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청년은… 李 정부 ‘정년 논쟁’서 빠진 것 [視리즈]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정년 연장 갑론을박 1편 법적 정년 65세로 연장 추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격차 소득 공백 줄여야 한다는 노동계 대기업, 공공기관만 혜택 볼 수도 李 정책, 찬성론·반대론·비판론 청년 입장에서 본 정년 연장
# 우리는 더스쿠프 675호에서 이재명 정부가 ‘123대 국정과제’를 통해 발표한 정책 중 ‘4.5일제’의 빛과 그림자(5일에서 0.5일 뺄 뿐이지만… 사장님의 비명과 우려스러운 부메랑)를 다뤘다. 123대 국정과제는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 달성할 정책적 목표다.
# 그런데 여기엔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내용도 있었다. 다름 아닌 ‘정년 연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정년 65세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예상대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 하지만 노동계 찬성론과 재계의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논쟁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 논쟁에서 ‘청년이 배제됐다’는 비판론도 함께 커지고 있다. 더스쿠프가 ‘정년 연장’을 둘러싼 갑론을박과 청년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 몇 살까지 다닐 것 같은가?” 그 나이를 법적 정년인 60세라고 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실제로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관둔 평균 나이’는 52.9세(2025년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일 이슈일까. 이 논의에 ‘청년’은 있을까.
“정년 연장하실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되면 젊은 세대 일자리에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닙니까?”-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선 후보(5월 18일ㆍ제1차 대선후보 TV 토론회).
“글쎄, 그 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젊은 세대도 (정년 연장에) 많이 동의하고 있고요. 젊은 세대 일자리와 정년이 늘어난 일자리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현행 60세인 법적 정년을 65세로 연장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난 9월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도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문제는 당사자인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지난 4월 노동계ㆍ경영계가 참여한 ‘정년연장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8월까지 합의안을 마련해 11월 법제화를 마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합의안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참고: 현행 법정 정년은 60세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2016년부터 60세 정년 의무화가 시행됐다.]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강해지자 민주당은 지난 3일 정년연장TF를 ‘정년연장특별위원회’로 격상하고 “정년 연장 관련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정년 연장 관련 법안(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10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노동계와 경영계의 주장은 뭘까. 그들의 주장 속에서 살펴봐야 할 건 무엇일까. 하나씩 짚어보자.
■ 노동계 주장 =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ㆍ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8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각각 여의도와 동대문에서 열린 집회의 공통된 주장은 정년 연장이었다. 노조가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법정 정년’ 간 격차 때문이다.
지난 2013년을 기점으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퇴직하고도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소득 공백’ 기간이 커졌다. 예컨대 올해 기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3세(1962년생)로 법정 정년과 3년의 격차가 있다. 이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2028년엔 64세부터, 2033년엔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노조 측은 “최대 5년에 달하는 소득 공백을 해소하지 않으면 고령층 빈곤이 심화할 것”이라면서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한 상황에서 현행 60세 정년이 유지되면 노후 빈곤, 국가 복지 부담 증가, 소비 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2%(2023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평균치 14.2%) 38개국 중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 세대에 이은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 출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했다. 전체 인구의 18.6%(954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향후 10년에 걸쳐 정년을 맞는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정년 연장은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인 게 사실이다”면서 “노인 빈곤에서 기인하는 사회적 비용 부담을 줄이고,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력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정년 연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따져볼 점도 적지 않다. 정년을 연장해도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정규직 노동자만 혜택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정년제’를 운영하는 기업이 전체의 21.8%(178만9174개 사업체 중 38만9349개·2024년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실제 은퇴 연령도 60세를 훨씬 밑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5월 기준) 평균 은퇴 연령(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관둔 나이)은 52.9세에 그쳤다. ‘정년 5년 연장’이란 정책적 목표가 대부분의 노동자에겐 ‘남의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먼저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 경영계 주장 = 이번엔 경영계의 입장을 들어보자. 경영계가 우려하는 이유는 당연히 ‘비용’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65세로 늘릴 경우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최대 30조20 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년 연장 5년차가 됐을 때 60~64세 근로자는 59만명(2023년 기준 추정치)으로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4대보험 등을 합산하면 30조원에 육박한다는 거다. 특히 근속연수·나이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형 임금구조에선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을 위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선례先例가 있어서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리포트를 보자. “2016년 정년 60세를 의무화한 이후 55~59세 근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같은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일자리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젊은 세대 일자리와 정년이 늘어난 일자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던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발언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거다. 60세든 65세든 정년 연장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일 가능성이 높고 이곳들은 청년층이 선호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다.
이처럼 경영계는 청년층을 앞세워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년연장 등은 노동시장 전반에 연관된 사안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면서 “기존 근로 관계를 종료한 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 재고용하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자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이 제시한 퇴직 후 재고용은 앞서 일본에서 자리 잡은 방식이다. 일본의 경우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노동자가 원할 경우 65세까지 의무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방식은 ▲퇴직 후 재고용, ▲65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제 폐지 중 선택할 수 있다.
그중 퇴직 후 재고용은 비정규직으로 재고용하는 것으로 임금이 정년(60세) 대비 40%가량 감소한다. 일본 정부는 임금이 정년 대비 35% 이상 줄어들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짚어봐야 할 게 있다. 경영계의 주장대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도입했을 때, 기업이 비용을 절감한 만큼 청년 고용을 확대할지 여부를 담보하기 어렵다. 2016년에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2024년 기준 16.7%)했지만, 실제 청년 고용 확대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유지ㆍ연장하는 대신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다. 임금 삭감률은 노사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데 통상 30~50% 수준이다. 이처럼 정년 연장 이슈는 논쟁해야 할 게 많다. 쫓기듯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면 애먼 노동자가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이주환 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무리하게 서둘러 정년 연장 법제화를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특히 지역의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 고령층에 적합한 다양한 일자리 공급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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