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에 야구에…월 지출만 990만원 ‘위기의 부부’ [재테크 Lab]

40대 부부 재무설계 1편 부부의 소득 적지 않지만 경제권 따로 둔 탓일까 매월 100만원씩 적자 저축도 전혀 하지 않아 부부에게 돌파구 있을까

2025-08-28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이혁기 기자

남편이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나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피규어를 조립하는 등 아이들과 취미도 공유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남편이 천사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내는 한숨을 쉰다.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취미생활에 쓰고 있어서다. 더스쿠프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이 부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부부가 서로 다른 주머니를 차면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또 주문했어? 이젠 둘 데도 없잖아.” 현관 앞에 놓인 택배 박스를 보면서 볼멘소리를 하는 강미나(가명·44)씨.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건 남편 양호영(가명·45)씨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건담 피규어.

강씨는 헐레벌떡 달려와 택배 상자를 가져가는 남편을 쏘아보곤, 거실 한편에 놓여 있는 유리 전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벽 한면을 꽉 채운 전시장엔 건담은 물론이고 유명 애니메이션 피규어로 가득 차 있다. 

남편 양씨는 피규어에 푹 빠져 있다. 한달에만 100만원이 넘는 돈을 피규어를 사 모으는 데 쓴다. 강씨는 남편이 과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규어 수집을 막진 못한다.

남편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서다. 두 자녀(10·5)가 남편의 피규어를 무척 좋아하는 것도 강씨가 망설이는 부분 중 하나다.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게 자녀들 정서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강씨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남편이 피규어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매년 야구 시즌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야구 경기장으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쓰는 돈도 적지 않다. 지인들은 “남편이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니 얼마나 좋냐”고 말하지만, 강씨는 속이 터진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한두푼이 아니라서다. “아직 주택담보대출금이 3억원 넘게 남았어요. 그런데 돈을 물 쓰듯 쓰면 이걸 언제 다 갚아요? 걱정이 태산이에요.”

경제권을 남편이 꽉 쥐고 있는 것도 강씨가 불만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다. 현재 남편은 월소득의 일부를 강씨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생활비 외의 돈엔 강씨가 일절 손을 대지 못하게 막는다.

서로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얘긴데, 강씨는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가 의문이다. 결국 참다 못한 강씨는 남편을 이끌고 필자에게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먼저 부부의 재정 상태부터 체크해보자. 부부의 월 소득은 880만원.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550만원, 벤처기업에 다니는 아내가 330만원을 번다. 남편은 550만원 중 400만원만 아내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주고 나머지를 용돈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에선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지출은 꽤 많다. 정기지출로는 공과금 35만원, 식비·생활비 135만원, 통신비 34만원, 교통비·유류비 68만원, 자녀 교육비 55만원, 대출금 상환 195만원, 보험료 72만원, 남편 용돈 150만원, 아내 용돈 70만원, 신용카드 할부금 45만원, 자녀 용돈 10만원 등 902만원이다.

1년간 쓰는 비정기지출은 여행비 250만원, 경조사비 200만원, 자동차 세금·보험 160만원, 의류비·미용비 300만원, 명절비 150만원 등 1060만원이다. 한달에 88만원씩 쓰는 셈이다. 예적금 같은 금융성 상품은 없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990만원을 쓰고 110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부부는 남편이 1년에 1~2차례 받는 상여금으로 적자를 해결하고 있다. 자산으로는 자가 아파트(5억5000만원)가 있다. 주택담보대출금(잔여금 3억3000만원)과 신용카드 할부금(총 500만원)이 부채로 잡혀 있다.

얼핏 봐도 상황이 심각하다. 부부는 4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저축은커녕 노후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 그 흔한 적금 통장 하나 없으니 말 다했다. 한달에 1000만원 가까이 쓰는 소비패턴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문제는 과소비를 남편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내도 옷과 액세서리를 사는 데 적잖은 지출을 하고 있다. 아내 용돈(70만원)의 대부분을 여기에 쓰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옷을 거의 사 입지 않는데도 의류비·미용비가 1년에 300만원씩 드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선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더 많다. 서로의 지출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니 과소비로 이어지기 쉽고, 저축과 투자 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없어서다.

남편이 피규어를 사는 데만 100만원 이상을 쓰고, 아내가 사치를 부리고 있는 걸 남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부부가 개별 경제권을 가진 결과다. 필자는 숫자들을 보여주며 부부에게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했고, 충격을 받은 부부는 필자의 조언대로 경제권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지출을 약간 줄였다. 유류비·교통비를 68만원에서 48만원으로 20만원 아끼기로 했다. 각각 자차를 갖고 있는 부부는 거리와 상관없이 무조건 차로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한달에 발생하는 기름값이 적지 않다. 앞으론 대중교통 이용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부부의 적자가 110만원에서 90만원으로 줄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손을 대야 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무엇보다 십수년간 고착해 온 부부의 생활패턴을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특히 남편이 피규어 모으기, 야구 관람 등 자신의 ‘성역’을 건드리는 것에 민감하다. 과연 부부는 재무 솔루션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다음 시간에 부부의 이야기를 계속 소개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