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찰: 출산의 거래학➍
출산과 주거정책 연계해야
보육에 관심 뒀던 신혼희망타운
尹 정부 사실상 폐지한 이유
신혼희망타운에 경제논리 적용
보육 간과했다는 지적 많아

윤석열 정부가 좁은 면적과 시세 차익 제한으로 비판받던 신혼희망타운을 사실상 폐지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좁은 면적과 시세 차익 제한으로 비판받던 신혼희망타운을 사실상 폐지했다.[사진=뉴시스]

출산율에 ‘집’이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출생 문제를 주거와 연결하기 시작한 건 2008년 보금자리주택부터다. 이후 좁더라도 도심 가까이에 청년ㆍ신혼부부가 거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이 2013년 도입됐고 거주공간뿐만 아니라 보육시설까지 신경 쓴 신혼희망타운이 2018년 탄생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4년 만에 신혼희망타운을 사실상 폐지했다. 왜일까. 

‘집’은 가정의 모든 계획을 좌지우지한다. 예비부부의 혼인 시점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는 집을 구할 수 있는 시기다. 혼인 후 출산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집 주변에 보육 시설은 충분한지, 학교 등 교육 시설은 있는지, 어린이가 지내기에 안전한 곳인지 여부는 장기 거주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출생과 주거정책은 떼놓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가 출생과 주거정책의 연관성을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보금자리주택부터다. 분양과 임대로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에는 신혼부부가 안정적으로 주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투영됐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은 공공이 보유한 땅에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울 도심과는 멀었다.

이런 보금자리주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임대로만 공급하는 행복주택을 내놨다. 도심 주변에 공급하는 대신 비싼 토지 가격은 면적을 줄이는 것으로 상쇄했다. 공공이 택지를 마련하는 대신 민간이 건설하는 아파트 중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주거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아이가 클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출산을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판으로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형 주택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육아 맞춤형 공공주택인 ‘신혼희망타운’이다. 

신혼희망타운은 이전에 공급됐던 다른 공공주택과 다르게 ‘보육시설’에 집중했다. 이곳엔 예비부부, 한부모 가정, 아이를 계획하고 있거나 이미 아이가 있는 가족만 입주할 수 있기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과 보육시설의 설치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자 정부에서 운영비를 보조하는 보육 시설은 신혼희망타운 주민 자녀들뿐만 아니라 인근에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이용할 수 있다. 신혼희망타운이 생긴다는 건 곧 동네에 보육 시설이 확충된다는 뜻이다.[※참고: 모든 신혼희망타운 안에 항상 국공립어린이집이 있는 건 아니다. 이웃 공공주택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혼희망타운이 500세대 규모로 대단지는 아니었지만 실내외 놀이터를 별도로 갖추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를 위한 등굣길도 따로 마련하도록 했다.

분양과 임대로 모두 공급하기 때문에 비교적 소득이 적은 부부도 이런 보육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과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이 공급과 거주 비용 완화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다른 시도였다. 


하지만 신혼희망타운은 시작부터 숱한 지적에 시달렸다. 너무 작은 크기(최대 전용면적 59㎡) 때문에 신혼부부들이 입주를 꺼린다는 거였다. 입주한 가구에 이미 아이가 있는 경우 둘째 아이를 낳는 게 어려울 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윤석열 정부는 신혼희망타운의 밑그림을 사실상 바꿔버렸다.

전용면적 59㎡ 이하였던 주택 면적을 더 넓히기로 결정한 거다. 공공주택 입주를 위한 자금 마련 방식도 다양화했다. 문 정부 시절 일정 금액 이상으로 분양하는 신혼희망타운에는 의무적으로 수익공유형 모기지를 적용해 시세 차익 일부(10~50%)를 공공에 돌려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윤 정부가 이런 비판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공공주택 공급 방식은 시세 70% 수준의 분양가로 공급한 이후 ▲시세 차익(70% 보장)을 공공과 공유하는 나눔형 ▲6년 임대 후 분양하는 선택형 ▲시세의 80% 수준으로 분양하는 일반형으로 나눴다. 

신혼희망타운을 집값 부담을 덜고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시세 차익도 70%까지 챙길 수 있는 모델로 변경했지만, 마냥 희소식인 건 아니다. 기존에 있던 신혼희망타운 물량을 나눠서 청년에게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를 위한 공급량 자체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정해진 주택 물량을 놓고 신혼부부와 청년에게 배분하다 보니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신혼희망타운의 핵심 밑그림이었던 보육 인프라 계획도 안갯속으로 빠졌다.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 3단지와 서울 동작구 수도방위사령부 부지는 애초 신혼희망타운으로 계획돼 있었다.

그대로 추진했다면 해당 단지 내에도 보육 시설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23년 사전 청약을 받고 2026년 본청약이 계획된 고덕강일 3단지에 신혼희망타운과 비슷한 수준의 보육시설을 설치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급이 끝난 후 보육환경을 조성하려면 숱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의 밑그림을 그릴 때 보육시설을 넣겠다는 신혼희망타운의 계획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를 흔든 윤 정부엔 별다른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혼희망타운 사업을 추진할 당시 관계 기관이었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공공주택 안에 보육 인프라를 놓을 만한 공간을 확보하는 건 국토교통부에서 담당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신혼희망타운 내 공동육아나눔터 운영 지원 업무를 담당한 여성가족부 관계자 역시 “보육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갖추는 건 지자체가 장소 발굴을 해내야 가능한 것”이라며 “여성가족부에서는 보육 시설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정권에서 만든 신혼희망타운의 밑그림을 바꾸고, 이를 청년과 나누겠다고 선언한 윤 정부의 정책은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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