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주거 사다리 사라지자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가 권력 잡았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렌티어 자본주의 그림자 1편 트럼프-맘다니 브로맨스 화제 저렴한 월세 통제 주택 공급 합의 가격 통제에 초점 맞춘 맘다니 기업의 주택 공급에 꽂힌 트럼프 주거 사다리 이탈 미국 청년들 경제 생태계 이탈 후 이상한 선택

2025-11-24     한정연 기자

# 미국식 임대아파트인 뉴욕의 ‘월세 통제 주택(affordable housing)’은 왜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랐을까. 정치적으로 극과 극으로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마음을 열고 토론한 주요 주제가 바로 이 저렴한 ‘월세 통제 주택’이기 때문이다.

#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으로 기존 경제 시스템에서 이탈한 미국 청년이 왜 이들을 지지하게 됐는지 2편에 걸쳐서 알아봤다. 렌티어(rentier) 자본주의 그림자 1편이다. [※참고: ‘렌티어’란 임대료(rent)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렌티어 자본주의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산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수입을 얻는 체제를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과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회동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서로 비난하기 바빴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나눈 브로맨스가 화제다. 뉴욕 시장 선거 기간 이들은 서로 ‘공산주의자’ ‘파시스트’라고 강하게 비난했기 때문이다. 맘다니는 당선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독재자”라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도 맘다니의 백악관 방문 당일 “공산주의자가 백악관에 온 것”이라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트럼프와 맘다니는 막상 얼굴을 맞대자 돌변했다. 이들은 서로 동류임을 눈치챈 듯 친근한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맘다니 시장은 “우리는 뉴욕 주민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한 물가(affordability)를 제공하는 방법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주택 가격, 식품 물가, 에너지 가격을 논의했다”고 구체화했다. 왜 이들은 가격 통제를 주된 정책으로 삼는, 이른바 민주사회주의에 공감한 걸까.

미국식 임대아파트인 저렴한 ‘월세 통제 주택(affordable housing)’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가계소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하 수준인 민간 임대주택을 저렴한 주택, 혹은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라는 뜻의 ‘월세 통제 주택’이라고 부른다.

물건의 소유권을 법에서 지정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사인私人 간의 소유권 제한에 관한 합의(real covenant)가 계약 당사자 외에 제3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지닌다. 이를테면 한번 월세가 통제되는 주택으로 계약되면, 임차인이 바뀌어도 월세를 지역 평균 소득의 30% 이하만 받을 수 있다.

맘다니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약이 바로 이 ‘월세 통제 주택’ 공약이다. 맘다니는 저렴한 주택 월세를 전면 동결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월세 통제를 받는 저렴한 집 20만채를 뉴욕시에 공급할 계획이다. 그런데, HUD의 월세 통제를 받는 이 아파트를 공급하는 주체는 뉴욕시가 아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나 사모펀드, 보험회사 등이 지분을 투자한 거대 기업이 이런 주택을 공급한다.

미국에서 월세 통제 주택을 가장 많이 소유한 30대 기업 중에서 비영리기업은 3개뿐이다. 뉴욕시 1위 사업자는 이런 아파트 3만5574채를 소유한 엘플러스엠(L+M)이다. 부동산업자 론 모엘리스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모엘리스의 개인 투자회사 순자산은 56억 달러(약 8조2320억원)에 달한다.

더구나 1960년대 뉴욕시에서 ‘월세 통제 아파트’를 건설해 떼돈을 번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 창업자인 프레드 트럼프였다. 맘다니는 월세와 같은 가격을 통제하는 데 매료됐고, 트럼프는 이런 아파트를 시중에 대량 공급한다는 게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트럼프와 맘다니 같은 양극단의 정치인이 무대 전면에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두 사람이 물가 폭등의 피해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아 권좌에 올랐다는 공통점을 무시할 수 없다.

‘월세 통제 아파트’를 공급하는 기업을 포함한 대부분 기업은 지난 팬데믹 기간이 지나자, 비용 증가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올렸다. 이런 ‘탐욕 인플레이션’이 결국 청년층의 자산 축적을 막아선 결과가 이런 정치인들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인 약세론자이자 투자은행 소시에테 제네랄(SG)의 글로벌 전략 담당인 앨버트 에드워즈는 2023년 포천과 인터뷰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청년층은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다. 청년은 주거 사다리를 오를 수 없고, 부가 극도로 집중돼 있다. 청년이 경제 활동에서 배제돼 있다고 느끼면,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인센티브라는 게 사라진다.”

실제로 집값이 비싸서 미국에서 주택 소유율이 가장 낮은 뉴욕주州를 보면, 청년들이 속속 자산 축적의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관측된다. 미국의 평균 주택 소유율은 2025년 2분기 기준 65.1%인데, 뉴욕주는 2024년 52.7%로 가장 낮았다.

뉴욕주 청년층의 주택 소유율은 이만도 못했다. 35~39세 뉴욕 주민의 주택 소유율은 40.0%였다. 30~34세는 26.0%, 25~29세는 13.0%, 20~24세 뉴욕 주민은 3.0%에 불과했다.

아무런 자산을 보유하지 못하는 청년층 비율이 늘어나자, 맘다니가 이들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이번 뉴욕시장 선거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18~29세 뉴욕 청년 28.0%가 투표에 참가했고, 이중 75.0%가 맘다니에게 투표했다(터프츠대학). 2015년 보스턴 시장 선거의 18~29세 투표율인 2.0%와 비교하면, 뉴욕 청년 사이에서 일어난 ‘맘다니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월세 상승이 멈추지 않으면서 뉴욕시 월세 통제 아파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뉴욕시 맨해튼. [사진 | 뉴시스]

그런데 트럼프의 재집권 원동력도 맘다니와 같다. 지난해 CBS의 미국 대선 출구 조사에서 4년 전보다 재정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한 유권자 10명 중 8명이 도널드 트럼프를 뽑았다.

이들의 등장을 진보나 보수와 같은 기존 진영 논리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청년을 자산 축적의 사다리에서 이탈시켰고, 그 분노가 자신들이 서로 부르는 것처럼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의 집권을 불러왔다.

비슷한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한국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렌티어 자본주의 그림자’ 2편에서는 우리나라 청년이 어떻게 자산 축적의 사다리에서 배제됐는지,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