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유동성 위기 확산
10여년 전 PF 부실의 반복
건설산업 구조조정도 필요

건설업계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고금리 국면과 지난 9월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입’에서 시작된 국내 채권시장 자금경색이 더해진 결과다. 위기가 심각해서인지 이참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어제오늘 나온 주장이 아닌 데다 수박 겉핥기식 논의만 거듭해온 탓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롯데건설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롯데건설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롯데건설은 지난 10월 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롯데건설 주요 주주인 롯데케미칼(879억원)과 호텔롯데(861억원), 롯데알미늄(199억원) 등이 지분율에 따라 투자를 단행했다. 

롯데케미칼은 이와 별도로 롯데건설에 5000억원의 단기자금도 빌려줬다.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기 위해 2조7000억원이라는 돈을 마련해야 하고, 이 가운데 1조7000억원의 자금을 대출로 메울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롯데케미칼의 자금 지원도 부족했는지 롯데건설은 11월에는 롯데정밀화학과 롯데홈쇼핑에서 각각 3000억원과 1000억원을, 하나은행과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2000억원과 15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도급순위 8위(2022년 기준) 롯데건설의 현주소다. 

중요한 건 이게 롯데건설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 건설사들 가운데 여윳돈이 있는 곳들은 회사채를 현금 상환하고 있다. 시장에서 건설업계의 유동성 문제가 떠오르자 건설사들이 선제적인 위기관리에 나섰다는 건데,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 포스코건설과 SK에코플랜트는 각각 1100억원, 2000억원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자체 현금으로 상환했다. 삼성물산도 11월 만기 도래 회사채 500억원을 현금 상환했다. 

반면 자금을 구할 수 없는 건설사는 건설현장 중단이나 지연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10월(10~28일) 전국의 건설업체 1만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건설공사 현장 100곳 가운데 13곳의 공사가 중단됐거나 지연됐다. 이유(중복응답)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미실행(66.7%)’과 ‘시행사의 공사비 인상 거부(60.0%)’ 등이었다. 

대기업처럼 자금을 동원할 수 없는 중견ㆍ중소 건설업계에선 이미 도미노 부도설이 심심찮게 나온다. 일례로 지난 11월 25일과 28일에 도래한 총 2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 도급순위 388위의 동원건설산업은 최종 부도 처리됐다. 최근 부동산 PF 경색과 금융권의 대출 제한 조치 등에 따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건설업계는 부동산PF 문제로 위기에 몰렸다.[사진=뉴시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건설업계는 부동산PF 문제로 위기에 몰렸다.[사진=뉴시스]

그럼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 9월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입’이었다. 강원도가 PF를 통해 레고랜드를 건설한 공기업의 지급보증을 섰는데도, 김 지사의 결정으로 해당 공기업의 회생을 신청하면서 채권시장에 자금경색이 시작됐다.[※참고: PF란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 중 하나다. 자금을 제공하는 이들이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고려해 대출을 결정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원금과 일정한 수익을 돌려받는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건설사 유동성 위기론은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던 올해 초부터 조금씩 불거졌다. 부동산 PF를 활용해 건설사업이나 부동산개발사업을 진행하던 건설사에 가파른 금리상승은 무서운 변수로 작용했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갚아야 할 돈의 액수도 확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금리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대규모 부실 우려가 나오는 대출 구조가 과연 정상적이냐는 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부동산 PF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적을 좀 더 쉽게 풀어보자. 금융권이 돈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곳에 대출해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래서 해외에선 부동산 PF가 주로 사회간접자본(SOC)을 공사할 때 발생한다. 국내는 다르다. 건설사가 신용도나 담보 등을 제공해 대출을 받는 경우가 숱하다, 신용도나 담보가 부족하면 지급보증이나 채무인수약정 등을 요구받는다.

맹점은 어느 쪽이든 부동산개발 실패 리스크를 시공사인 건설사가 안고 간다는 거다. 하지만 이 리스크를 완전히 짊어질 수 있는 건설사는 많지 않다. 애초에 돈이 있었다면 대출을 할 이유도 없어서다. 부동산  PF의 구조적 한계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꼬집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저축은행 부실화 사태 등을 겪으면서 수많은 건설사들이 도산했는데, 당시에도 무분별한 부동산 PF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10년도 더 흐른 지금 똑같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왜 이런 걸까.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물론 부동산 PF는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냉정하게 분석한 다음 이뤄져야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면서 “금융사나 보험사처럼 대출을 해주는 곳들은 사업성을 분석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부동산은 시장의 논리로만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에 사업성 분석이 현실에 안 맞는 경우도 있다”면서 “예컨대 아파트 분양 수익을 꼼꼼하게 계산해놨는데 갑자기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모든 분석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PF의 구조적 문제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는 거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2013년 부동산 PF사업의 평가 기준을 만들어 운용하기 위해 용역연구를 발주했다. 당시 국토부는 “용역 후 부동산개발사업의 새로운 평가 기준이 수립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듬해 ‘표준 PF 기준’이라는 걸 만들어 현장에 적용해보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부동산 PF로 인한 부실화 이슈가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정주 실장은 “부동산 PF의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면서 “부동산 PF 관련 리스크는 건설업계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부동산 PF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익명을 원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답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커서 어려울 뿐”이라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부동산 PF 진입장벽을 높이면 된다. 어느 정도 자본력을 갖추고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시행사와 시공사에만 부동산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다만 건설산업 전반에 손을 대야 하니까 정부로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 위기가 잠잠해진 후 부동산 호황기에 이익을 많이 낸 시행사나 시공사, 금융사 등으로부터 위기대응을 위한 부담금을 걷어 기금이나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진입장벽을 높이면 주택건설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선분양 시스템을 손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분양 시스템은 그동안 소비자 피해를 키운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지의 문제라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