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CEO, 또… 2003년 후 1위 ‘자살공화국’이란 오명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이지원의 사회적 그늘 보듬記 10만명당 자살자 OECD 1위 연초부터 유명인 자살 잇따라 성과 미미한 정부 자살예방책 관련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정책 실효성 높일 진단 필요 정신과 진료 낙인효과 덜고 자살 문제, 건강하게 논의해야
# 1991년만 해도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치를 밑돌았다. 하지만 고도성장기를 지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살자(1998년·10만명당 18.6명)가 급증했다.
# 2003년부턴 OECD 회원국 중 자살자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정부는 이듬해인 2004년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1년째 추진하고 있지만, 뾰족한 성과는 아직 없다.
# 얼마 전에도 한 배우가 목숨을 끊었다. 또 얼마 전엔 유망 스타트업 CEO가 목숨을 스스로 내던졌다. 언제까지 우린 자살공화국에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나라가 ‘저출생’을 극복할 수 있기는 할까. 더스쿠프가 이 질문에 펜을 집어넣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터져 나온다. 유명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이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건 오래전 일이다. 2003년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이하 10만명당 자살자)가 29.7명에 달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 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이 통계의 1위는 아직도 한국이다. 2011년 31.7명으로 고점을 찍은 후 내려가긴 했지만(2023년 27.3명) 1위 자리를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OECD 국가 평균 자살자 10.6명(2021년·38개국 기준)의 2배가 넘는다. 불명예다.
특히 엔데믹(풍토병·endemic) 전환 2년차인 지난해 자살자가 급증했다. 1~11월 누적 자살자는 1만3271명으로 전년 동기(1만2746명) 대비 4.1% 증가했다. 감염병·지진·전쟁 등 국가적 재난 발생 2~3년 후 자살자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럼 한국의 자살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획일화한 경쟁사회, 학교·직장에서 겪는 압박감, 경제적 어려움, 정신건강 문제,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완충해줄 공동체의 붕괴까지….
여러 사회적·개인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자살자들은 평균 4.3개(보건복지부·2024년)의 스트레스를 복합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높은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짚어봐야 할 건 있다. 자살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건 언급했듯 정부가 추진해온 자살 예방 정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살 문제는 개인의 비극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5조3895억원(1인당 4억912만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 이는 자살로 인한 미래소득 감소분만 추정한 것으로 자살 시도로 인한 진료비, 장례비, 수사비, 자살 유가족의 신체·정신적 치료비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훨씬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해온 자살 예방 정책은 무엇이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가지씩 살펴보자. 정부는 2004년부터 5년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첫 자살예방 프로젝트였다. 올해가 21년차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진행하고 있다.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의 목표는 2027년까지 10만명당 자살자를 18.2명으로 줄이는 거다.
이를 위해 ▲생명안전망 구축(지역맞춤형 자살예방·생명존중문화 확산 등), ▲자살위험요인 감소(치료 및 관리 강화·위험요인 관리 강화 등), ▲사후관리 강화(자살시도자·유족 사후관리 등), ▲대상자 맞춤형 자살예방(경제위기군·정신건강위기군 맞춤형 지원 등), ▲효율적 자살예방 추진기반 강화(자살예방 정책 근거기반 마련·정책추진 거버넌스 재정비 등)의 5개 분야에서 90여개의 세부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자살 문제 극복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핀란드’가 도입했던 정책 대부분이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시행되고 있다.[※참고: 1980년대 높은 자살률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핀란드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 단위의 ‘국가자살예방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1980년 10만명당 32.0명이던 자살자가 2003년 20.4명으로 줄었고 2021년 기준으론 13.2명에 머물러 있다.]
■ 생각해볼 문제➊ 예산 = 이같은 정책적 노력에도 정부는 자살 감소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한편에선 자살 예방정책에 투입하는 예산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살 예방정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의 올해 관련 예산(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은 561억원으로 전년(508억원) 대비 10.4% 증가했지만 이웃나라인 일본과 비교해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거다.
일본은 한국보다 늦은 2007년에야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했지만 재정을 적극적으로 쏟아붓고 있다. 자살 사전 예방, 위기 대응, 자살자·유가족 사후 대응체계 구축 등에 연간 8300억원(2021년 추정치)을 투자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007년 10만명당 22.7명이던 일본의 자살자는 2021년 15.6명으로 줄었다.
적극적 예산 투입이 정책의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한국에도 있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1991년 10만명당 31.0명으로 치솟았다. 이를 기점으로 정부는 연간 4000억원가량을 투입했는데, 현재 관련 사망자는 한자릿수(2023년·4.9명)로 감소했다.
■ 생각해볼 문제➋ 재점검 = 그럼에도 예산 확대가 능사는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예산 부족과 인력 부족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지금의 가용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거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가능한 한 거의 모든 자살 예방정책을 도입했지만, 실제 수요자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실효성이 있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자살 예방정책의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핀란드는 국가자살예방프로젝트 시행에 앞서 전문가 집단이 2년간 사전준비를 진행했다. 총 10년의 프로젝트 기간 중 5년은 자살현황 분석과 자살 과정 연구에 쏟아부었다.
전문가 6만여명을 투입해 1987년 자살로 사망한 1397명을 모두 ‘심리부검’한 건 단적인 예다. 핀란드가 철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참고: 심리부검이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자살자의 심리 행동 양상·변화를 파악하고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조사 방법이다.]
물론 한국도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경찰의 수사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한국만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다면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채수미 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예컨대 다른 나라들의 경우 자살자가 사망 전 받고 있던 병원 진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많은 반면, 한국은 사망 전까지도 병원 진료를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살자가 보내는 일종의 시그널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을 연구해 우리만의 대책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 생각해볼 문제➌ 문턱 = 자살자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거다.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면서도 병원을 찾는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다.
한국의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보건복지부·2021년 기준)로 캐나다(46.5%), 미국(43.1%), 일본(20.0%) 등에 크게 못 미친다. 일종의 ‘낙인효과’를 우려한 탓으로 풀이된다.
김준모 건국대(행정학) 교수는 “낙인효과의 부담에서 벗어나 누구나 손쉽게 정신과를 찾고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가벼운 단계의 우울을 겪는 사람들은 심리치료·미술치료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을 적절히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자살 문제를 좀 더 건강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의 제1원칙(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을 예로 들어보자.
이 원칙의 취지는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자는 거다. 하지만 거론하지 않는다고 ‘자살 자체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자살 사건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보도하느냐’일지 모른다.
조봄 더봄 미술치료심리상담센터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자살이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부담스럽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은 연관돼 있다. 그래서 무작정 보도를 막는 건 어쩌면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그(자살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연대하고 건강한 논의를 이어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 한국의 국가적 과제는 인구 감소를 막는 거다. 저출생 대책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이유다. 하지만 매년 1만명 넘는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에서 청년층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아이러니다. 자살공화국이란 수치스러운 오명, 이젠 떼낼 때도 됐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