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튕겨내는 위성, 하늘 나는 차… 머스크 ‘현실과 몽상’ 사이

더스쿠프 IT 언더라인 괴짜 CEO 괴짜 발언 2편  파격적인 머스크의 언사들 실제로 이뤄진 것 많지만 공상에 그친 발언도 적지 않아 문제는 머스크 말의 파급력

2025-11-14     이혁기 기자

‘땅굴로 교통 체증을 해소하겠다’ ‘로봇으로 빈곤을 없애겠다’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게 만들겠다’…. 워낙 파격적이어서인지, 일론 머스크의 말은 때때로 CEO의 비전이라기보단 괴짜의 공상처럼 들린다.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성공하면 ‘천재’라며 추앙받지만, 실패하면 허풍쟁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말을 얼마나 지켜왔을까.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전세계에 인터넷을 보급할 것”이라는 머스크의 말에서 시작했다.[사진 | 연합뉴스]

괴짜 CEO.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와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수장 일론 머스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가 공식 석상이나 소셜미디어(SNS)에서 내뱉은 예측 불가능한 발언들이 쌓이면서 이런 별명이 생겼다.

그의 기행奇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1편에서 봤듯, 2016년 그는 SNS에서 교통 체증의 해법으로 ‘땅굴을 파겠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엔 SNS에 “인공위성으로 햇빛을 반사해 지구의 열을 낮추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아 또한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럼 그의 괴짜 발언은 늘 ‘말’에서 그쳤을까. 그렇진 않다. 허풍처럼 들리던 그의 말 중엔 현실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 현실 된 발언들=그런 예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교통체증 극복용 땅굴 발언’을 한 지 2년 뒤인 2018년 1월, 머스크는 교통 인프라 건설·관리 기업 ‘보링 컴퍼니’를 창업했다. 창업자금 1억1250만 달러(약 1636억원) 중 90% 이상을 머스크가 조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표는 교통 체증이 극심한 대도시 지하에 터널을 뚫어 새로운 교통 인프라를 설계하는 것이다. 

보링 컴퍼니는 이듬해인 2019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지하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매년 조금씩 범위를 넓혀 6년이 흐른 지금, 라스베이거스의 해리 리드 국제공항부터 북쪽의 웨스트게이트 리조트까지 연결하는 3.6㎞ 길이의 지하터널 ‘베이거스 루프’를 뚫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보링 컴퍼니는 최근 미국 동부에 신설 예정인 85억 달러(약 12조3675억원) 규모의 터널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두고 미 연방철도청(FRA)과 협의 단계를 밟고 있다.

위성으로 전세계에 인터넷을 제공하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도 머스크의 ‘대담한 발언’에서 시작했다. 2015년 1월, 시애틀에서 열린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그는 “지구 전체에 초저비용 위성 인터넷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스타링크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셈인데, 이때만 해도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미국 기술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기사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그 아이디어는 ‘화성으로 이주하겠다’는 머스크의 꿈만큼이나 공상과학적이다.”

[사진 | 연합뉴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머스크의 ‘공상’은 현실이 됐다. 스페이스X는 10월 21일 기준 총 1만6000개의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렸다.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 ‘팰컨’을 개발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덕분이었다. 

그로 인해 스타링크는 현재 150여개 국가에서 700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향후 위성을 4만2000개까지 늘려 커버리지 범위를 더 촘촘하게 만들 계획인데, 이를 통해 인터넷 외에 해양·항공과 재난 구호, 6G 이동통신, 미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트위터(현 엑스)를 사들인 머스크의 행보 역시 ‘농담 섞인 말’에서 출발했다. 2017년 12월,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트위터를 사랑한다”라고 게시했다. 누군가 “그러면 당신이 그걸 사야 한다”란 댓글을 달자 “얼마야?(How much is it?)”라고 답했다. 

5년 뒤인 2022년 4월 14일(이하 현지시간), 머스크가 “트위터를 430억 달러(약 62조원)에 사겠다”고 발표하면서 농담은 진담이 됐다.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고 트위터의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머스크가 갑자기 발언을 철회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6개월 뒤인 10월에 머스크는 기존 제안보다 10억 달러 더 많은 440억 달러를 주고 트위터를 인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머스크는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게 만들겠다(2019년 7월 샌프란시스코 행사)” “로봇으로 빈곤을 제거하겠다(2025년 11월 6일 주주총회)” 등의 발언을 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를 일찌감치 진행 중이다. 2016년 ‘뉴럴링크’를 설립해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21년엔 인간의 형태를 띤 휴머노이드 로봇 ‘테슬라 옵티머스’를 발표하고 신모델을 주기적으로 공개했다. 

■ 아직은 말뿐인 약속들=물론 머스크가 호기롭게 던진 말이 모두 실현된 건 아니다.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아예 감감무소식인 프로젝트도 있다. 대표적인 게 ‘하이퍼루프’다. 머스크가 2013년 8월 발표한 58쪽짜리 백서를 통해 발표한 기술로, 진공 튜브에서 마찰 없이 초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어 차세대 운송 수단으로 꼽힌다. 

하이퍼루프는 이론상 시속 760마일(약 1220㎞)의 속도를 낸다. KTX 운행 최고 속도(시속 305㎞)보다 4배가량 빠른 수치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상용화한다면 운송 산업의 판도를 바꿀 혁신임엔 분명하다. 머스크는 백서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3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면서 “건설 비용도 60억 달러로 기존의 캘리포니아 고속철도(684억 달러)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의 벽에 부딪힌 탓일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스크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11월 보링 컴퍼니가 텍사스에서 시험주행을 테스트한다고 발표했었지만, 이후론 별 소식이 없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머스크가 사실상 하이퍼루프 사업을 접은 게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테슬라가 개발 중인 ‘플라잉카’도 현재로선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단어가 머스크의 입에 처음 오른 건 2015년 4월이다. 그는 과학 토크쇼 ‘스타토크’에서 “물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하늘을) 나는 차(flying cars)”라고 발언했다. ‘머스크가 플라잉카를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퍼진 것도 이 무렵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된 건 지난해 6월, 머스크가 한 팟캐스트 토크쇼에서 ‘로드스터(테슬라 전기차)의 차세대 모델이 스페이스X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다. 진행자가 “나는 차인가?(a flying car?)”라고 묻자 그는 “그럴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곤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올해 1일엔 또다른 팟캐스트에 출연해 “곧 시제품을 공개할 것”이라며 “연말에 시험비행을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기술력으로 판단해보면 머스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제대로 된 플라잉카를 만들려면 차체의 무게를 줄여야할 뿐만 아니라 항공기 엔진과 맞먹는 출력도 겸비해야 한다.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머스크가 하이퍼루프 프로젝트처럼 공개 시점을 계속 미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머스크의 ‘괴짜 발언’ 중엔 실현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혼재해 있다. 문제는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사례를 하나만 보자. 트위터를 인수할 당시 그는 5월 14일 돌연 “트위터 인수 딜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이 발표로 트위터 주가는 16일 장 시작 전 거래에서 17.7% 하락했다. SNS 글 하나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셈이다. 진심이든 아니든 세계가 머스크의 말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머스크는 우리에게 또 어떤 괴짜 발언을 던질까. 그중 몇이나 현실이 될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