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초대형 선풍기
달달달, 오래된 선풍기 바람은 여전히 시원했다
2025-08-02 오상민 사진작가
#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입니다. 우리집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어릴 땐 에어컨이 귀해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에어컨이 없는 집이 드물어질 때까지 우리집은 선풍기와 부채로 여름을 나곤 했습니다.
# 다행히 1인 1선풍기였습니다. 각자 배정받은 선풍기가 있었죠.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형님 선풍기도 기억납니다. ‘창살이 넓으니 손가락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듣곤 했죠. 파란 날개에, 흰색과 검정, 은색이 어우러진 몸체. 피아노 건반처럼 길고 넓은 버튼. 거기에 ‘달달달’ 거리던 그 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 출장길에 풍력 발전기를 만났습니다. 넓은 팔을 벌리고 천천히 도는 모습이 꼭 초대형 선풍기 같았습니다. 저 앞에 서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까, 괜한 상상을 해봅니다. 바람이 만든 전기는 또 다른 바람을 만들어 세상을 좀 더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 오늘따라 그때 그 선풍기가 보내주는 바람이 그립습니다. 달달달, 달달달… 그렇게나 힘겹게 돌아가며 내던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듯합니다. 오래된 선풍기였음에도 바람만은 시원했던 기억이 함께 스칩니다. 낡아도 제몫을 다하던 그 선풍기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빕니다. 무척이나 더운 날, 풍력발전소에서 떠오른 ‘바람’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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