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와 결혼조건

흔히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한다고 표현하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는 사회구조에 의해 혼자 살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서 비혼非婚을 선택하거나 아직 결혼할 수 없는 미혼未婚 상태의 1인가구에게 ‘솔로경제’는 반드시 익혀둬야 할 삶의 기술이다. 

결혼이란 제도의 인기가 떨어진 걸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이란 제도의 인기가 떨어진 걸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혼非婚 사회의 결과에 해당하는 출산율 얘기를 먼저 해보자. 통계청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총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외국인의 국내 유입이 급감하면서 총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이 기존 예측보다 8년가량 일찍 찾아왔다. 총인구는 출생자·사망자 외에도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포함된다. 지난해 한국의 총인구는 1년 전보다 9만명 줄어든 5175만명을 기록했다.   

출산율은 2019년 0.88을 기록한 데 이어 2020년에는 0.84명을 기록했다. 통계청은 2024년이면 출산율이 0.70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곳은 없다.

세계적으로도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가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인구 감소의 문제는 경제와 직결돼 있다. 인구가 줄면 그만큼 경제성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결혼이라는 제도의 인기가 떨어진 것을 개인의 문제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비미족非未族이 출산율의 전제 조건인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개인과 연결되는 건 소득뿐이다.

그나마도 한국 사회의 특성상 소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결혼 연령층이라는 20~ 30대 초반은 소득이 크게 낮고, 학자금 대출을 겨우 갚아나가는 시기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결혼은 사실상 사치에 가깝다.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이제 연애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5~ 29세 남성 미혼율은 2015년 기준 90%로 1995년 65%에서 크게 늘어났다.

같은 나이대 여성 미혼율은 30%에서 77%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35~39세 여성 미혼율은 1995년 3%에서 2015년 19%로, 남성은 7%에서 33%로 급증했다. 40~44세 남성 미혼율은 3%에서 23%로, 여성은 2%에서 11%로 크게 늘어났다.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경제력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7월 5일 발표한 ‘성 역할 가치관과 결혼 및 자녀에 대한 태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모두 본인과 배우자의 경제적 여건을 결혼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9개 항목 중 하나로 꼽았다. 이밖에도 본인·배우자의 직장, 안정된 주거도 주요 항목으로 꼽았다. 경제적인 요건은 결혼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9개 항목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4개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근로자들의 경제 요건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2019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는 은퇴해도 되는 나이를 67세, 은퇴하고 싶은 나이를 62세로 잡았다. 하지만 남성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체감하는 은퇴 연령은 51.6세에 불과했다. 여성의 경우 체감 은퇴 연령은 고작 47.9세였다. 

기존에 하던 일을 은퇴 시까지 그대로 할 수 없을 거라고 답한 이들은 65.7%였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27.9세에 국내 최고의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시작한 여성은 20년을 근무한 다음 그만두고, 그 이후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을 확률이 35%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부모로부터 부의 이전도 함께 늘어

이런 맥락에서 미혼이 배우자를 고르는 주요 기준으로 꼽는 ‘경제적 기준’이란 근로소득보단 자산, 특히 배우자의 부모로부터 증여 혹은 향후 상속될 자산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수출 대기업 등 고연봉 일자리가 아닌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자신의 소득으로는 ‘주거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어서다. 

문제는 이런 자산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100억원 이상 상속받은 사람은 2013년 93명에서 해마다 조금씩 증가해 2017년엔 155명이나 됐다. 50억원 이상 증여를 받은 사람의 수도 2013년 236명에서 2017년엔 555명으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자산 증가는 증여나 상속을 받은 이들과 비교조차 안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 평균 실질순자산은 2010년 2억6705만원에서 2015년 2억9969만원, 2020년 3억6287만원으로 늘어났다. 2021년 가구 실질순자산은 4억441만원이었다. 그나마 한국의 경제 수준이 월등히 나아지고, 최근 수년간 부동산값이 폭등한 결과가 반영된 증가치다. 

증여와 상속으로 부모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이들의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서 프랑스의 경제적 불평등에 상속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다뤘다. 

결혼을 선택할 때 ‘경제력’은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을 선택할 때 ‘경제력’은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피케티는 1790~2030년 전 연령에 걸쳐 평생 노동소득을 올린 사람과 같은 액수를 상속받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했는데, 프랑스혁명 시기 다른 사람들의 노동소득만큼 상속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10%였지만, 이후 점차 줄어 전쟁이 한창이던 1900년대 초반엔 2%로 떨어졌다.

그 이후 상속받는 사람들의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 1950년 5%를 넘겼고, 1970년엔 12%까지 뛰어올랐다. 2013년 13%로 조금 더 오른 이 비율은 2030년 15%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쯤 되면 비혼이나 미혼이 ‘개인의 선택’이란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출산율 하락이 정말 결혼을 안 하기 때문일까’란 질문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5~49세 기혼 여성이 원하는 자녀 수는 2.16명이었지만, 자녀가 있는 이들은 그 수가 1.92명으로 줄었다. 낳아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하는 자녀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로 읽힐 수 있는 통계다. 

한정연 더스쿠프 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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