 줄였다. 피자 브랜드 ‘도미노피자’는 ‘뼈 없는 치킨 윙’의 개수를 10개에서 8개로 조정했다.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 역시 치킨너깃 수를 10개에서 8개로 줄였다. 이는 값을 올리지 않는 대신 양을 줄이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는 걸 잘 보여준다. 

이런 수법을 경제학 용어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부른다. ‘줄어들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 flation)을 합친 용어로, 내용물을 줄여 결과적으로 기업의 마진을 높인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가격이 오르는 것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내용물의 중량이나 품질이 변하는 건 잘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슈링크플레이션이 정당한 행위냐는 점이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제1호는 ‘시장지배적사업자는 상품의 가격을 정당한 이유 없이 결정·유지·변경(가격남용 행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사 홈페이지에 이 조항의 예시로 ‘비스킷 3사(해태제과·롯데제과·크라운제과)가 제품의 용량을 줄여 생산하면서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작은 글씨로 표시한 행위’를 들었다. 소비자가 알지 못하게끔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도 법을 어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도미노피자는 치킨윙 개수를 10개에서 8개로 줄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슈링크플레이션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도미노피자는 치킨윙 개수를 10개에서 8개로 줄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처벌 규정도 마련돼 있다. 가격남용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관련 매출액의 6%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고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다.[※참고: 시장지배적사업자는 연간 매출액 또는 구매액이 40억원 이상인 사업자로서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를 지칭한다.] 

물론 공정위가 위법성을 판단할 땐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가격을 인상한 경우여야 한다. 물가 상승으로 제조 단가가 오르면 기업엔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일 ‘명분’이 생긴다는 거다. 

그럼에도 몇가지 의문은 남는다. 첫째, 시장지배적사업자를 특정할 수 있느냐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사업자 기준을 세워놨지만, 이는 추정 기준일 뿐이다.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충분히 크다.

가령, 비스킷 시장점유율이 50%인 기업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사업자이지만, 기업 측이 “비스킷은 과자의 한 종류로 봐야 하기 때문에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아니다”라 반박하면 현재로선 할 말이 별로 없다. 

둘째, 시장지배적사업자를 운 좋게 특정하더라도 문제다. 그럼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아니라면 정당한 이유 없이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여도 괜찮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또다른 파생 질문을 양산해낸다. ‘제조 단가가 오르면 어떤 기업이든 제품 중량을 마음대로 줄여도 되는 걸까’ ‘중량을 줄이고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소비자가 아무런 저항권도 행사하지 못한 채 가격 인상이나 규격 또는 용량 감소를 받아들여야 할까’ ‘또 중량을 줄인다면 적정 기준은 얼마일까’ ‘10개 중 2개일까, 3개일까’ …. 공정거래법의 모호함이 되레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애기다. 

이 때문인지 지난 3년 새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인 문제로 공정위 조치를 받은 기업은 단 한곳도 없었다. 이수현 소비자시민모임 정책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기업들이 비용 증가분보다 과하게 가격을 올리거나 중량을 줄여놓고 ‘원재료’나 ‘함량’을 바꿨으니 ‘정당하다’고 주장해도 소비자나 시민단체를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기업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실질적인 감시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을 택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기업들은 소비자가 지각하지 못할 만큼의 적정선을 고려해 중량을 줄이는 전략을 써왔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는 만큼 몰래 제품 중량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눈치 싸움’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법을 보완할 수 있는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금배지’는 거의 없다. 지난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 각각 124건, 70건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중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아줄 법안은 단 한건도 없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기업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이를 알아내기가 어렵다”면서 “또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불공정 행위로 얻는 이득보다 적은 점 등을 보완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교수는 “기업으로선 슈링크플레이션을 통해 당장 소비자의 저항을 줄이고 마진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예민하고 똑똑한 소비자는 슈링크플레이션을 금세 알아챌 것이고, 이는 브랜드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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