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수익 제로’ 직업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 [視리즈]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新직업 미래 보고서 12편 질적 탐구 | 손홍택 컨설턴트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 공익 위하는 숭고한 뜻 지녀 직업으로 삼기엔 환경 열악해
적지 않은 사회적경제기업이 운영난에 시달린다. 경영체계가 부실하거나 아예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낸다. 이 허술한 기반을 바로잡는 이가 바로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다. 공익을 위하는 숭고한 뜻을 품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낯선 직업이다. 12년째 비영리 민간단체 ‘희망나눔세상’에서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손홍택 전문위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6만6425명. 사회적경제기업에 종사하는 인원이다(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연구소· 2024년). 전체 노동시장 인구(2897만7000명)와 비교하면 규모가 초라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존재를 가벼이 여길 순 없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돕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등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어서다.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사회적책임경영 컨설턴트)는 이들을 돕기 위해 생겨난 직업이다. 업계에선 2010년대 중반에 이 직업이 태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성장지원센터를 세우고 경영·회계·마케팅 등 분야별 전문가를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위촉하기 시작한 게 이맘때여서다.
워낙 좁은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서인지 이 직업을 향한 관심은 크지 않다. 더스쿠프가 분석한 이 직업의 관심도는 0건이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은 물론 민간 자격증도 없다. 관련 시장 규모가 2조2748억원으로 작지 않다는 것과 공공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참고: 관심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PC+모바일)에서 7월 14일~8월 14일 한달간 검색한 건수다.]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는 ‘신직업’으로서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2013년부터 비영리 민간단체 ‘희망나눔세상’에서 12년째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손홍택 전문위원에게 물었다. 그는 30년 넘게 기업 활동을 하면서 다져온 노하우로 사회적경제기업의 자립을 돕고 있다.
✚ 희망나눔세상은 어떤 회사인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컨설팅과 멘토링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것이 희망나눔세상의 핵심 역할 중 하나입니다.”
✚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직장생활 18년, 개인사업 15년 등 총 33년을 영리기업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은퇴 직전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들어갔어요. 2년 반을 공부하면서 사회복지학에 종사하는 분들과 같이 활동하다 보니 깨닫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 어떤 부분을 깨달았나요.
“지금까지는 저 자신만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중에 눈에 띈 게 사회적경제기업이었습니다. 제가 영리 활동을 하면서 습득한 노하우가 사회적경제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희망나눔세상을 만들고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팅을 시작했습니다.”
✚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올해로 12년째네요.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란 직업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한가요?
“비영리단체에 속해 있는지라 제가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얻는 수익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습니다.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모았던 돈을 연금처럼 쓰면서 생활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영리기업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해봐도, 이 직업으로 생활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 왜 그런가요?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회적경제기업 대부분이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았거든요.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돈을 내고 컨설팅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요즘엔 예전보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어요.”
사회적경제기업은 돈을 얼마나 벌까. 경기도사회적경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 내 사회적경제기업의 평균 매출은 2021년(10억3600만원) 대비 10.2% 늘어난 11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실적이 제법 괜찮아 보이지만, 이는 표면상의 숫자일 뿐이다.
조사 대상 기업의 51.6%는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재투자하는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삼지 않는 만큼, 사회적경제기업의 실수익은 영리기업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경제기업이 여전히 많나요.
“네. 무엇보다 체계화된 시스템이 없는 기업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기업의 재무나 회계, 인사 등을 통합 관리하는 ERP (전사적 자원 관리) 부문이 취약합니다. 시스템이 없으니 회사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가 나는 거죠. 이런 사회적경제기업의 약점을 컨설팅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손 전문위원은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가 사회적경제기업의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성장해야 이 직업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려면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가 한발 더 앞서나가 사회적경제기업의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손 전문위원의 생각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최근 서강대에서 MBA 과정을 다시 밟고, 인공지능(AI) 전문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AI가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산업에서 혁신을 일구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팅에도 변화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과거엔 사회적경제기업 대부분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머물렀지만, 요즘엔 빅데이터 분야나 AI를 활용한 IT분야로 사회적경제기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업 분야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저도 수십년 전에 습득한 경험이나 지식만으론 컨설팅을 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전문위원들과 AI를 계속 공부하면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트렌드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MBA 코스도 다시 밟고 있고요.”
✚ MBA요.
“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서강대와 협력해 사회적경제기업 종사자 대상으로 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걸 듣고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MBA 코스는 벌써 40년이 넘은 ‘오래된 지식’이에요. 최신 트렌드에 맞는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기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 희망나눔세상의 향후 목표가 있다면요?
“은퇴를 앞두고 재취업을 준비 중인 ‘신중년 세대’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들을 저 같은 사회적경제기업 컨설턴트로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신중년이 사회적경제기업 인턴십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자리 매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중년 세대와 사회적경제기업이 조화를 이루는 기틀을 마련하는 게 희망나눔세상의 미래 플랜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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