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서브 컬처 붐

낸시랭 작가의 작품.
낸시랭 작가의 작품.

최근 미술계 평론가와 함께 예술 행사를 기획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서브 컬처(subculture)’를 활용한 미술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10여년 전 명품브랜드의 로고나 제품을 작품에 도입했던 것과는 또 다른 양태다.[※참고: 서브 컬처는 어떤 사회의 전체적인 문화(total culture)나 주요 문화(main culture)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세상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 땐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있다. 모든 사물을 제어하는 철학이 사실상 변화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철학이 변화된 미래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는 건데, 이는 주식 등 금융시장이 6개월여 후의 시장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계몽’이다. 아티스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나 철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계몽하고, 혁신의 물결을 일으킨다. 가령, 바이올린이 악기가 아닌 소장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백남준이나 보이지 않는 자본을 작품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앤디 워홀이 그런 계몽과 혁신을 이끌어온 주인공들이다.

그들을 보면, 아티스트는 그저 예쁜 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금융시장이 6개월 후의 실물경제를 보여주듯, 아티스트의 철학은 미래 사회에 나타날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홍승태 작가의 작품.
홍승태 작가의 작품.

이런 맥락에서 한국 예술계에서 ‘서브 컬처’가 부각된다는 건 일종의 계몽이자 혁신이라고 봐야 한다. 서브 컬처가 한국 예술계에 모습을 드러낸 덴 콜라보레이션이나 인플루언서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 평론가들은 일찌감치 고급문화로 일컬어지는 시각예술과 대중문화로 인식돼온 영화나 만화의 결합(혹은 협업)이 변화나 혁신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시각예술과 영화나 만화의 콜라보레이션은 주류문화가 아닌 ‘서브 컬처’를 이끌면서 한국 문화산업에 변화의 물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시각예술계에선 서브 컬처적인 팝아트 작품이, 문화산업계에선 서브 컬처적인 콜라보 작품이 변화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거다.

이런 현상은 향후 한국이 주류적 의미의 명품을 중시하던 환경에서 무형의 문화산업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로 변할 것임을 시사한다. 변화의 분위기는 벌써 감지된다. ‘오징어게임’을 비롯, 세계에서 인정받는 K-콘텐츠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김정대 작가의 작품.
김정대 작가의 작품.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제조업이 주류인 한국 경제의 무게 중심도 문화산업이나 디지털산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원재료나 부품이 아니라 사람의 창의성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열릴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고, 그 중심엔 서브 컬처와 창의적 문화산업이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 제조업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필자가 시각예술계에서 일어난 ‘서브 컬처’ 붐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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