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없어서, 임기 끝나서… 방음터널엔 아직도 화마가 산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참사의 패턴 망각의 파편 3편 제2경인 방음터널 화재 사고 61명 사상자 낸 방음터널 화재 안전불감증과 허술한 규제 때문 사고 후에야 움직인 정부와 국회 법 개정 등 일부 문제점 개선했지만… 방음터널 안전 보장하기엔 부족해 안전 관련법 아직도 만들지 않아
2022년 12월 제2경인 방음터널에서 화재사고가 터졌다. 화마火魔(불의 마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겻다. 정부와 국회는 그제야 방음터널의 안전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정부와 국회는 약속을 지켰을까. 그럴 리 없다.
인재人災.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사고에 따라붙는 꼬리표다. 인재가 남긴 상흔은 생각보다 더 깊은데, 2022년 12월 29일 터진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화재 사고(이하 제2경인 방음터널 화재 사고)도 그랬다.
그날 오후 1시 50분께.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나들목·Interchange)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을 달리던 폐기물 수거 트럭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방음터널로 옮겨붙었다.
화재에 취약한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인화점 280도의 가연성 플라스틱) 방음터널이 녹아내리면서 터널 안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소방당국은 소방헬기 등 장비 77대와 소방인력 190명을 투입하고서야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거센 불길 탓에 진화에만 2시간 30분이 넘게 소요됐다.
상처는 처참했다. 방음터널 830m 중 600m가 불에 녹아 사라졌다. 차량 45대는 전소했다. 인명피해도 컸다. 5명이 목숨을 잃었고, 56명이 다쳤다. 이 역시 인재였다. 트럭 운전자는 평소 차량 관리를 소홀히 했고, 방음터널 관리회사 관제실 근무자들은 불이 난 걸 알고도 비상 대피 안내, 차량 진입 차단시설 가동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방음터널에 사용한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의 위험성은 10년 전부터 제기돼왔다(한국도로공사 2012년·한국교통연구원 2016년). 그런데도 정부는 반대로 움직였다. 2012년 방음벽에 사용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는 연소 시 화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삭제했다. 안전 불감증이 화재의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던 거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하던 정부와 국회는 그제야 움직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에선 8명의 의원이 방음터널 관련법을 앞다퉈 발의했다. 골자는 방음터널을 불에 타지 않는(불연) 재료로 만들고, 정기적인 안전검사를 실시해 제2의 ‘방음터널 화재사고’를 막겠다는 거였다.
■ 불연 방음터널 어디쯤 =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제2경인 방음터널 화재사고’를 막을 만한 대책은 정비됐을까. 그렇지 않다. 일부 문제점을 개선하긴 했지만 미흡한 점이 숱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정부는 지난해 2월 관련 대책을 발표하면서 PMMA 소재를 사용한 방음터널에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국 170개 방음터널 중 PMMA 소재를 사용한 58개를 화재안전성이 높은 재질로 교체하겠다. 국토부 소관 고속도로는 2023년까지, 국도 방음터널은 즉시, 지자체 소관 방음터널은 2024년 2월까지 교체할 계획이다.”
이 발표대로라면 전국 방음터널의 소재는 모두 ‘불연’으로 바뀌었어야 한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PMMA를 혼합 사용한 곳을 포함해 총 65개의 방음터널 중 39개를 교체했다”며 “나머지는 올해 중에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토부 소관인 국도 12개, 재정고속도로 4개는 교체를 완료됐다. 하지만 민자고속도로는 10곳 중 2곳, 지자체 관할 방음터널은 39개 중 21개만 교체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 소관 도로는 빠르게 교체할 수 있지만 민자고속도로는 운영주체가 이사회 등의 절차를 거쳐 사업을 의결해야 가능하다”며 말을 이었다.
“지난해 민자고속도로 운영사가 자비로 방음터널의 소재를 교체하면 올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참여가 저조했다. 올해는 보조금 등 관련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에 교체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지자체 역시 예산 편성 문제로 교체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예산이 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막고 있다는 거다.
■ 줄줄이 폐기된 개정안 = 관련법 제정도 기대치를 밑돈다. 국회는 지난해 방음터널의 재질을 방화성능 기준에 적합하게 끌어올린 내용의 ‘도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은 시점은 12월 9일이다. 사고 발생 1주년을 20일 앞두고 간신히 관련법을 제정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문제는 방음터널에 사용할 재질만 법으로 규제하는 데 그쳤다는 거다. 방음터널은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상 일반터널로 분류돼 있지 않아 소방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다.
지난해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방음터널을 ‘특정소방대상물’에 포함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법의 개정 작업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한 소방시설법 관련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방음터널을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상 안전·유지관리계획 수립 및 정기 안전검사 대상에 포함하겠다던 약속도 공염불이 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터널에 ‘터널형 방음시설(방음터널)’을 포함하는 시설물안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이를 다룬 관련법 개정안 역시 21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폐기됐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법안이 ‘임기만료’란 어이없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이를 이해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공하성 우석대(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제2경인 방음터널 화재는 제도적 사각지대가 만든 사고”라며 “방음터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미흡한 관련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