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광기 고발해온 어느 시인의 ‘퇴임 후 희망 찾기’ [리터러시+]
더스쿠프 리터러시 이승하 시인 인터뷰 교도소부터 정신병원까지 인간의 폭력과 광기에 관심 결국 희망은 사람에게로 한 줄로 남아야 한다면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 정신병원, 노인요양병원, 그리고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를 오가며 40년 넘게 인간의 ‘폭력’과 ‘광기’를 시로 고발해 온 시인이 있다.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를 좌우명으로 삼은 그는 모교 강단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8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행정 절차가 멈춘다고 시인의 시간까지 멈추는 건 아니다. 이승하(65) 시인은 새벽마다 ‘사람 사막’의 모래알을 뒤적이며 새로운 언어를 찾는다.
✚ 오늘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공책을 펼치셨다지요. 정년을 앞둔 하루는 어떤 리듬으로 흐릅니까?
“새벽 네 시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새벽별을 우러러봅니다. 퇴임은 서류일 뿐, 시인의 시간은 여전히 새벽부터 흘러갑니다.”
이승하 시인은 「사랑의 탐구(문학과지성사ㆍ1987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7권의 시집을 냈다. 매일 새벽 그는 시를 쓴다.
✚ 첫 시집 「사랑의 탐구」에서 최근작 「일출(2024년)」까지 모든 시집을 관통하는 공통어는 무엇일까요?
“제가 낸 시집 중에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란 게 있습니다. ‘폭력’과 ‘광기’는 젊은 시절 저의 화두였습니다. 아픈 누이동생의 면회를 41년째 다니면서 환자복 입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시 창작 강사로 교도소와 소년원, 군부대에서 수의와 군복 입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보고 쓴 시들을 모아 「감시와 처벌의 나날」이란 시집을 냈습니다. 제가 낸 시선집에 「공포와 전율의 나날」 이 있으니 시집의 제목들이 아주 살벌합니다. 여기서 벗어나고자 인간 연구를 했습니다. 돌고 돌아 만난 것이 ‘사람’입니다. 2023년 8월에 열여섯 번째 시집 「사람 사막」을 낸 것은 비극적 상황을 조금은 떨쳐버리고 희망을 찾기 위해서였지요.”
시인의 ‘희망 찾기’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1999년부터 손옥자ㆍ허전 시인과 함께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면서 시 쓰는 법을 가르쳤다.
✚ 교도소와 소년원을 찾아가며 ‘치유적 글쓰기’를 실천해 오셨습니다. 문학이 사람을 낫게 한다는 믿음이 언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까?
“저는 고등학교를 장기결석으로 퇴학당하는 바람에 한참 방황했습니다. 독학으로 대학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는 신경쇠약이 심해 한동안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환자들을 진료한 기록지가 벽면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정신병이 현대병임을 알아차렸죠. 동생을 면회할 때도 그 세계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광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시詩 치료’를 생각했나요?
“저는 시 치료의 효과를 믿고 있습니다. 시를 읽어본 적도 거의 없는 수용자들에게 종이와 펜을 주면 무언가를 써내는데 문예지에서 읽는 시보다 훨씬 감동적입니다. 그런 시가 그들을 세파에 찌들지 않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면, 그들을 개과천선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면 시의 존재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시인은 2012년부터는 수용자 문예지 「새길」 수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매 계절 100편에 가까운 인생 고백을 읽으며, 그가 거듭 강조하는 건 단 하나다. “그들이 다시는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처럼 삶의 상처 앞에서 시를 통해 답을 찾고자 했던 시인은, 그 질문을 품고 실크로드를 따라 걸었다. 둔황석굴과 병마용갱을 지나며 기록한 여정이 시집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로 탄생했다.[※참고: 둔황敦煌은 중국 간쑤성甘肅省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관문 도시다. 병마용은 진시황릉에서 1.5㎞ 떨어진 병마용갱 안에 있다. 병마용은 고분 조각의 한 형태다.]
✚ 답사 후 낸 시집을 ‘끝나지 않는 여정의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길 위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이었나요?
“신라의 학승 혜초는 1만2000㎞를 걸어 40개국을 4년 넘게 여행하고, 그 여정을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글로 남겼습니다. 그 여정에 저는 압도됐습니다. 현재와 붓다 생애 사이의 2500년, 혜초와 지금 사이의 1300년이라는 시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붓다는 불교를 열었고 혜초는 역사서를 썼습니다. 저는 그 길 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길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깨달았으랴/ 길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길 전했으랴’ ‘마을을 떠나야 마을에 이를 수 있고/ 사람을 떠나야 사람과 만날 수 있지/ 오늘도 길에서 나는/ 문밖이 집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집과 자식은 구도를 방해하는 존재로 형상화되곤 하지요.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어릴 때 이름)가 바로 그랬으니까요. 구도자와 시인은 그런 점에서 닮은 운명입니다. 안락한 생활은 창조의 동력을 앗아가지요. 길을 간다는 것은 도를 닦는다는 것입니다.”
이승하 시인은 퇴임 후에도 문학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에 문학적 가치와 사회적 목소리를 부여하려 한다.
✚ 40년 뒤 누군가 ‘이승하’를 떠올린다면 어떤 시 한 줄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 이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현대판 이산가족인 탈북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문예지 특집호를 탈북인 문학으로 만든 적도 있죠. 2006년 설립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남측편찬위원으로 재작년부터 참여하면서 글을 쓰는 탈북인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 해도 수기, 소설집, 시집이 150권이 넘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문학을 계속 살펴볼 생각입니다.”
✚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정성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9년에 여러 교수님들과 ‘장애와문학학회’를 만들었습니다. 문학작품이나 방송물에서 장애인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피고, 장애인의 창작 활동을 알리고 평가하는 일이 학회의 주된 일입니다. 올해로 35회를 맞은 구상솟대문학상(한국장애예술인협회 운영) 심사를 해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느라고 재직 중일 때보다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교도소 수용자, 탈북자, 장애인의 문학은 올바른 가치 규명과 평가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신의 열정을 바쳐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 제자들에게 ‘남들이 쓰지 않은 문학을 개척하라’고 주문하셨죠. 이제 막 글을 시작하는 청춘들에게 한마디 더 보태 주신다면요?
“문화일보에서 글 청탁이 와서 정년퇴임을 하는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에 저랑 함께 졸업하는 일곱 학생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썼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독서의 양이 곧 실력입니다. 문학은 테크닉을 잘 익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피 흘림 같은 것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라고요. 덧보태자면 글쓰기는 자기 연민을 공감과 감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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