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대지급제? 180석 때도 안 지킨 약속들의 재탕 [4·10 後➊]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4년 後 위한 기록➊ 더불어민주당 삶의 질 수직상승 약속 내걸어 기본소득 등 5대 정책공약 제시 재원 마련 계획 뚜렷하지 않아 180석으로도 추진 안 한 공약들 “표달라”며 슬그머니 꺼내들어 재탕삼탕 공약 이행 여부 살펴야
‘기본사회 5대 정책’ ‘결혼출산 지원금’ ‘주 4일제 전환’….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22대 총선 공약은 훌륭하다. 3고高(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에 지친 서민의 걱정을 덜어주겠다면서 ‘모든 이의 삶의 질質 향상’을 약속했는데, 사뭇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건지가 없다. 얼핏 봐도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한데, 뭘로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번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늘 빈말만 늘어놨다.
[※참고: 총선이 끝나면 공약은 이내 잊힌다. 의회 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두 거대정당이든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겠다면서 출사표를 던졌던 제3지대 정당이든 그들의 공약은 대부분 공언空言에 그쳤다. 더스쿠프가 통권 591호(4월 1일 발간)에서 기록한 총선 특집 ‘2008년 후 지키지 않은 약속’은 그들의 초라한 공약 성적표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지만 공약은 ‘달성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총선 두번째 특집 ‘공약의 기록: 2024년 4월 10일 後’를 준비했다. 4년 후 어김없이 찾아올 총선을 위해 그들의 약속을 일일이 박제했다. 거대 양당은 물론 제3지대 정당, 위성·비례정당의 공약도 망라했다. 4년 후 그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일까.]
‘삶의 질 수직 상승을 위한 민주당의 약속.’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4ㆍ10 총선 정책 공약집의 제목이다. “윤석열 정부 집권 3년차,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진단으로 시작하는 이 공약집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벼랑 탈출 플랜’으로 4대 비전, 10대 핵심과제 아래 총 201개 세부공약을 제안했다.
공약은 선거에 나서는 정당에 최고의 무기다. 앞으로 나아갈 정책 방향과 철학을 유권자에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약집을 대충이라도 훑어본 유권자는 많지 않을 거다. 민주당이 선거자료실에 올려놓은 공약집 게시글의 조회 수만 봐도 그렇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도 1만2000회에 그쳤다.
공약집이 307쪽에 달할 정도로 두껍기 때문으로 보긴 어렵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번뜩이는 공약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이 크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지만, 민주당 역시 퍼주기 공약만 쏟아내고 있다. 막대한 재정이 드는 일인데도 바닥을 드러낸 나라 곳간의 사정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상대를 주저앉히겠단 ‘심판론’에만 집중하느라 공론화 작업도 게을리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더스쿠프의 ‘2008년 후 지키지 않은 약속’에서 드러나듯,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하거나 공약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이들을 투표로 심판하지 않았다. 이는 ‘당선만 되면 그만’이란 정치권의 인식을 부추기고, ‘아니면 말고 식의 공약空約을 쏟아내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4ㆍ10 총선 공약집에도 이런 게 많다. 분야별로 하나씩 뜯어보자.
■ 카테고리➊ 경제 일반 =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총선 공약의 대표 키워드는 ‘기본사회 5대 정책’이다.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인데, 내용이 꽤 파격적이다. 5대 정책 중 하나인 ‘출생 기본소득’은 8세까지 지급하는 현재의 아동수당을 확대했다. 8세를 넘어 17세까지 자녀 1인당 월 20만원씩 준다.
‘기본주택’은 월세 1만원 임대주택을 확대하고 100만호 규모의 주거복합 플랫폼을 조성하겠다는 거다. ‘기본교육’을 꾀하겠다며 국립대는 전액 무상, 4년제 사립대는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다. 이밖에도 간병비 지원, 어르신 주5일 점심 제공 등을 포함했다.
생애주기를 촘촘히 아우르는 복지 정책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모호하다. 5대 정책 하나하나가 다 막대한 예산 소요가 불가피한데, 대체 무슨 돈으로 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필요한 예산 규모나 재원 조성 방안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 성장 관련 공약은 2020년 21대 총선 공약집을 그대로 베꼈다. “AI로 세계 디지털 경제 게임 체인저 코리아 구축” “ITㆍ SW 신강국 도약” 등이 대표적이다. “AI 기술 퍼스트무버 코리아로 성장” “SW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세우겠다” 등 21대 총선에서 내세운 공약과 토씨만 다를 뿐 내용은 일치했다.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확산하기 위해 꺼낸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 3법 제정’을 약속한 지난 총선 공약과 같다. 180석을 거머쥐고도 지키지 않은 약속을 염치없이 또 들고나온 셈이다.
■ 카테고리➋ 저출산 =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이다. 유례없는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민주당 역시 대책을 내놨다. 돈 때문에 결혼조차 포기하는 청년층부터 지원하겠다는 거다.
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1억원을 대출해 주는 ‘결혼ㆍ출산지원금’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첫 자녀가 태어나면 대출은 무이자로 전환되고, 둘째를 낳으면 원금의 절반인 5000만원 감면, 셋째를 낳으면 원금 전액을 감면한다. 따져보면 두 자녀 가정엔 5000만원, 세 자녀 가정엔 1억원을 주는 셈이다.
앞서 ‘기본사회 5대 정책’에서 언급했던 ‘출생 기본수당’과 더불어 0세부터 18세까지 펀드 계좌에 매월 1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꺼냈다. 다자녀 부부에겐 분양전환 공공임대 주택도 지원한다. 자녀수가 많을수록 더 넓은 평수를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런 공약 대부분이 현금성 지원이자, 중구난방의 백화점식 방안이란 거다. 그간 수백조원을 쏟고도 저출산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유급 출산휴가ㆍ육아휴직의 정착도 약속했지만 마찬가지로 ‘어떻게’가 없다. 기업 측의 비용 절감 논리 앞에 번번이 막히는 게 유급 휴직 제도다.
도입하겠다고만 해서 지킬 수 있는 공약이 아니다. 육아휴직 확대는 선거 때마다 입버릇처럼 꺼내던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도 “양육비 국가 대지급 제도 도입”이란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번 선거 공약집에 또 넣었다.
■ 카테고리➌ 교육 = 예비 금배지가 교육 공약을 내놓을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대학 등록금’ 문제다. 등록금에 부담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22대 총선의 교육 핵심 공약으로 ‘대학 무상교육’을 제시했다.
국립대ㆍ전문대는 전액 무상으로 전환하고 사립대는 등록금을 반값으로 인하한다는 게 골자다. 세부 실행 계획은 이렇다. 22대 국회 내에 고등교육법 등을 개정하고, 5년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뒤에 전면 무상교육으로 전환한다는 거다.
문제는 이 계획에 필요한 예산이 연간 4조7000억원(민주당 추정치)에 달하는데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선 ‘국립대 반값 등록금’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립대 전액 무상’보다 훨씬 쉬운 과제였는데도 지키지 못했다. 이번 교육 공약 역시 포퓰리즘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표 되는 공약은 뭐든 베끼는 버릇도 고치지 않았다. 민주당은 사교육 부담을 덜겠다며 ‘방과후학교 무상화’ 카드를 꺼냈다. 방과후학교 무상화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들고 나온 대표적인 교육 공약이었다.
하지만 교육재정 확충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다. 방과후학교가 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꼼꼼한 세부 계획은 필수다. 민주당이 ‘같은 공약으로 다른 길’을 갈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 카테고리➍ 청년일자리 =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취업단계별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 목표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세부 이행계획은 이상하다. 첫번째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법제화’를 내걸었다. 청소년이 자신의 노동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적극적인 대응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청소년의 노동인권 교육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청년일자리 문제의 해소법으로 보긴 어렵다. 한국에서 ‘그냥 쉬는 청년’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일할 사람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는 미스매치 현상 때문이다. 조건에서 차이가 큰 ‘대기업ㆍ중소기업’이란 두개의 시장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게 시급한 상황에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밖에도 ‘구직활동지원금 월 최저임금의 40% 이상 법정화’ ‘청년내일채움공제 재시행’ ‘청년역량개발카드 확대’ 등을 내걸었다. 예산 편성이 꼭 필요한 정책들이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 카테고리➎ 비정규직 =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ㆍ처우 법제화. 이쯤 되면 지겹다. 2016년 19대 총선에서도, 2020년 20대 총선 공약으로도 내세웠다. 선거 때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적용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할 것”이란 공언을 늘어놨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쟁점과 갈등 요인이 수두룩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하는데도 십수년간 방치했다. 동일가치노동을 어떻게 규정할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회기가 바뀌어도 법제화까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얘기다.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대폭 확대하겠다고도 했지만, 이 역시 재탕삼탕 공약이다. 차라리 지난 21대 총선 때 내건 공약(월 60만원→월 100만원)이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도 약속했는데, 민주당은 똑같은 법을 이미 지난해 말 발의했다. 당연히 계류돼 있다.
■ 카테고리➏ 자영업자 = ‘민생회복’을 기치로 내건 민주당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재탕삼탕 공약이 숱하다는 점이다. ‘중소유통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가제)’을 제정하겠단 공약을 다시 꺼내든 건 단적인 예다.
자영업자의 자생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적ㆍ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단 취지지만,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법안을 3건이나 발의해놓고 처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공약집엔 ‘가맹점주(대리점주)단체 등록제’와 ‘단체협상권 부여’의 내용도 담겼다. 가맹점주와 가맹본사가 동등하게 협상하는 테이블을 만들겠다는 건데, 2016년 19대 총선에서도 공약으로 등장했던 내용이다.
이 약속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공염불에 그쳤다. 아직 임기가 남은 21대 국회에서 ‘꼭 마무리 지어야 하는 민생법안’으로 꼽히지만, 정작 공약을 내놓은 민주당이 공을 22대 국회로 넘겨버린 셈이다.
골목상권에 ‘퀵 커머스’를 도입한다는 공약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소비자가 동네가게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네이버스토어(플랫폼)ㆍ부릉(배달) 등과 연계해 1시간 이내에 즉시 배송하는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골목상권 퀵 커머스를 도입한 지역에서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점을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확인했는지 의문이다.
일례로 이 시범사업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89억원을 투자해 포항ㆍ창원ㆍ부천에 중소유통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했다. 그중 포항시에서 지난해 8월부터 퀵 커머스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참여 업체 수는 10여곳에 불과하다. 벼랑 끝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선 특단의 전략이 필요하지만, 민주당의 재탕삼탕 공약에 자영업자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 카테고리➐ 중소기업 =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건 ‘중소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워온 민주당의 숙원이다. 민주당은 경영난이 급속도로 가중되는 중소기업을 위한 처방약으로 청년의 취업과 장기근속을 유도하기로 했다.
그중 대표적인 건 중소 영세기업부터 법적 정년을 연장하겠다는 공약이다. 문제는 법적 정년 연장은 임금체계 개편과 세대 간 갈등, 연금 개혁 등과 맞물리는 복잡한 이슈라는 거다. 협치가 사라진 국회에선 다수당이 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공약이다.
‘중소기업 복지플랫폼 활성화’도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 동기 유발’을 꾀하려는 공약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세부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 중소기업 복지플랫폼은 대기업의 복지몰 포인트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플랫폼으로 중기부가 운영 중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인데, 가입률과 이용률이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기업이 관련 복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공약도 공허하다. 통근버스 확충, 산단 내 문화ㆍ체육시설 건립, 교육ㆍ훈련시설의 도입 등이 다양한 정책을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아서다.
민주당은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겠단 공약도 내걸었다. 디스커버리는 원고와 피고 양쪽이 소訴 제기에 앞서 소송 증거들을 서로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허를 침해받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잔 취지로 미국에서 시행 중이다.
중소기업의 입증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업계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이를 규정한 법안들은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국회 문턱을 넘기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공약집에 번거롭게 더 추가할 일도 없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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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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