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❶ 대한적십자사 민낯
기관장급 근태 기록 누락 숱해
전현직 사무총장 출퇴근 기록 없어
“관용차 있어 안 해도 돼” 이상한 해명
국감 때 지적받고도 “해프닝일 뿐”
국감 4개월 지나고도 후속 보고 안 해

여기 헌혈과 회비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있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적 우위를 견지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주요 기관장들이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일하는가 하면 사무총장 같은 중요 직위를 내부공모 절차도 없이 임명했다. 혈액원에 화재가 발생해 혈액제제가 낭비되는 대형 사고를 쳤는데도 화재 원인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더스쿠프가 국민의 냉소와 허탈감을 부르는 대한적십자사의 느슨한 근태와 채용, 감사 시스템을 살펴봤다. 대한적십자사의 민낯 첫번째 편이다. 

대한적십자사 일부 고위직 임원들은 근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일부 고위직 임원들은 근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고위직의 근태는 불량했다. 그냥 불량한 수준이 아니었다. 4375명이 일하는 대한적십자사의 사무를 총괄하는 이상천 사무총장은 2021년 11월 임명 이후 지난해 8월 16일까지의 근태기록을 전부 누락했다.

이 사무총장의 전임 사무총장 역시 임기(2020년 11월 16일~2021년 3월 31일) 동안 출근 카드를 딱 하루만 찍었다. 사무총장은 대한적십자사의 최고 실권자인데도 출퇴근은 제시간에 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헌혈사업을 이끄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도 그랬다. 2019년 7월에 임명된 혈액관리본부장은 지난해 8월까지 근태기록 자체가 전무했다. 

각 지역의 대한적십자사를 이끄는 지역 사무처장의 근태 관리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였다. 강원지사 사무처장은 2019년 8월 1일부터 2020년 7월 13일, 2020년 11월 2일~2021년 1월 7일 사이에 근태 데이터가 없었다. 경기지사 사무처장의 근태기록 역시 2019년 8월 1일부터 2020년 12월 4일까지 ‘데이터 손실’로 소멸했다. 

지역 공공의료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적십자사병원 고위직의 행태도 비슷했다. 가령 인천적십자병원 원장의 근태기록은 2018년 8월 1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4년가량 누락돼 있었다.

서울적십자병원 원장 역시 2019년 8월 1일부터 2020년 2월 27일까지의 근태 데이터가 없었다. 경인권역재활병원 원장, 영주적십자병원 원장도 곳곳에서 근태기록이 누락돼 있었다. 이들 모두 직위 1~2급에 해당하는 고위 기관장이다. 

여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대한적십자에서도 근태 관리 부실은 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기관의 내규인 직원운용규정은 “직무상의 의무에 위반하거나 또는 직무를 태만했을 때”를 징계 사유로 정해놨다. 징계 처분은 강도에 따라선 중징계인 파면과 해임도 가능하다. 대한적십자사 복무 관련 내규의 첫번째 조항에 “직원은 성실과 능력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며 상사의 직무상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적십자사의 근태 관리 부실이 세간에 드러난 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였다. 당시 사무총장과 혈액관리본부장의 근태기록 누락을 지적하자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상근직이긴 하지만 그간의 관례상 상급 직원들은 그런 걸 안 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관례상 기록만 남기지 않았을 뿐, 실제 근태엔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다.

물론 신 회장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근태기록을 빠짐없이 남긴 기관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현직 사무총장이 출퇴근 카드를 제대로 찍지 않았지만 사무총장 자리가 공석일 때 직무대행을 맡았던 이들은 대행기간 근태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근태기록은 해당 직원이 성실히 근무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인사 자료다. 이 기록이 없으면 근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대한적십자사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2회 근무평정을 진행하는데, 근태기록이 누락된 이들의 평가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지적을 받고도 대한적십자사가 별다른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정감사가 종료한 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국회는 후속 보고를 받지 못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고영인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고위직 근태가 엉망이라는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관리 미흡이 드러났다”면서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측은 국정감사가 끝난 뒤에도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는 중간보고만 올렸을 뿐, 지금껏 후속 조치가 어떻게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자료 | 더스쿠프]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자료 | 더스쿠프]

■ 해명 속 의문=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해당 기록만으로 근태가 부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대한적십자사 건물 대부분은 출입문이 개방된 탓에 직원들이 간혹 전자태그를 하지 않고 출퇴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건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국회에서 자료를 너무 급하게 요구해서 보낸 게 화를 불렀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터진 이후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기록이 없는 기관장 대부분이 실제론 정상적으로 출퇴근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다만, 한명의 출퇴근에 문제가 발견돼서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엔 빈틈이 너무 많다. 한가지씩 따져보자. 대한적십자사 본사 건물의 출입문이 개방된 건 사실이지만,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면 대한적십자사 본사 임직원은 ‘출퇴근 장치’에 사원증을 태그한 뒤 들어간다. 

이런 맥락에서 비상근직이거나 자원봉사자 아닌 이상에야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전현직 사무총장의 출퇴근 기록이 없는 것만으로도 문제란 거다. 

그러자 대한적십자사 측은 또다른 해명을 내놨다. “관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무총장은 출퇴근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다. 더구나 사무총장이 오전 8시 30분에 회의를 직접 주재해 왔기   때문에 근무 기록을 입증할 수 있다.” 

관용차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출퇴근을 입증하는 ‘태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문제지만, 이상한 건 또 있다. 관용차로 출퇴근을 하더라도, 사무총장은 본사 임직원과 똑같은 ‘경로’를 통해 건물에 들어간다. 직전 사무총장과 현 사무총장의 출퇴근 기록이 없다는 건 관용차를 타든 말든 그 자리에만 오르면 ‘출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거다.

고영인 의원실 측은 “국정감사 때도 대한적십자사 측이 다른 자료로 증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허황된 주장”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기록이 누락됐다는 점에서 고위직 일부의 근태 관리가 소홀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다. 기관 내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제대로 태그를 하지 않은 것 아닌가. 일반 직원들도 이들 기관장처럼 장기간 기록을 누락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되묻고 싶다.” 


이처럼 대한적십자사 고위직이 복무관리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 대한적십자사는 기타공공기관이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에 따라 국내 혈액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재난구호사업, 응급구호사업, 자원봉사사업, 이산가족 재회사업, 공공의료사업 등을 법적인 임무로 수행하고 있다. 전시엔 군 의료보조기관으로 참여한다. 모두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공공사업이다. 

도맡은 사업이 많다 보니 대한적십자사는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근간은 헌혈과 적십자회비, 그리고 국고보조금이다. 올해 대한적십자사가 책정한 예산만 해도 1조516억원(2023년 기준)에 이른다. 이중 국민들의 헌혈로 얻은 혈액을 병원과 제약사 등에 판매해 벌어들인 돈(혈액제제 수입)은 3273억원에 달했다.

대한적십자사는 국민들의 헌혈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다.[사진=뉴시스]
대한적십자사는 국민들의 헌혈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다.[사진=뉴시스]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성금인 적십자회비로 거둬들인 돈은 837억원이었다. 각 부서가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의 합계 역시 489억원으로 적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가 사실상 국민들의 피와 혈세로 굴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근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는 연봉 역시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기본봉급이 월 401만원에 직무수행 경비만 해도 월 220만원이 부여된다. 여기에 직책보조비 60만원에 각종 성과금을 추가하면 웬만한 억대 연봉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대한적십자사 임직원들은 일하는 태도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직원에게 업무를 부여하기 위해 끼우는 첫 단추인 채용절차에서도 개선해야 할 과제가 숱하게 드러났다. 더 심각한 건 이런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도 내부감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당신이 회비 내는 적십자사의 민낯’ 두번째 편에서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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