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오만을 이기느니라 [김용우의 미술思]
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1편 카라바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카라바조 작품들이 남긴 교훈
르네상스는 미술사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는 대가大家의 시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 그리고 보티첼리와 도나텔로, 베르키오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라바조는 르네상스가 끝나가던 16세기 말에 태어났다. 그가 활동한 때는 ‘바로크 시대’로 르네상스만큼 유명하지 않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에서 만날 수 있는 대작은 사실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빈 미술사 박물관의 가장 크고 좋은 자리엔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작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라파엘의 아테네학당 같은 작품들은 옮겨 다닐 수가 없다. 모두 프레스코(fresco)이기 때문이다.
프레스코는 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해 완성하는 회화를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그림의 재료나 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다. 가령, 기름을 용매로 쓰는 유화 기법도 그땐 없었다.
유화는 당시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시도했는데, 그런 유화 기법이 널리 퍼진 때가 바로 바로크 시대다. 흥미롭게도 유화는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은 가벼워 이동이 편했다.
작품이 널리 알려지자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전문가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수익을 올리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들이 바로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베르메르 등이다. 그중 카라바조는 그림의 화풍을 획기적으로 시도해 바로크를 열어가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의 화풍은 무대 위 연기자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시각의 집중도’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빛을 따라 시선을 유도하는 이른바 레이아웃의 절묘한 활용은 당시 모든 화가에게 충격을 던졌다.
카라바조의 업적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찾아내고 담아내는 인간적인 표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는 이런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는 적장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소년 다비드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옷 주름과 빛의 표현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여기에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어린 다비드를 통해 ‘어린 카라바조가 죄 많은 어른 카라바조의 주검을 들고 있는 것’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승리자의 기쁜 표정보단 측은한 다비드의 표정이 더없이 슬퍼 보일 수밖에…. 그래서인지 이 그림을 볼 때면 “이 사람 카라바조 너 왜 이렇게 살아?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란 말을 곱씹게 된다.
그림 천재 카라바조 는 신성과 세속을 넘나드는 불운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다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렇게 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실제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의 또다른 버전엔 “겸손이 오만을 이기느니라”란 말을 칼에 새겨뒀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4월 6일까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화가들’전展이 열리고 있다. 흔치 않은 바로크 시대 거장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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