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금융사건해결사
금융당국 경고 무시한 테라폼랩스
디지털 자산기본법의 뚜렷한 한계
법 없든 있든 못 막는 건 ‘도긴개긴’

“관련법이 없어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었다.” 2018년 금융당국은 루나 코인을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문제점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권한 밖의 일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지난 10월 발의된 ‘디지털 자산기본법’이 제정되면 제2, 제3의 루나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이 또한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현재 발의된 ‘디지털 자산기본법’으로는 제2, 제3의 루나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개발자의 도덕적 해이와 가상자산 투자 열풍을 좇아 움직인 투자자의 본능.” 올해 5월 28만명의 투자자를 경악하게 만든 ‘루나 사태’의 원인이다. 하지만 루나 사태를 키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방치도 한몫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논란을 살펴보기 전에 루나 사태를 복기해보자. 루나코인은 스테이블코인(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가상자산의 유통량에 비례하는 실물자산을 담보로 예치해 적정 가치를 유지하게 했다. 여기에 코인을 맡기면 연 19.5%의 이자를 지급하는 일종의 가상자산예금 ‘앵커프로토콜’이란 투자 방식을 고수했다. 많은 투자자가 루나코인에 매력을 느낀 이유다. 

루나코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도 상승세를 탔다. 2019년 발행 이후 개당 200~ 300원대에 머물던 가격은 지난해 1월 급등하기 시작해 연말 10만원대를 넘어섰다. 급등세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올해 4월 5일엔 14만4400원까지 치솟으며 최고치를 찍었다(코인마켓캡 기준). 하지만 앵커프로토콜이 연 19.5% 이자를 계속 지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여기서 비롯된 논란은 파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 ‘큰손’ 매도에 놀란 투자자가 투매를 시작했던 거다. 


지난 5월 9일 7만6000원대로 떨어진 루나코인의 가격은 이를 기점으로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다. 3일 만인 5월 12일 루나코인의 가격은 개당 253원으로 하락했다. 수익률은 –99.99%, 말 그대로 수직 낙하였다. 국내에서만 28만명이 넘는 투자자가 77조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고, 지금까지 관련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11월 27일 루나코인의 또다른 소식이 YTN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루나코인 개발자 권도형 대표와 테라폼랩스를 함께 설립한 신현성 대표(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가 금융감독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사업을 진행했다는 게 보도의 골자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2018년 테라폼랩스가 가상자산을 이용한 결제사업을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할지 ‘결제업’으로 등록할지 금융감독원에 문의했다. 금감원은 “가상자산은 어떤 형태로도 결제사업 등록이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비슷한 경고를 2019년까지 여러 차례 반복했다. 금융당국이 루나 사태가 터지기 4년 전에 테라폼랩스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다. 

시장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금융당국이 루나코인의 문제점을 알고도 왜 가만히 있었냐는 거다. 당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했거나 감독했으면 루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다.

금융당국은 “당시엔 그럴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테라폼스랩의 문의에 창구지도 차원에서 답변한 것뿐이다. 이를 근거로 제재하거나 조치를 취할 권한이 우리에겐 없었다. 관련법도 없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55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아직 없다. 관련법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한 것도 최근이다.

지난 10월 31일 발의된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디지털 자산기본법)’이 그 출발점이다. 2018년 금융당국엔 가상자산을 규제할 법도 권한도 없었다는 것이다.[※참고: 가상자산 산업을 담당할 주무부처가 결정된 건 지난 5월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관리·감독을 담당할 기관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핑퐁 게임’을 벌인 결과다. 금융위는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무부처 선정을 꺼렸다.] 

홍기훈 홍익대(경영학) 교수는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규제기관이 움직이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가상자산을 규제해선 안 된다던 당시 시장의 여론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시장 규제를 위해 가상자산 거래소 폐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규제를 없애 키워야 할 가상자산 시장을 되레 옥죄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 논의 중인 디지털 자산기본법이 제정되면 제2, 제3의 루나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시장의 전망은 회의적이다. 또다른 루나 사태를 막기엔 법이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디지털금융) 교수는 “가상자산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발의된 디지털 자산기본법은 최소한의 내용만 담고 있다. 가상자산을 발행하려면 금융위에 등록해야 한다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곳을 규제하는 내용은 법안에 없다. 법이 없을 때보다야 좋아지겠지만 제2의 루나 사태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홍기훈 교수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법안이 담고 있는 규제가 너무 약하다”며 “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을 활용해 규제를 시작하고, 자본시장법과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