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단단히 치렀던 엔씨소프트
코앞까지 따라온 중국게임
리니지는 원신 진격 막을 수 있나

모바일 게임 업계 1위인 ‘리니지’의 아성을 중국 게임 ‘원신’이 넘보고 있습니다. 원신은 과금·게임 시스템 면에서 리니지와 상반된 전략을 취해 국내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반면 리니지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운영사인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지나친 과금 요소로 유저들의 분노를 샀는데, 그 분노가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엔씨소프트 제공]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엔씨소프트 제공]

엔씨소프트에 2021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한해였을 겁니다. 8월 야심차게 출시했던 신작 ‘블레이드&소울2’가 흥행에 실패한 데다, 유저(게임 이용자)들이 엔씨소프트에 등을 돌리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죠.

당시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월 ‘리니지M’의 유료 시스템 중 하나의 가격을 인하했다가 한달 만에 되돌렸습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한 유저들은 당연히 현금으로 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엔씨소프트는 게임에서 쓰이는 현금성 재화 ‘다이아’로 돌려줬습니다. 단단히 뿔이 난 유저들은 불매운동을 펼치고 본사에 문구를 적은 트럭을 보내는 등 불만을 표시했죠.

엔씨소프트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5월 출시한 ‘트릭스터M’은 “현금 결제 유도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는 비판을 받았고, 블레이드&소울2도 엔씨소프트의 악명 높은 과금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해 출시했습니다. 이는 유저들이 “엔씨가 돈독이 올라도 단단히 올랐다”며 격분할 만한 대목이었죠.

팬덤의 분노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2월 104만8000원을 기록했던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6개월여 만에 62만원2000원(9월 3일)으로 급락했습니다. 엔씨소프트가 부랴부랴 자사주 1899억원어치를 매입(9월 6일)했지만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죠. 다행히 그해 11월 출시한 ‘리니지W’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주가가 12월 10일 73만7000원까지 상승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악재가 겹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올 상반기에 불어닥친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빠지면서 자산시장이 얼어붙었고, 엔씨소프트 주가도 곤두박질쳤습니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46만1000원(11월 16일). 고금리의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초(104만원8000원·2월 10일)와 비교하면 주가가 무척 초라합니다.

그럼 엔씨소프트의 과금 시스템이 어떻길래 비난을 받는 걸까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일일이 풀어 말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익명을 원한 한 유저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리니지의 세계에서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수천만원은 기본으로 투자해야 한다. 몇백만원 정도는 과금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정도 ‘과금 유저’는 게임 내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돈을 많이 쓴 고과금 유저들과 경쟁할 수도 없다. 리니지 유저는 울며 겨자먹기로 끊임없이 과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금 리스크’로 곤욕을 치른 엔씨소프트의 위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까요.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공고한 듯합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대표게임 리니지M과 리니지W는 올해 초부터 지금(11월 23일 기준)까지 일 매출 순위에서 단 한번도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습니다(안드로이드 기준).

두 게임이 벌어들인 돈도 여전히 어마어마합니다. 지난 3분기에만 리니지W가 기록한 매출은 1971억원, 리니지M은 1465억원에 달합니다. 신규 지식재산권(IP)으로 만든 블레이드&소울2 매출이 81억원에 머무르긴 했지만 리니지 게임들의 성적만 놓고 보면 지난해 우여곡절을 겪은 엔씨소프트로선 나쁘지 않은 성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순위 밑단까지 살펴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엔씨소프트가 휘청거린 틈을 파고들었는지 중국 게임 ‘원신’이 리니지의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원신은 게임 업데이트 때를 제외하면 일 매출 순위가 20~30위권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기세가 남다릅니다. 일 매출이 꾸준히 10~20위권을 유지하고 있죠. 지난 10월 10일엔 일 매출 3위를 기록해 1·2위인 리니지W와 리니지M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리니지가 중국 게임에 안방을 내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코앞까지 따라온 중국게임

물론 원신이 이같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건 리니지 못지않게 과금 요소가 많아서입니다. 원신에도 리니지처럼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데, 이를 얻기 위해선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과금 시스템을 갖고 있음에도 원신을 향한 유저들의 평가는 리니지와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나 구글 플레이 이용자 평가를 살펴봐도 원신의 과금 시스템을 문제 삼는 유저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유가 뭘까요.

업계에선 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소과금’에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리니지와 다르게 원신은 과금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혼자서 게임 스토리를 진행하는 게 원신의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저 대 유저 전투(PVP)가 중요한 리니지와 가장 큰 차이점이죠. 다른 유저와 경쟁할 일이 없으니, 과금을 많이 할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대신, 원신은 유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원신에서 유저는 총 5개의 캐릭터를 동시에 다룰 수 있습니다. 보통 20만~30만원이면 캐릭터 한명을 뽑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원신은 이 캐릭터를 출시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유저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서죠.

이 전략이 통했는지 원신은 전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안방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9월 한달에만 중국 제외 국가에서 거둔 매출이 2억3400만 달러(3099억원)에 달합니다. 이 덕분에 중국 모바일 게임 매출 1위, 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 1위를 동시 달성하는 데 성공했죠.

원신이 흥행하는 비결은 또 있습니다. 유저들을 위한 ‘콘텐츠 퀄리티’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리니지를 포함한 기존 게임의 대부분은 유저의 게임 이용시간을 늘리기 위한 ‘반복성 콘텐츠’를 갖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번 특정 장소를 방문하거나 특정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하는 식이죠. 남들보다 강해지려면 매일 이 콘텐츠를 완료해야 하니, 유저 입장에선 꽤 귀찮은 ‘숙제’나 다름없습니다.

원신은 이런 반복 콘텐츠를 대폭 줄였습니다. 5~10분만 투자하면 끝낼 수 있도록 만들고, 유저가 게임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죠. 유저들이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게 원신의 두번째 전략인 겁니다.

원신은 과금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사진=미호요 제공]
원신은 과금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사진=미호요 제공]

물론 원신의 인기가 대단하긴 합니다만, 리니지 시리즈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엔씨소프트의 전망엔 문제가 없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국게임학회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한국의 게임은 확률형 아이템 등 도박 요소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서구권은 도박성 게임에 거부감이 강하고, 게임의 작품성을 중요하게 따진다. 일찍이 해외 진출을 시도했던 리니지가 맥을 못 췄던 반면, 후발주자였던 원신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다. 국내 시장도 이런 해외 시장의 추세를 따라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유저들의 공분을 샀던 엔씨소프트는 ‘빈틈’을 보였고, 해외 게임이 그 자리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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