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 표현보다 매혹적인 색의 하모니 [김용우의 미술思]

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10편 앙리 마티스 레드의 하모니 원초적인 사실 표현보다는 색상 자체에 더 많은 의미 시각적 표현 방법으로 감성을 감각적으로 전달 피카소 입체주의에 영향

2025-05-18     김용우 평론가
마티스 ‘레드의 하모니’ 1908년 作, 108×221㎝, 캔버스에 유화,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그림 | 위키미디어]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1869~1954년)는 고갱의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표현과 세잔의 평면적 표현 등을 받아들여 형체보다 색상 자체에 의미를 두고 색상의 하모니를 그린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초 파리 화단의 선두에 선 마티스는 새로운 색상의 대비와 조형을 강조한 야수파(Fauvism)를 이끌어간다.

1908년 발표한 마티스의 작품 ‘레드의 하모니(Harmony of Red)’를 중심으로 야수파의 그림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보자. 붉은 벽지와 붉은 탁자가 방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 위엔 유기적인 선들이 꿈틀거리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르누보 스타일(식물의 자연스러움을 이용한 장식적인 스타일)의 푸른 당초 문양들은 붉은색들 사에서 한난寒暖의 대비를 차갑게 연출하고 있다.

금발의 여인에서부터 노란 과일로 이어지는 밝은 색상은 바탕의 검붉은 레드와 강한 명도적 대비를 이루며 창문틀까지 다다른다. 붉은 바탕 위 푸른 당초 문양, 그리고 노란색 과일들이 주는 색상과 명도의 대비는 모두 창문으로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봐도 그림은 무척 강하다. 시각적 스트레스로 정신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마티스는 보상 효과로 창문을 만들어 놨다. 뜨거운 방에 시원한 바람을 부르는 ‘초록색 창문’이다. 초록과 레드는 보색 대비의 대표적 색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시선이 불안하고 답답한 방에서 시원한 창문 쪽으로 이동한다. 레이아웃(구도)을 통해 청량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쯤이면 시각적 표현으로 감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려는 마티스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럼 그림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보자. 강력하고 약간의 흥분을 야기하는 방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시원한 창문 밖 풍경은 우리를 시원하게 만든다. 가만히 보면, 창틀의 색상을 주황과 노랑으로 칠했다. 창틀을 모두 붉은색으로 칠하면 초록과 맞닿아 보색이 되므로 착시 현상을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마티스는 주황과 노랑으로 창틀을 그려 초록과 붉음의 중계자 역할을 하도록 해뒀다. 초록은 채도를 조금 낮춰 짙은 색으로 했다. 꽃나무는 벚꽃·목련나무와 같은 흰색 계열을 배치해 명도와 색상의 대비를 맞췄다. 

마티스 자화상 [그림 | 위키미디어]

이번엔 왼쪽 아래에 있는 나무 의자로 시선을 돌려보자. 나무의 갈색은 존재 가치를 모를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방석은 밝은 노랑으로 존재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 ‘피아노 치는 소녀들’에서 봤던 검은 피아노 곁에 아무렇게나 걸쳐 놓은 것 같은 주황색 천이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화가의 화판 뒤쪽 이젤의 다리처럼 시각의 흐름을 정리해 준다. 

이처럼 마티스의 ‘레드의 하모니’는 사실적 표현보다 색감 위주의 전체적 하모니를 표현했다. 이는 미술사史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모네나 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는 순간의 느낌을 잡아내는 표현 방식을 썼다.

이를 고흐와 고갱, 세잔은 밝은 색채를 받아들임과 함께 평면화돼 있는 시각을 다각화했다. 이같은 화풍은 피카소의 입체주의(큐비즈)와 마티스의 야수파(포비즘)로 진화했다. 피카소가 말했듯 미술은 그때부터 형태를 넘어 본질로 향했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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