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기록과 기억

기억은 머리로 하지만 기록은 온몸으로 합니다

2025-05-15     오상민 사진작가

# 한 시간이 넘었습니다. 사진은 골랐는데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표현을 이리저리 써보다가 억지로 꾸민 것 같아 지우길 반복합니다. 자판에서 손을 뗍니다. 다시 사진을 찬찬히 봅니다. 찍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빛, 그래 빛이었습니다. 익숙한 길에서 만난 특별한 빛, 경복궁 담벼락을 밝히던 마냥 신기했던 그 빛이 떠올랐습니다. 

# 제가 매일 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이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스마트폰이든, 똑딱이 카메라든, DSLR 카메라든 상관없습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런 사진을 찍고 나면 몇 시간, 아니 며칠도 싱글벙글할 때가 있습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기쁜 마음을 누릴 수 있지요.

# AI가 발전하면서 사진을 합성하고, 새롭게 만드는 일이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지금, 이 사진도 AI에 부탁하면 몇초 만에 뚝딱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느꼈던 행복감까지 똑같이 복제하진 못할 겁니다. 제아무리 똑똑한 AI라도 바람 맞고, 거리를 걷고, 빛을 보면서 찍었던 기억을 대신할 순 없을 테니까요. 

# 기억은 머리로 하지만 기록은 온몸으로 합니다. 몸에 새긴 기록은 AI도 만들지 못하는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어슬렁 다녀봅니다. 기록하는 건 기억하는 일이니까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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