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❶ 왜 정유사만 대상으로 삼는가
논쟁❷ 손실 났을 때 보조해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일부 업종은 막대한 초과이득을 누렸다. 에너지 업종이 대표적이다.[사진=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일부 업종은 막대한 초과이득을 누렸다. 에너지 업종이 대표적이다.[사진=뉴시스]

# 기업이 외부적 요인이나 독점적 지위를 통해 정상이득의 범위를 넘어선 초과이득이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을 뜻하는 ‘횡재세(windfall tax)’. 유럽연합(EU)은 이 세금의 도입을 이미 결정했고, 미국도 도입 여부를 치열하게 검토 중이다. 세금 부과 대상은 대부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유가 상승으로 수혜를 입은 에너지 기업들이다. 

#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웬 추가 세금인가’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발상이다’면서 횡재세를 깎아내리던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주의의 상징격인 미국과 EU가 뜻밖의 발걸음을 걷자, 이 세금의 논의를 시작했다. 관련 법안도 발의됐다. 

# 그러자 이번 고유가 국면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정유업계가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다른 변수로 수혜를 입은 업종도 많은데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는가’ ‘유가 하락으로 손실을 입을 땐 도와주지 않더니, 유가 상승으로 수익을 내자 세금을 더 내라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 언뜻 설득력이 없지 않다. 반도체 호황기 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큰 수익을 올렸어도 횡재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한 적은 사실상 없다. 유가가 떨어지거나 정제마진이 감소했을 때 정부가 보존해주지 않은 것도 일면 사실이다.[※참고: 사실 정부가 여기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 그럼 정유업계의 항변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유업계의 항변’에 반론의 날을 세워봤다. 아울러 횡재세 도입의 반대론과 재반박론도 면밀히 살펴봤다.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분위기다.[사진=뉴시스]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분위기다.[사진=뉴시스]

# “엑손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돈을 더 벌었다.”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 중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 굴지의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유가 급등 덕분에 막대한 이윤을 남긴 걸 비판한 거였다. 엑손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30억 달러(약 29조원)였다. 최근 미국 민주당은 영업이익률이 10%를 넘는 석유기업에 21%의 초과이득세(기존 법인세 21%+초과이득세 21%)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 유럽연합(EU)은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본부에서 열린 교통ㆍ통신ㆍ에너지이사회의 긴급회의를 통해 오는 12월부터 화석연료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석유ㆍ천연가스ㆍ석탄을 생산ㆍ정제하는 기업들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니 ‘연대 기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한시적이다. EU는 이번 조치를 통해 1400억 유로(약 197조원)에 이르는 세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이 재원을 소비자들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기업에 초과이득세, 일명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얘기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참고: ‘횡재세(windfall tax)’는 기업이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외부적 요인이나 독점적 지위를 통해 정상이득의 범위를 넘어선 초과이득이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정상이득의 범위는 국가별로 정하기 나름이다. 최근 각국의 횡재세 부과 논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따른 초과이득에 근거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중간에 다시 다뤘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18일 정유사를 겨냥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초과이득을 규정하고, 그 규정된 초과이득에 따라 법인세(횡재세)를 더 부과하겠다는 게 골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9월 1일 정유사와 은행을 겨냥해 국가재정법 개정안과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초과이득에 법인세를 더 부과하는 건 같지만 초과소득 계산법이 다르다. 초과이득세에 비과세나 과세면제 등의 조세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다.[※참고: 용혜인 의원은 은행도 금리인상 정책에 따라 과도한 초과이득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정유사와 마찬가지로 초과이득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과이득에 관한 비판은 야당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6월 23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동안 시중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초과이득세 부과의 찬반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은행이나 정유사들이 뜻하지 않게 과도한 이득을 얻고 있고,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기업들의 반발이 적지 않다. 특히 ‘횡재세’의 직접적인 타깃이 된 정유업계에선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해서 판매하는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시추를 통해 유가상승의 이득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석유메이저 기업들과 사업구조가 전혀 다르다”면서 “게다가 정제마진 하락으로 2020년에 수조원의 손실을 냈을 때는 정유사들이 오롯이 감당했는데, 이제 수익을 보고 있다고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건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예상치 못한 수익은 정유사들만 보는 게 아닌데 왜 우리를 비롯한 일부 업종에만 과세 의무를 지우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물론 정유업계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먼저 정유사들의 수익이 과도하게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유4사(SK에너지ㆍGS칼텍스ㆍ에쓰오일ㆍ현대오일뱅크)는 2020년에 3조5237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지난해 3조4278억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7조141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올 하반기에 수천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수익은 유지될 것이다. 

정유사들이 유류세 인하정책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유사와 주유업계가 유류세 인하분만큼 기름값을 내리지 않아 소비자들은 유류세 인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유사들이 “손실을 오롯이 감당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유업계의 항변 중에서 허투루 들어선 안 되는 건 두 대목이다. 하나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업종엔 왜 횡재세를 부과하지 않고 굳이 정유업계와 금융업계만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가”

다른 하나는 정유업계가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큰 수익을 낸 건 사실이지만, 종종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감소로 큰 손실을 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손실이 날 때는 정부가 도와주지도 않다가 큰 수익이 날 때는 세금만 걷어가겠다는 건가?” 

자! 지금부터 정유업계의 항변을 통해 우리가 논의해야 할 횡재세의 또다른 단면을 살펴보자. 

■항변❶ 횡재세 형평성 없나 = 우선 형평성 논란부터 따져보자. 만약 횡재세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과세라면 자본주의의 대표주자 격인 EU와 미국은 왜 횡재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걸까. 유럽의 횡재세 논의 배경은 독일의 정치학술재단인 로자룩셈부르크재단이 지난 8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는 횡재세 부과의 근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참고: 다음은 원문을 조금 풀어쓴 것이다.] 

“일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전쟁과 이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막대한 초과이득을 얻었다. 이 가운데 가장 명확한 이익을 본 건 석유생산업체들이다. 이들은 생산 비용이 인상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인상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았다. 원자력이나 풍력, 태양광(열), 기타 재생 에너지원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전력회사들도 초과이득을 얻었다. 이들의 전기 생산 비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같지만, 전력 교환가격은 크게 올랐다. 이는 가장 비싼 생산자의 원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국가들은 석유생산업체나 전력생산업체 등에 초과이득에 따른 세금을 한시적으로 부과하기로 했거나 부과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이득은 정유사들만 얻는 게 아니다.[사진=뉴시스]
뜻하지 않은 이득은 정유사들만 얻는 게 아니다.[사진=뉴시스]

요약하면 횡재세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초과이득을 얻은 기업’들에 ‘한시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란 거다. 따라서 횡재세는 일반적인 조세 논리가 아닌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것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초과이득을 보고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된 업종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단순히 이전보다 훨씬 큰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무턱대고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란 얘기다. 

이는 미국도 다르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인 1918년 미국은 유형자산을 통해 얻는 소득의 8%만 ‘정상 수익률’로 인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자산소득에는 최고 80%까지 횡재세를 부과한 바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얻은 초과이익에 추가 과세를 한 거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1945년에도 횡재세를 도입했다. 이번에 횡재세 법안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에서 발의된 횡재세 부과 법안은 총 3개인데, 그중 하나는 ‘푸틴전쟁에 따른 수익 획득 금지법’이다. 

이번에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용혜인 의원실의 설명도 이와 같다. 의원실 관계자는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 탓에 국제유가가 올랐고, 정유사들은 이로 인해 막대한 초과이득을 얻었다”면서 “그게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항변❷ 초과이득에 추가 과세 옳은가 = 그럼 “손실이 날 때는 도와주지도 않다가 수익이 날 때 세금만 걷어가려는 것이냐”는 두번째 항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세금의 원칙을 고려하면 이 논란은 무의미해진다. 손실이 나면 그저 세금을 걷지 않거나 줄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인세 규정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고 있는데 추가 과세는 잘못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횡재세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초과이득을 얻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세율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횡재세로 얻어진 재원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전쟁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일부만 초과이득을 얻는다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세율을 조정할 이유는 충분하다. 

캐나다 맥길대(세법학)의 앨리슨 크리스찬 교수가 2020년 5월 세무전문지 택스노츠(taxnotes)에 기고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과이득을 얻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에서도 이런 논거를 엿볼 수 있다. 

“초과이득세(횡재세)는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이윤 추구를 제어하는 것이다. 대중이 공포와 상실에 사로잡혀 있고, 공중보건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코로나19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동안 일부가 횡재를 누리는 시기에 그에 걸맞은 세금 부과는 재정 적자를 충당할 재원이 될 수 있다.” 징벌적 개념의 횡재세 부과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손실이 났을 때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정유업계의 주장에도 반론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법인세에는 이월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법인세를 과세할 때 과거의 손실을 감안해서 법인세를 상계해주는 제도로 개인에겐 없는 혜택이다. 결국 ‘손실이 날 때는 도와주지도 않다가 수익이 날 때 세금만 걷어가려는 것이냐’는 주장으로 횡재세를 피해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자! 이제 횡재세 논쟁을 정리해보자.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뜬금없는 게 아니다. 유럽과 미국이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고, 전례도 있다.

물론 횡재세 도입을 위해선 부수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어디까지를 초과이득으로 볼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국내 정유업계가 외국의 석유회사들처럼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을 정도의 이익을 보고 있는가’도 따져봐야 한다.[※참고: 우리나라에는 이미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에서 초과이득의 기준을 담고 있는 만큼 참조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의 없이 횡재세를 밀어붙이면 고물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세무학) 교수는 “이미 많은 정부가 횡재세를 운용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도 횡재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기업들이 너무 큰 손실을 내면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법정관리제도는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들이 초과이득을 얻었을 때는 세금을 더 내는 횡재세 도입도 생각해볼 수 있다. 횡재세는 초과이득에 부과하는 만큼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지도 않는다. 횡재세로 마련된 재원을 사회불평등 해소의 재원으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우리가 횡재세 논의를 피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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