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계산된 구도 [김용우의 미술思]

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5편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주인공 구분 안 되는 작품 왕과 왕비일까 공주일까 그림 그린 화가가 주인공일까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주제 천재 화가가 만든 획기적 구도

2025-04-13     김용우 평론가
디에고 벨라스케즈(1599~1660년) ‘시녀들’ 캔버스에 유화, 316×276㎝,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그림 | 위키미디어]

미술사에서 17세기는 대가들의 대작大作 시대다. 그림이 엄청 큰 작품을 그렸다. 대가의 행렬은 카라바조(로마)를 시작으로 루벤스와 렘브란트(네덜란드 플랑드르), 벨라스케스(스페인)로 이어진다.

대항해 시대의 유럽은 식민지를 수탈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 결과, 호화로운 궁전이 곳곳에 건설됐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어졌다. 덩달아 그림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궁전이나 교회를 장식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필리페 4세의 궁정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가로 316㎝ 세로 276㎝의 ‘시녀들’을 제작한다. 이 그림은 크기뿐만 아니라 구성에서도 큰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림의 중앙에 공주 마르가리타가 있다.

그 주위엔 공주를 돌보는 시녀 두명, 함께 놀아줄 어린 소녀와 난쟁이, 공주의 가정교사 수녀와 신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안전을 담당하는 시종관은 문 앞에 서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왼편에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화가 벨라스케스다.

그럼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제목처럼 시녀들일까, 중앙에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일까. 둘 다 아니라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사 복장의 의기양양한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일까.

자세히 보면 뒤편 거울에 비치는 인물이 있다. 필리페 4세 왕과 왕비다. 그러면 필리페 4세 부처夫妻가 주인공일까. 이마저도 아니라면 그림 밖에서 등장인물을 보고 있는 그림 앞의 한 시점, 관찰자 당신이 주인공일까. 

자! 다시 가만히 그림을 보자. 화가가 필리페 4세를 그리고 있고, 이 장면을 보러 공주가 한 무리의 시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상황은 마치 우리가 무대 앞자리에 앉아 관람하는 무대 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을 설정한 것이라 해도 당시는 화가가 왕실 가족과 함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홍도가 영조를 그리는데, 그곳에 놀러 온 정조와 함께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십자가가 그려진 기사 복장을 하고 당당하게 등장한다. 화가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큰 가문의 영광이 어디 있을까. 이쯤에서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그림 속 화가는 이젤과 캔버스를 놓고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볼품없는 캔버스 뒷면만 보인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여기엔 관찰자의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한 조치가 숨어 있다. 그림 왼쪽에 단순하게 세로로 길게 내려오는 한줄기 선線은 관찰자의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다분히 계산적인 구도인 것이다. 이같은 구도, 이를테면 레이아웃은 화가가 임의로 관찰자의 시각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오늘날의 시각적 조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벨라스케즈. [그림 | 위키미디어]

화가 벨라스케스가 완벽하게 계산한 구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뒤편 시종관이 문 앞에서 왕과 공주를 살피는 장면도 계산적이다. 문이 닫혀 있다면 구도는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는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속 예수의 뒤편에 창문을 그려놓은 이유와 같다. 거울 속 왕과 왕비의 모습 또한 계산된 구도에 포함된다. 만약 거울을 치운다면 시각적으로 답답함을 초래할 것이다.

여러 등장인물이 자연스레 위치를 잡은 것도 자세히 보면 벨라스케스의 계산된 위치, 계산된 방향임을 알 수 있다. 관찰자들의 시선을 형태와 빛의 상태로 중앙으로 유도하고 있다. 또한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관찰자의 시선도 중앙에 흐트러지지 않고 모아진다.

이쯤 되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전시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말에 신빙성이 간다. 천재가 그린 획기적인 구도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프라도 미술관 제일 좋은 자리에 걸려 있다.

화가가 왕과 함께 등장하는 그림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볼 수 없다가 1800년 또 다른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에 등장한다. ‘카를로스 4세와 가족’이란 그림인데, 고야는 화면 왼편에 벨라스케스와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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