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흐림 속 외침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세상이 오길.
2025-06-17 오상민 사진작가
# 산에 오르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 하나는 조망권을 만끽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심의 분주함 속에 답답함을 느낄 때면 산에 올라 멀리까지 바라봅니다. 뻥 뚫린 풍경처럼 마음마저 시원해지곤 합니다.
# 비 오는 날엔 아쉽게도 그런 조망권이 사라집니다. 비구름과 안개로 눈앞의 나무 한 그루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이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신기루처럼 느껴집니다.
# 비 때문에 조망권이 사라진 어느 날. 뿌연 풍경 너머로 구호와 함성이 들려옵니다. 보이진 않지만, 광화문 쪽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나 봅니다.
# 그 순간, 며칠 전이 떠올랐습니다. 공익 활동가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공탁’ 행사에 촬영하러 갔을 때입니다. 한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며칠 뒤에도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겠지만, 오늘 이렇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으니 감사하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광화문에서 목소리를 내던 그분이 혹시 ‘이 활동가는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목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내리든 그렇지 않든 목소리는 퍼집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면, 우리가 모두 좀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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