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그러들지 않는 전세 공포
거래 줄면 가격 불안 심해져
다세대 주택 시세 산정에 악영향
신뢰할 만한 정보 수집 중요해

‘깡통전세’란 위험에 다세대 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위험을 피하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도 있다. 누군가는 다세대 주택에 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 때문에 다세대 주택의 전세 시세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럼 정부가 최근 론칭한 ‘안심전세앱’은 그런 시스템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깡통전세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며 다세대 주택 전세 거래도 크게 줄었다.[사진=뉴시스]
깡통전세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며 다세대 주택 전세 거래도 크게 줄었다.[사진=뉴시스]

왕은 없었고 빚쟁이만 있었다. 수백채의 빌라를 가지고 있어 ‘빌라왕’이라고 불리던 사람은 사실 ‘왕’이 아니었다. 그는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받아와 빚을 빚으로 갚기를 반복했다. 위험한 돈놀이는 그가 사망한 2022년 10월 이후에 문제를 일으켰다. 전세 보증금으로 빚을 갚아왔으니,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들이 숱했다. 

그러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전세금 반환보증)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HUG의 전세금 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HUG가 대신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하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집주인이 사망해 소유권이 불분명한 주택에는 전세금 반환보증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빌라왕’이란 별칭을 갖고 있던 사람들 중 2명이 더 사망하면서 ‘보증사고’ 문제가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보증사고’는 보험에 가입한 주택에서 집주인이 계약 만기 시점에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파르게 하락한 집값 탓에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마저 확산하면서 위기감은 더 고조됐다. 이 때문에 전세 계약 자체를 회피하는 세입자들이 늘었고, 전세 시장이 위축됐다.

■ 질문➊ 전세 거래 줄었나 = 그렇다면 전세 거래는 얼마나 줄었고, 전세를 회피한 이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 우리는 ‘인천’의 통계를 살펴봤다. 인천을 대상지로 삼은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빌라왕’이라 불리던 사람이 사망한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율(10.69%)이 시도 기준으로 가장 높은 곳이 인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통계를 보자. 이 기간 인천에선 ‘빌라’로 통칭하는 연립다세대 주택(빌라)의 전월세 거래가 크게 줄었다. 전세 거래는 2022년 10월 917건에서 2023년 2월 492건으로 46.35% 감소했고, 월세 거래는 515건에서 416건으로 19.22% 줄었다. 

이사에 영향을 주는 계절적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0월과 2월을 비교하는 대신 2022년 2월과 2023년 2월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인천 다세대 주택 전세 거래는 1년새 62.15%(2022년 2월 1300건→2023년 2월 492건), 월세 거래는 19.07%(514건→416건) 감소했다.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토교통부, 참고 | 인천광역시 연립다세대 주택]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토교통부, 참고 | 인천광역시 연립다세대 주택]

■질문➋ 전세 피해서 어디로 갔나 = 이렇게 다세대 주택의 전세 거래가 줄어들었다는 건 빌라에 사는 세입자가 다른 선택지로 둥지를 옮겼다는 뜻이다. 어디일까. 첫번째 추정되는 선택지는 ‘월세’다. 

그럼 월세로 전환한 이들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인천 다세대 주택 전세 보증금(3.3㎡당)은 2022년 1~3월 736만원에서 2023년 1~ 3월 700만원으로 4.8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가 줄었다는 걸 감안하면 전세 보증금이 줄었어도 계약 성사는 쉽지 않았던 셈이다.

반면 월세는 올랐다. 국토부가 조사하는 지역별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해 월세를 전세로 전환해 계산하자 3.3㎡당 임차료는 707만원(2022년 10~12월)에서 783만원(2023년 1~3월)으로 10.75% 올랐다. 2022년 10~12월만 해도 전세가 월세보다 더 ‘비싼’ 임대 방식이었지만 2023년 1~3월에는 뒤집혔다.

두번째 추정되는 선택지는 ‘아파트’다. 전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아파트’를 택할 것이란 얘기다. 그럼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변할까. 같은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해 2022년 10~12월 아파트 전월세와 2023년 1~3월 아파트 전월세 금액을 비교했다.

연립다세대 주택과 달리 3.3㎡당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가는 같은 기간 1104만원→1038만원(전세), 931만원→836만원(월세)으로 모두 줄었다. 물론 아파트 주거비가 줄었다 해도 다세대 주택 대신 아파트를 선택하면 주거비는 최소 10.22% 늘어나는 걸 각오해야 한다.

■ 질문➌ 어쩔 수 없는 빌라 세입자 = 문제는 월세나 아파트를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할 수 없는 다세대 주택의 세입자들이다. 우리나라 주택 중 10%가량이 다세대 주택이란 점을 감안하면, 선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월세나 아파트와 달리 다세대 주택은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를 감지한 정부도 베일에 싸여 있던 다세대 주택의 시세를 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 앱을 지난 2월 정식 론칭했다. 하지만 이 앱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간 빅데이터 플랫폼 빅밸류에 따르면, 2023년 1월 인천에서 이뤄진 다세대 주택 전세 거래 중 깡통 전세는 32건이었다. 

민간업체에서 골라낸 ‘깡통전세’를 정부의 안심전세앱이 얼마만큼 잡아낼 수 있을까. ▲시세 산정이 불가능한 경우 10건 ▲근린생활시설로 시세 산정이 불가능한 경우 1건 ▲시세산정대상이 아닌 1건을 포함해 총 12건은 시세 열람 자체를 할 수 없었다.

12건을 제외한 나머지 20건의 시세도 불명확했다. 최저 감정가를 기준으로 했을 땐 20건 중 17건만이 깡통전세로 잡혔다. 3건은 정상매물로 판단한 셈이다. 최고 감정가로 기준을 바꿔도 20건 중 10건만 깡통전세로 판단했다. 이는 안심전세앱만으로 ‘깡통전세’ 여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통계다. 

이는 심각한 연쇄 효과를 내포하고 있다. 전세 시세를 정확히 알지 못할수록 ‘빌라’에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월세나 아파트를 선택해 떠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숱하다. 그럼 전세를 꺼리는 현상은 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안심전세앱의 허점을 메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