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Variation of Moments

Invisible Layer,  Oil on Canvas, 80.3×80.3㎝, 2021.[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Invisible Layer, Oil on Canvas, 80.3×80.3㎝, 2021.[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1980년대만 해도 인사동에 나가야 미술계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갤러리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교통체계가 발달하면서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 다양해졌다. 디지털 문화가 진화를 거듭한 덕분에 온라인이나 SNS까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부엔 MZ로 대표되는 젊은 컬렉터가 있다. SNS나 NFT(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로 무장한 이들은 다소 보수적인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전하고 있다. 

이런 MZ 컬렉터가 관심을 보이는 갤러리 중엔 ‘더트리니티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에선 북유럽의 이국적 환경에서 얻은 경험을 추상화로 표현하는 최은혜 작가의 개인전 ‘Variation of Moments’가 10월 31일까지 열린다. ‘Variation of Moments’ 연작을 비롯해 ‘Memoryscape’ ‘Scattered Landscape’ ‘Dia logue’ 등 최 작가의 2022년 신작을 소개한다. 

Memoryscape, Oil on Canvas, 40.9×31.8㎝, 2022.[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Memoryscape, Oil on Canvas, 40.9×31.8㎝, 2022.[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빛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인식 세계를 탐구해온 최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한층 완숙해진 경지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기억과 경험이란 요소가 깔려 있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파편화해 그 농도가 개인마다 달라진다. 최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모호한 경계에 있는 순간이나 공간을 수집해 다층적인 색채와 형태의 레이어로 환원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지 못한 것과 보이진 않지만 실재하는 것의 유기적 움직임을 시각화해 다양한 의미를 찾아냈다. 이런 의미를 최 작가는 주관적인 색채와 모양으로 다시 한번 여과해 캔버스 위에 펼치면서 ‘보이는 것 그 너머’의 통찰을 그려냈다. 

이처럼 최 작가는 환영과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현상을 초월한 추상적인 공간을 활성화한다. 그렇게 작품에 녹아든 그만의 철학은 관람객의 마음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기억’을 떠오르도록 돕는다. 

Variation of Moments, Oil on Canvas, 65.1×53㎝, 2022.[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Variation of Moments, Oil on Canvas, 65.1×53㎝, 2022.[사진=더트리니티갤러리 제공]

그는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에서 수집해 나가는 조형적 경험을 시각화하고 있다. 구상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등이 캔버스 위에 다층적으로 누적되면서 이들을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회화의 목적이다.”

인공지능(AI)이란 기술, 양자역학이란 이론 등이 대중화하면서 세상은 ‘눈에 보이던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미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딘지 모르게 ‘일관된 가치’를 좇던 작가들 사이에서 ‘다극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관람객 역시 작가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은혜 작가의 전시회는 관람하기에 제격이다. ‘Variation of Moments’라는 전시회 이름처럼….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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