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❷ 무너진 감사 시스템
사무총장 내부공모 없이 임명
법과 내규 따르면 문제없다지만
국감서 채용 과정 문제로 ‘눈총’
내규 국민 눈높이 맞춰 끌어올려야
국회 지적에 미동도 없는 감사실
대구혈액원 화재 때도 늑장 대처
국민 위한다는 기관의 모럴해저드

# 대한적십자사 고위직은 근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반 직원에겐 통상의 절차일 뿐인 ‘출퇴근 태그’조차 찍지 않아 관련 기록을 수개월 누락했다. 이것만으로도 공정하지 않은 데, ‘관용차를 타고 다녀서 찍지 않은 것’이란 그들의 변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 그런데 기본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직원에게 업무를 부여하기 위해 끼우는 첫 단추인 채용 절차에서도 개선해야 할 과제가 숱하게 많다.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지적받고도 내부감사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 대한적십자사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반복해서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대한적십자사의 민낯 두번째 편이다. 

각종 구설에 올랐음에도 대한적십자사의 내부감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각종 구설에 올랐음에도 대한적십자사의 내부감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대한적십자사의 현 혈액관리본부장은 2021년 7월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별도의 공모 절차 없이 채용 계약이 1년 연장됐다(고영실 의원실). 1편에서 언급했듯, 혈액관리본부장은 이 기간 근태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근태 관리 부실로 징계는커녕 재계약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는 거다. 혈액관리본부장은 연장 계약이 끝난 뒤에 열린 지난해 공개공모 절차에서도 최종 후보로 낙점돼 추가로 2년 임기의 계약을 맺었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채용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혈액관리본부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받는 자리도 아닌 데다 사측이 공개모집에 의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공정하게 진행했다는 거다. 하지만 근태 기록이 아예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연장 여부’를 결정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상천 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을 채용할 땐 공개공모 절차가 아예 없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제26대 사무총장을 채용할 때 기관 홈페이지와 정부 공시사이트인 알리오에 사무총장을 모집하는 공고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임 사무총장은 1급 기관장급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응모 기회를 부여하는 ‘내부공모’ 절차라도 거쳤는데, 현 사무총장을 뽑을 땐 그런 과정도 생략했다. 최소한의 요식 절차도 밟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이 절차가 법적 위반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에는 ‘사무총장은 회장이 임명하되,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만 명시돼있다. 다시 말해, 법적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돼온 셈이고, 대한적십자사 측은 이를 개선하지 않은 채 맘껏 활용했다는 얘기다. 대한적십자사의 직전 사무총장이 큰 사건에 휘말렸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임명 절차’의 부실함 때문이었다. [※ 참고: 자세한 이야기는 표지이야기 세번째 편에서 다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의원실 관계자는 “법과 내규에 맞게 진행됐더라도 그 규칙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바꾸는 게 옳다”면서 “채용 절차가 졸속이 되지 않도록 다른 공공기관 수준으로 내규를 개정하라고 요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적십자사의 이런 졸속 채용 행태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는 ‘채용비리통합신고센터’를 출범하고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채용이 적정했는지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권익위는 조사 결과에 따라 수사의뢰ㆍ징계요구 등 엄중히 조치할 계획인데, 대한적십자사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대한적십자사는 권익위로부터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는 권익위로부터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 조사로 대한적십자사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권익위는 조사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단계별 채용 절차 서류를 제출받고 있는데, 대한적십자사가 꼼꼼하게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탓이다.

현재 권익위가 요구하는 서류 항목만 11개다. ▲채용계획 수립 ▲관리ㆍ감독기관 사전 협의 자료 ▲채용계획 인사위원회 상정 및 의결 ▲채용 공고 ▲서류심사 상세계획(심사위원 구성 등) 수립 및 보고 ▲서류심사 결과 보고 ▲면접심사 상세계획 수립(심사위원 구성 등) 및 보고 ▲면접심사 결과 보고, ▲응시서류(자격요건 등) 기관 자체 검증 및 결격사유 확인 ▲합격자 인사발령 ▲기타 채용 절차에서 특이사항 발생 시 관련 서류 등이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대한적십자사는 부실한 내규에 따라 채용을 진행하다 보니 다른 공공기관만큼 관련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이번 조사를 통해 그간의 채용 관행 문제점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 침묵의 워치독 =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에서 이런 폐해가 벌어진 건 감사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감사실은 조직 내 경영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워치독(watchdog)’ 역할을 수행한다. 대한적십자사 역시 회장 직속의 감사실을 설치했다. 문제는 설치만 해놓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적십자사 감사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근태 관리와 부실 채용 이슈를 지적받았는데도 감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는 신희영 회장의 감사 의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기관 감사운영규정에 따르면 감사실이 감사를 전개할 때의 경우는 세가지다. ‘업무 및 회계에 대한 감사’와 ‘관계 법령ㆍ정관 및 다른 규정에서 정하는 사항에 대한 감사’, 그리고 ‘회장이 지시한 사항에 대한 감사’다. 

앞선 두 상황은 예산결산 감사와 3년 주기로 진행하는 종합감사 같은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감사다. 세번째 상황은 결이 다르다. 감사가 필요한 특별한 상황을 두고 회장이 지시해야 감사 임무가 생긴다. 국회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받고도 신희영 회장이 감사 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7월 불거진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는 이런 문제를 더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원인미상의 이유로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고, 이 때문에 1만1600유닛(unitㆍ1회 헌혈용 포장 단위)의 혈액제제가 폐기 되거나 사용불가 판정을 받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화재 원인은 뒤늦게 드러났는데, 일단 담뱃불에 따른 화재로 추정된다. 그해 11월 검찰은 실화失火(잘못해 불을 냄) 혐의로 혈액원 직원을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런데도 대한적십자사 감사실은 화재가 발생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에야 감사에 착수했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원인이 담뱃불이란 사실을 통보받은 건 대구지검이 약식기소를 명한 지난해 11월”이라면서 “그때까지 감사를 벌이지도 않은 데다 책임지는 사람도 한명 없었다”고 꼬집었다. 

고영인 의원실 관계자는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혈액원 안팎에서 담뱃불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는데도 대한적십자사 측은 구두 보고로 담뱃불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면서 “약식기소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지금도 국회에 해당 내용을 보고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급했듯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의 피와 회비로 운영된다.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적십자회비 모금이 지지부진할 땐 납부를 호소한다. 정작 조직 내부의 상황이 이러면 이런 목소리도 공허해진다. 혈액사업과 공공의료, 각종 구호사업을 통해 나눔의 온기를 곳곳에 전달하는 대한적십자사의 경영이 꼭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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