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탐욕 억제할 ‘빈집세’란 세금

더스쿠프 안창남의 생각 정부가 알아야 할 빈집 활용법 빈 건축물 증가하는 원인 복합적 임대료 낮추지 않는 건물주들 빈 건축물이 몰고 올 악순환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사례들

2025-10-08     안창남 소장

빈 건축물이 줄기는커녕 되레 늘고 있다. 경기침체가 원인이긴 하지만,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 건물 소유주의 욕구도 높은 공실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빈 건축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해법은 있다. 프랑스의 빈집세, 영국의 비즈니스 레이트(Business Rates) 제도다. 

빈 건축물이 갈수록 늘고 있다. 높은 임대료는 그 원인 중 하나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서 빈 점포와 사무실이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해 발표한 2025년 2분기 임대 동향에 따르면, 전국 공실률은 오피스 8.58%, 중대형 상가 13. 39%, 소규모 상가 7.49%, 집합상가 10.48%다. 전국 평균이 이렇지, 서울 강남 ‘가로수길 상가’의 경우, 공실률이 42%에 이른다는 보도(중앙일보ㆍ6월 26일)도 있었다. 

국토교통부에서 공표하는 전국 주택보급률(주택수/가구수×100)은 102.5%다. 주택도 서울 등 수도권은 부족하고(97.2%), 비수도권 지역은 가구 수보다 많다(107.7%ㆍ국가통계포털 KOSIS).

이처럼 빈 건축물(주택ㆍ상가)이 남아도는 현상은 ▲경기침체, ▲원격ㆍ하이브리드 근무의 뉴 노멀화, ▲온라인 소비행태 확산,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동산 광풍이나 투기의 영향도 크다.

문제는 빈 건축물을 방치하면 치안이 불안해질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향으로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도시 쇠락 가속화→인구 유출’이란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여지도 많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빈 건축물의 용도전환이나 리모델링을 통해 ‘생활형 숙박시설’ 등 주거시설로 전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 5월엔 ‘빈집애愛 플랫폼’을 통한 빈집 매물 공개 등 범정부 차원의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공실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건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인 부동산 소유주의 태도와 비싼 임대료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부가 이런저런 대책을 마련해도 부동산 소유주 입장에서 손해가 예상되면 빈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빈집 대처 방안’은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투기지역처럼 법령으로 규정한 곳에 있는 건축물 중 ‘빈 상태’가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 프랑스 과세 당국은 ‘빈집세(taxe annuelle sur les logements vacants)’란 세금을 부과한다(프랑스 세법 제232조). 

[사진|뉴시스]

빈집 상태 첫해엔 공시가격에 12.5%를 곱한 금액을, 두번째 해부터는 공시가격의 25%를 부과한다. 만약 빈집 상태가 5년간 계속되면 해당 건축물 공시가격의 112.5%【첫해 12.5%+(25%×4)】를 부담하는 꼴이 된다. 이를 견딜 수 있는 투기꾼이 있을까. 해당 부동산의 소유주는 그 집으로 이사 와서 실제로 거주하든지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빌려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영국 역시 비즈니스 레이트(Business Rates) 제도를 통해 상업용 건물의 공실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하면 (3개월 후부터) 공실세(부동산 가치평가액×정부가 정하는 세율)를 부과한다. 소유주의 장기간에 걸친 ‘상가 방치’를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외국의 빈 건축물 대책은 도시환경을 제도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부동산 소유주의 무책임한 건축물 방치를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실세의 목적이 단순히 세 수입을 늘리려는 건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와 외국 부동산 시장의 여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빈 건축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성은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빈 건축물이 늘어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무분별한 부동산 투기다. 투기꾼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정부의 빈 건축물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정부의 대책은 효과를 낼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점검해 볼 점이 있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 주요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실거주 목적이 아닌 외국인의 주택 매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부동산 투기자 중 상당수가 외국 국적 소유자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정책의 초점은 외국인의 부동산 구입을 사전에 막는 데 있다. 

만약 이들이 실거주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겠다고 신고한 뒤 나중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나온 대책을 보면 해당 부동산 가치의 10%까지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어서 ‘투기 수요’를 억누르기 어렵다. 그렇다면 빈 건축물은 또다시 늘어날 게 분명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부동산의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빈 건축물을 방지하기 위해선 프랑스나 영국 사례를 참고해 특정 지역(인구 100만명이 넘는 지역 중 부동산 투기지역)에 방치돼 있는 빈집이나 빈 상가에 공실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숙한 시민사회에서는 부동산의 취득은 자유스러워도 부동산의 적절한 관리는 어느 정도 ‘의무’여야 한다. 주거지 내 잔디 관리가 의무화한 지역에서 이를 방치하거나 제때 깎지 않으면 최대 수천 달러의 벌금까지 부과하는 미국의 사례는 무책임한 부동산 소유주를 엄벌하지 않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잔디 관리조차 이렇게 엄격한데, 빈집이나 빈 상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보다 훨씬 철저하게 관리해야 마땅할 것이다. 

안창남 AnP 세금연구소장  |  더스쿠프
acnanp@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