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사망자 감소, 요양재해자 증가
건설업·제조업 사망자 가장 많아
요양재해자는 서비스업서 급증
사망만인율 광업서 5배 이상 증가
여성ㆍ노인ㆍ중기, 재해 사각지대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달라.” 최근 재계가 정부와 여당을 향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터지면 사용자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재계가 산업재해를 막을 다른 방도를 내놓지 않은 채 ‘책임 회피’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래도 될 만큼 산재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도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산재 예방 대책을 내놔야 한다.[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산재 예방 대책을 내놔야 한다.[사진=뉴시스]

1993년 5월 10일 태국.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인 ‘심슨가족’의 주인공 ‘바트’를 비롯해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인형으로 만들던 한 봉제공장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188명이 목숨을 잃고, 469명이 부상했다. 인명피해가 컸던 건 노동자가 인형을 훔쳐 가는 걸 막겠다며 회사 측이 공장 문을 잠근 채 일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은 1996년부터 4월 28일을 ‘세계 산업재해 사망ㆍ부상 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해 기념했다. 2002년엔 ILO가 이날을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이란 법적 틀을 통해 7월 첫째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규정하고 있다. 7월 첫째주는 산업안전보건의 ‘강조 주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법적인 틀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줬을까. 우리의 노동환경은 그 이후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2001년부터 2022년까지 고용노동부가 공개하는 ‘산업재해현황’을 토대로 산재 현황을 점검해보고, 우리가 무얼 해야 하는지 살펴봤다.[※참고: 이 기사에서 적용한 기간은 동일하다. 2022년 데이터가 없는 경우엔 2021년까지로 잡았다.] 

■ 통계➊ 사망자 = 우선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산재 현황에 포함되는 총 사업장 수는 90만9461개에서 287만6635개로 216.3% 늘었다. 총 노동자는 1058만1186명에서 2017만3615명으로 90.7% 증가했다.

그동안 산재 사망자(이하 사망자) 수는 2748명에서 2223명으로 19.1% 줄었다. 다만 2016년(1777명) 이후 13년간 감소세를 유지하던 사망자 수가 2018년 2000명을 넘어선 후 지금까지 조금씩 늘고 있다. 

사망자 수가 줄어든 것과 달리 요양재해자 수는 8만1434명에서 13만348명으로 60.1%나 늘었다. 요양재해자는 3일 이내에 치유할 수 없는 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산재보상(산재보험급여)을 받고 있는 노동자를 말한다.

요양재해자 수는 수시로 증감을 반복했는데, 2010년 이후 2017년(8만9848명)까지 줄었다가 지금은 증가세로 돌아섰다. 최근 몇년간 사망자도 요양재해자도 증가세라는 건데, 정부의 관심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 통계➋ 업종 분석 = 그럼 사망자가 가장 발생한 업종은 어디일까. 2001년만 해도 제조업이 26.0%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건설업(24.9%), 기타의 사업(20.4%), 광업(15.8%) 등의 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타의 사업’은 서비스업인 도ㆍ소매업, 보건ㆍ사회복지사업, 음식ㆍ숙박업 등을 포함한다. 

그로부터 21년이 훌쩍 흐른 2022년에는 건설업이 24.2%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제조업은 22.8%, 기타의 사업은 21.7%, 광업은 20.4%였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두 업종에서 발생한다는 건 대동소이하다.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여성과 노인 노동자가 늘고, 산재 위험도도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여성과 노인 노동자가 늘고, 산재 위험도도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요양재해자의 산업별 비중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2001년에는 제조업 비중이 43.6%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기타의 사업(23.8%), 건설업(21.0%) 순이었다. 2022년에는 기타의 사업이 37.4%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제조업(24.2%)과 건설업(24.0%) 순이었다. 제조업 요양재해자는 줄고,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요양재해자는 늘어난 결과다. 

■ 통계➌ 사망만인율 = 산업별 사망만인율도 살펴봤다. 사망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의 비율(사망자 수÷산업별 노동자 수×10000)인데, 이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광업이었다. 2001년 240.5(만분율ㆍ퍼밀리아드)에서 2022년 459.9로 크게 높아졌다. 세자릿수 사망만인율은 광업이 유일했다. 

산업별 노동자 수 대비 요양재해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요양재해율(요양재해자 수÷산업별 노동자 수×100) 역시 광업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광업 요양재해율은 2001년 7.7%에서 2022년 39.3%로 다섯배 이상 치솟았다. 

■ 통계➍ 산재의 변화 = 산재 노동자 성별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높게 나타났다. 제조업이나 건설업, 광업, 기타의 사업 등 산재 발생 업종에서 남성 종사자 비율이 특히 높았다. 다만 서비스업(기타의 사업)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가 점차 늘면서 여성 비율도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2001년 남녀 산재 노동자 수는 각각 6만9795명(85.7%ㆍ이하 성별 비중)과 1만1639명(14.3%)이었는데, 2021년에는 각각 9만4800명(77.3%)과 2만7913명(22.7%)이었다. 남성 산재 노동자가 1.4배 늘어나는 동안 여성 산재 노동자는 2.4배 증가한 셈이다. 

또다른 특징은 산재 노동자가 중ㆍ노년층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엔 40대가 2만3367명(28.7%)으로 가장 많았다. 30대는 2만1465명(26.4%), 50대는 1만5396명(18.9%), 20대 이하는 1만4137명(17.3%)이었다. 60대 이상은 7069명(8.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60대 이상이 4만5332명(34.8%)으로 1위였다. 50대는 3만4775명(26.7%), 40대는 2만2151명(17.0%), 30대는 1만6183명(12.4%), 20대 이하는 1만1907명(9.1%)이었다. 이는 청ㆍ장년층 노동자가 줄고, 중ㆍ노년층의 노동자는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통계다.

실제로 최근 5년(2018~2022년)의 통계만 봐도 60세 이상 임금노동자는 243만명에서 358만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20대와 40대에선 아주 미세하게 늘었고, 30대에선 되레 감소했다. 

■ 통계➎ 사업체 규모 = 기업 규모별 산재 비중을 따져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01년 21.3%에서 2008년 이후 줄곧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체의 비중은 30.4%, ‘10~29인 이하’는 21.1%였다. 요양재해자의 경우 ‘50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중은 2001년 69.1%에서 2021년 72.7%로 커졌다. 

산재 요양기간을 보면 2022년 기준으로 ‘91~180일’이 31.6%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29~90일’이 29.2%, ‘6개월 이상’이 23.5%였다. 이 비율은 그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는 산재가 발생하면 중장기의 요양이 필요한 중대사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의미한다. 

통계를 종합하면 정부의 산재 예방 정책의 방향이 드러난다. ▲산업별로는 광업ㆍ제조업ㆍ건설업, ▲성별로는 여성, ▲연령별로는 중ㆍ노년층, ▲기업규모별로는 소규모 사업체의 산재 예방을 위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통계적으로 지난 21년간 크게 나아진 것도 없어 보인다. 

보통 산재가 발생하면 사망하지 않더라도 요양을 받는 기간에 상당한 경제적ㆍ사회적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산재보험으로 일부 보전된다곤 하지만, 영세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실제 산재보험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산업안전보건의 날을 앞둔 정부와 사업자가 구호만 외칠 때가 아님을 시사한다. 지금은 산재 예방 정책들을 촘촘히 살펴봐야 할 때다.

김민수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metiszero@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