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건 훔친 걸까? 불법 PDF 복제물 ‘채찍과 당근 사이’

더스쿠프 리터러시+ 디지털 불법복제 두 대안 심화하는 디지털 불법복제 대학가 전공서적 불법 공유 학생 일탈로 치부할 수 있나 강경 단속론 vs 시스템 개선론

2025-11-11     강서구 기자

‘불법 PDF’로 만든 서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하고 공유한다. 누군가는 학생들의 일탈이라고 꼬집지만, 그렇게 비판하기엔 ‘디지털 불법복제’의 늪이 너무 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단속을 강화해야 할까, 아님 합법적이면서도 편리한 또다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까.

대학가에서 불법 PDF 유통이 일상화하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단순한 저작권 침해가 아닌 지식생태계 전반을 붕괴시키는 구조적 위기.” 지난 6일 열린 ‘디지털 불법복제 개선 방안 모색’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절박한 진단이다. 한국학술출판협회를 비롯한 4개 출판단체가 참여하고 김교흥 위원장(더불어민주당)과 정연욱 의원(국민의힘)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더 이상 ‘학생들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불법복제 등 지식생태계의 암울한 현주소를 주제로 삼았다.

특히 학술·교양·웹소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불법복제 실태를 집중 논의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공서적 불법공유가 일상화한 현실, ▲텔레그램 PDF방·에브리타임 커뮤니티 등 폐쇄형 채널을 통한 불법 PDF 유통의 현실도 꼬집었다.

김교흥 위원장은 “디지털 불법복제는 단순한 경제적 피해를 넘어 지식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법적·제도적 개선과 인식 전환을 동시에 강조했다. 정연욱 의원 역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문장을 쓸 수 있는 권리와 읽을 수 있는 존엄”이라며 정당한 독서 문화 복원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다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 절박했다. 박찬익 한국학술출판협회 회장은 “불법복제 방지를 위해 버스 광고, 스티커 부착, 모니터링단 활동 등 실무 대응을 지속해 왔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성과는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기존의 ‘계도’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자평이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크게 두가지 해법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하나는 불법 행위 자체를 강력히 처벌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강경한 단속론’, 다른 하나는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니 합법적 이용을 유도하자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론’이었다.

■ 해법① 무관용·처벌강화론 = 첫번째 해법은 ‘강력한 단속’이다. 불법복제를 ‘경제적 문제’ 이전에 ‘윤리적 해이’와 ‘명백한 범죄’로 규정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테면 무관용 원칙이다.

이런 시각은 토론회의 패널로 나선 대학생 조재면(서강대 국어국문학과)씨의 발언에서 날카롭게 드러났다. 그는 “비싸서 산 게 아니라 훔쳤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인식이 문제”라며 이를 방관하는 ‘교수 책임 명문화’까지 주장했다. 불법복제를 학생의 일탈이 아닌 명백한 절도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묵인하는 학내 문화도 뿌리뽑아야 한다는 거였다.

이는 토론의 첫번째 발제를 맡은 최낙진 제주대 교수의 진단과도 맞닿아 있다. 최 교수는 ‘불법복제 인식 개선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불법복제가 학생의 일탈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구조적·문화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일탈이 문화가 된 이상,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은 무의미하며 ‘무관용 원칙’을 포함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거다.

법조계도 실무적인 수단의 정비를 강조했다. 성현상 변호사(법무법인 태신)는 “형사처벌 강화뿐만 아니라 ‘민사 가처분’ 병행 등 실무적 수단을 정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불법 유통을 적발하더라도 형사처벌까지 오랜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유통을 즉각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민사적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단속 강화가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갖느냐댜. 김석훈 한국저작권보호원 부장은 “텔레그램·에브리타임 등 음성적 유통 채널의 추적이 어려운 만큼, 국제 공조 수사와 부처간 협업이 필수”라며 현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출판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박노일 피앤씨미디어 대표는 “출판사 개별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신고~조사~법률지원~사례공유를 통합한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해법② 시스템·교육개선론 = 이 때문에 한편에선 징벌과 통제란 채찍 대신, 합리적인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는 '시스템 개선론'을 내놓고 있다. 공병훈 협성대(미디어영상광고학) 교수는 “단속 실적보다 정책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으며 ‘합법 이용 촉진형 전자출판 서비스 도입’을 제안했다. 불법복제 이용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기 전에,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 시장에 존재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의 이민우 대표도 “단속이 아닌 ‘더 편리한 합법 서비스’로 유도해야 한다”면서 “대학·민간 플랫폼 간 구독 계약(B2U)”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영상 OTT 플랫폼 넷플릭스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처럼, 대학이 일정 구독료를 지불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학술 콘텐츠를 이용하게 하는 모델을 만들자는 거다. 이 대표는 “불법의 유혹보다 합법의 편의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합법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생들의 ‘경제적 장벽’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자는 제안도 뒤따랐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팀장은 ‘수업목적보상금 확대’와 ‘교재 구입 지원 바우처 도입’을 제시했다. 첫 발제자인 최낙진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교재비 등록금 포함제’라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학생 개인에게 전가되던 교재 구입 부담을 대학이나 정부가 분담하는 구조로 전환하자는 거다.

계명대학교 신소재공학과 함승민씨는 “대학생의 창작윤리 강화를 위한 ‘디지털 윤리 역량 인증제(Uni-D.E.C.S.)’”를 제안하며 “윤리 교육을 진로 경쟁력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낙진 교수의 “단속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교육부 중심의 제도적 전환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과 일맥상통한다. 불법복제 문제를 법이 아닌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 해법③ 남은 과제 = 그렇다면 단속 강화와 교육·시스템 개혁론을 아우르는 청사진은 없을까.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주요 제안들은 ▲폐쇄형 플랫폼 모니터링 확대(홍정표 부회장), ▲교재 등록금 포함제(최낙진 교수), ▲무관용 원칙 제도화(최낙진 교수·조재면 학생), ▲출판·교육·정부 연계 플랫폼 구축(홍정표 부회장 외) 등이었다. 단속은 단속대로 하되, 합법적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다.

결국 해법은 ‘거버넌스’로 모인다. 불법복제는 단속만이 아니라 정부·대학·출판계가 함께 참여하는 상시 모니터링과 대응 거버넌스로 해결한다. ‘지식 생태계의 붕괴’란 시한폭탄을 앞에 두고 ‘단속’이라는 방패와 ‘시스템 혁신’이라는 창을 동시에 조율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단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