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을 넘어 가슴을 쳤다” 전쟁의 참상 [김용우의 미술思]
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15편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가로 4m 세로 8m 큰 그림 전쟁의 비극 고스란히 그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전쟁 참상 알린 또 하나의 작품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이란 작전명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이라크의 전쟁이었다. 원인은 산유産油 문제였는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34개국 연합군이 결성됐고 이라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패배했다.
전쟁의 뒤편엔 복잡한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마련이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오만 등 다양한 원인도 숨어 있다. 연합군-이라크 간 전쟁도 그랬다. 오늘은 이 전쟁에 얽힌 작품을 이야기해 보자.
2003년 2월 미국 최초 흑인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은 유엔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갑자기 중단했다. 누군가 회견의 장소가 적절치 않다고 언급한 탓이었다. 발표장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복제한 태피스트리(실로 엮어 만든 그림)가 걸려 있었다.
‘게르니카’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피카소의 작품으로 관찰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게르니카’를 푸른 천으로 가린 후 전쟁의 정당성을 알린 미국은 그로부터 얼마 후 엄청난 화력으로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게르니카’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콘도르 군단 소속 비행기 24대가 스페인의 조용한 마을 게르니카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피카소가 그림의 형식을 빌려 참상을 고발했다. 가로 4m, 세로 8m에 이르는 커다란 그림은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럼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자. 피카소는 흑백으로 그림을 구성해 당시 독일이 학살한 많은 영혼의 아픔을 고발하고 있다. 그림 속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부러진 칼을 쥔 용감한 스페인 무사는 입을 딱 벌리고 누워 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황소는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힘 빠진 스페인의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빛을 잃은 횃불과 펜을 든 지식인은 무력하기만 하다. 어찌할 줄 모른 채 혼을 놓은 아낙은 갈피를 못 잡고, 권위를 잃은 말은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다. 아비규환이다.
높은 곳에 매달린 전등은 인간이 만든 과학 문명을 상징한다. 그 앞에 속절없이 당하는 학살현장 속 인류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에 있는 프랑스 군대 앞에 놓인 등불과 결을 같이한다. 악惡의 빛이다.
전쟁의 참상을 이렇게 비참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피카소의 표현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다. 사실주의를 넘어 큐비즘(cubism·입체주의)으로 보는 전쟁의 참상은 표현을 넘어 가슴으로 치고 들어와 전쟁의 본질을 알린다.
전쟁이 인류를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은 민족의 큰 아픔으로 6월이면 되살아난다. 피카소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작품을 하나 더 그렸는데, 다름 아닌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다.
이 작품은 2021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다. 우리의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그림 속 인물은 힘없고 착하게만 생긴 우리의 누이, 어머니, 아이들이다. 비무장인 이들에게 철갑을 쓰고 총을 겨누는 무리에게서 우리는 또다시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비폭력의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의 비무장 아이와 여인들이다.
이처럼 화가들이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알리고 고발했건만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지금 중동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그때마다 피해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몫이다. 6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다시 한번 평화를 기원해 본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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