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계획 없거나 재탕삼탕인데 “지킬 수 있나요?” [4·10 後➋]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4년 後 위한 기록➋ 국민의힘 기대할 만한 공약 없지 않지만 기대보다 우려 큰 공약 수두룩 재원 마련 방안 등 현실성 부족 때로는 허황된 꿈 내세운 공약 지킬수록 부작용 커지는 공약도 잘 지켜도 걱정, 안 지켜도 걱정
총선 공약은 언제나 ‘빈말’에 그쳤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국민 앞에 내건 약속 대부분이 ‘현실성 없는 공약空約’이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내놓은 경제 공약은 과연 어떨까. ‘22대 4ㆍ10 총선 기획: 공약의 기록’, 이번엔 ‘4년 후를 위한 기록’ 편이다.
[※참고: 총선이 끝나면 공약은 이내 잊힌다. 의회 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두 거대정당이든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겠다면서 출사표를 던졌던 제3지대 정당이든 그들의 공약은 대부분 공언空言에 그쳤다. 더스쿠프가 통권 591호(4월 1일 발간)에서 기록한 총선 특집 ‘2008년 후 지키지 않은 약속’은 그들의 초라한 공약 성적표를 여실히 보여준다.
#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지만 공약은 ‘달성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총선 두번째 특집 ‘공약의 기록: 2024년 4월 10일 後’를 준비했다. 4년 후 어김없이 찾아올 총선을 위해 그들의 약속을 일일이 박제했다. 거대 양당은 물론 제3지대 정당, 위성·비례정당의 공약도 망라했다. 4년 후 그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일까.]
‘정치개혁과 함께 저출생ㆍ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민생을 보듬고, 기업(특히 중소기업ㆍ벤처ㆍ소상공인)에 활력을 불어넣겠다.’ 국민의힘 22대 총선 공약집에 담긴 공약을 순위별로 간추린 결과다.
국민의 가려움을 긁어줄 정치개혁 공약을 0순위에 배치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저출생 이슈를 1순위에 넣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공약을 가장 앞에 세웠던 2020년 21대 총선 공약집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경제일반, ▲일과 가정, ▲교육, ▲청년일자리, ▲비정규직, ▲자영업자, ▲중소기업 부문의 주요 공약을 면밀히 분석해보니 기대만큼 우려할 점도 숱했다. 현실성이 없거나, 목적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공약이 많았다.
과거에 내걸었지만 현실화하지 못한 공약을 실패 원인조차 분석하지 않은 채 재탕한 것도 적지 않았다. 늘 그렇듯 재정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공약도 숱했다. 그럼 카테고리별로 공약을 점검해보자.
■ 카테고리➊ 경제일반 = 먼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굵직한 경제 이슈만 모은 경제일반 공약을 살펴보자. 맨 앞에 등장하는 건 첨단산업 인재 확보 공약이다. 산업계가 주도하는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쉽게 말해, 기업형 사내대학을 육성해 ‘학업과 취업’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 공약은 그 자체만으로 우려가 있다. 대학 교육의 목표를 기업의 인재 양성에 맞추는 것도 희한하지만, 가뜩이나 취업문이 좁아진 상황에서 일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애먼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뒷북 공약도 눈에 띈다.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톤세제(법인세 대신 보유선박의 톤(t) 수에 따라 세금을 납부) 일몰 연장, 반도체 설비투자 시 경쟁국 수준의 보조금 지원, 우주항공청 신설 등이다.
톤세제 일몰 연장은 공약집이 나오기 전부터 정부가 일몰 연장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하던 사안이다. 여기엔 국적선사 적취율(국내 화주가 국내 선사에 맡기는 화물 비율)을 개선하겠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는 21대 공약의 재탕이다. 우주항공청 신설 역시 진행 중이다. 한발 늦은 반도체 관련 보조금 지원은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우려를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공약도 있다. 수출 G5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만 외교력을 집중한 탓에 대중對中 외교전선이 흐트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인하하겠다”는 공약은 전기요금 현실화나 한국전력의 재무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공약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 카테고리➋ 일과 가정 = 저출생 극복 대책은 국민의힘이 가장 공을 들여 만든 1호 공약이다. 그만큼 유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내용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아빠 휴가 의무화와 출산ㆍ육아휴직 신청 시 자동 개시, 육아기 유연근무 취업규칙 정기 공지 의무화 등이다. 육아휴직 급여를 현행 최대 월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저출생 정책을 총괄할 부총리급의 ‘인구부 신설’ 공약도 내걸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저출생 정책을 통합해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거다.
꽤 그럴듯한 공약이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대다수 기업에서 출산ㆍ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새로운 내용보단 ‘현재 있는 제도’를 현실화할 방안을 찾는 게 올바른 방향인데,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신공약’만 내놨다.
특히 육아기에 다양한 유연근무를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은 말의 성찬盛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모든 법이 그렇듯 대기업부터 적용한 후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전략인데, 쉬운 길이 아니다. 제정한 지 수십년이 흐른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사업장이 여전히 숱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여야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법개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 공약의 경우, 막대한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4000건이다. 이들이 아이 한명을 낳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고 단순하게 가정하더라도 6984억원(60만원×6개월×19만4000명)이 더 필요하다. 현재로선 공약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 카테고리➌ 교육 = 교육 공약도 비슷한 허점을 갖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매 학기 50만원씩 ‘새학기 도약 바우처’를 단계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은 현금성 공약이다. ‘2024년 2학기부터 늘봄학교(초등학교) 전면 시행’ ‘기숙형 공립학교 확대와 시설 개선’ 등의 공약도 이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가령, 지난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수는 520만9000명이다. 학기마다 50만원(1년 100만원)의 ‘새학기 도약 바우처’를 지급하려면 매년 5조2090억원이 필요하다. 단계적 지원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도 재원 마련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재원만이 아니다.
당장 올해 2학기부터 전면 시행하겠다고 밝힌 늘봄학교는 관련법(늘봄학교지원특별법)도 제정하지 못한 상태다. 여야 간 분위기가 냉랭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8월 이전에 법안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기숙형 공립학교 확대 공약은 16년 전인 18대 총선(2008년) 공약의 재탕이다.
■ 카테고리➍ 청년일자리 = 청년일자리 공약은 변화가 좀 보인다. 이번 공약집엔 지금껏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 ‘일자리 확대 공약’을 아예 담지 않았다. 대신 일자리 질을 높이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역시 한계가 엿보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글로벌 챌린저 사업(해외 싱크탱크나 기관의 인턴십 기회 제공) 대상 국가와 기관을 확대해 해외 연수기회를 늘리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취업준비생에게 경험 쌓을 기회를 더 제공하겠다는 의미지만, 총선 공약으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턴십 기회를 늘리기 위해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어서다.
반면 인턴 희망고문 근절은 함의가 있다. 서면계약서에 정확한 근무기간과 정규직 전환율 등을 사전에 명기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위 채용광고 행위를 근절하겠다” “근로기준법 미적용 사업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겠다”는 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들 공약을 강제력 없는 행정지도나 자발적 개선으로 달성하겠다는 구상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현실을 모르든 의지가 없든 둘 중 하나다.
■ 카테고리➎ 비정규직 = 이번 국민의힘 공약집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공약은 사실상 없다. 그래서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약을 살펴봤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유급공휴일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노동법을 적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제도 도입을 약속하는 게 아니라 노ㆍ사ㆍ정 대화를 통해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잡아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징벌적 규제인 중대재해처벌법 대신 중소기업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체계를 마련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목적이 불분명하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자를 위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지만, 실제 내용은 기업 규제가 아닌 지원을 통해 중대재해를 막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해야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지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미 시행 중인 제도가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는 공약도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연금 격차 해소를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의 재정 지원 기간 연장과 요건 강화 공약, 중소ㆍ중견기업 노동자의 정년 후 재고용 지원 활성화 공약 등이다.
2022년 9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한 후 연금 격차가 얼마나 줄었는지 따져본 보고서는 없다. 중소ㆍ중견기업 노동자 중 정년 후 재고용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도 불분명하다. 이미 있는 제도를 평가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공약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거다.
■ 카테고리➏ 자영업자 =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공약 중에는 꽤 참신한 공약이 숨어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육성해 소상공인과 협업하고, 소상공인의 신산업창업사관학교 입교를 늘려 기업가형 소상공인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은 기대할 만하다. 기술창업에 쏠렸던 지원을 서비스창업으로 확대하겠다는 변화도 읽힌다.
하지만 나머지 자영업자 공약은 대부분 재탕이다. 일단 소상공인을 위한 중ㆍ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너무나 뻔한 공약이다. 대출이 너무 많아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어울리는지도 의문이다.
프랜차이즈 본부가 가맹점으로부터 납품대금을 받을 때 카드결제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공약은 수많은 가맹점주를 돕는 공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009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가맹점이 원할 때 카드결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라”는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프랜차이즈 본부 대부분은 따르지 않았다. 그만큼 법적 강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공약의 현실화는 지켜봐야 한다.
‘전통시장 주차환경 개선과 100년 특화시장 브랜드화를 통한 시장 특성화 전략’ 역시 2016년 19대 총선 공약의 재탕이다. 더구나 주차환경 개선이 전통시장을 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또 전통시장 브랜드를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카테고리➐ 중소기업 = 국민의힘의 이번 총선 경제 공약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중소기업 부문이다. 하지만 공약 대부분이 핵심을 비켜나 있다는 게 문제다.
중소기업의 대체인력(출산ㆍ육아 등으로 휴직한 인원 대체) 확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제시한 공약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채움인재 인센티브 지급,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 한도 상향, 파견노동자 사용 적극 지원 등 세부 공약이 있다.
그런데 채움인재 인센티브는 이미 시행 중이다.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 한도 상향은 국내 노동자가 일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파견노동자 사용 권장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공약을 이행할수록 또다른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입은행 수출팩토링 서비스(수출채권 매입으로 수출 지원) 지원 의무화’ 공약은 실패한 정책의 재탕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2014년 터진 ‘모뉴엘 사태’를 곱씹어봐야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벤처기업 모뉴엘은 히든챔피언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모뉴엘이 실은 허위 수출채권을 발행하고, 정부기관의 보증시스템을 악용해 각종 은행으로부터 수천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았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줬다. 이 사태는 박근혜 정부가 수출채권 보증 심사를 까다롭게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수출팩토링 서비스를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예산을 2027년까지 2조원 이상 확보하겠다는 공약은 중소기업인들을 농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중기 R&D 예산을 지난해 1조7701억원에서 올해 1조3208억원으로 25.4% 줄여서다. 정부가 줄인 예산을 당이 다시 확보할 수 있을지, 또 정치적 입장에 따라 뒤집히는 정책이 지속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22대 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국민의힘 공약은 지켜볼 게 숱하다. ‘이번엔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그들은 약속을 얼마만큼 지킬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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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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