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진 코딩 가르치더니 이젠 AI? 오락가락 교육 백년지대계 [이슈 後]

더스쿠프 이슈 後 정권 바뀌면 달라지는 교육정책  직전 정부선 코딩 교육 밀었지만 현재는 찬밥 신세인 프로그래머 李 정부 AI 인재 양성에 초점 같은 전철 밟는 건 아닐까

2025-11-25     이혁기 기자

# 정부가 또다시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며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양성하려는 건 인공지능(AI) 인재입니다. 전세계가 AI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을 고려하면 언뜻 타당한 선택인 것처럼 보입니다.

# 문제는 이 흐름이 낯설지 않다는 겁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정부는 ‘코딩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교육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 하지만 그때 배운 학생들이 오늘날 설 자리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코딩을 대신 해주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프로그래머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는 탓입니다.

# 이런 코딩 열풍이 채 식기도 전에 AI 인재 양성을 선언한 정부의 판단은 과연 타이밍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또다시 늦은 선택을 내린 걸까요. 더스쿠프가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살펴봤습니다.

정부의 ICT 교육방침이 코딩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었다.[사진 | 연합뉴스]]

한국에서 코딩 교육의 필요성이 떠오른 건 2020년 코로믹19 팬데믹이 시작하면서입니다. 게임ㆍOTT 등 비대면 산업 시장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프로그래머의 몸값이 치솟았습니다.

신조어도 생겨났죠. 프로그래머를 영입하기 위해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들을 지칭하는 ‘네카라쿠배(네이버ㆍ카카오ㆍ라인플러스ㆍ쿠팡ㆍ배달의민족)’ ‘당토직야(당근ㆍ토스ㆍ직방ㆍ야놀자)’란 말이 유행처럼 돌았습니다.

그러자 대학생은 물론 재취업을 원하는 직장인 사이에서도 코딩 열풍이 불었습니다. ‘경험 없어도 가능한 비전공자 코딩 교육’ ‘국비지원으로 대기업 취업’ 등을 내건 국비지원교육이 성행했고, 코딩 부트캠프(단기집중교육)도 급증했습니다.

정부도 필요성을 느꼈는지 ‘코딩 교육’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2022년 8월 교육부는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초ㆍ중등교육 단계부터 전 연령대에 걸쳐 디지털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2026년까지 100만명의 디지털 인재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 초등학생는 ‘정보’ 과목 교육 시간을 기존 17시간에서 34시간 이상, 중학교는 34시간에서 68시간으로 2배 늘렸습니다. 중학교는 기초원리를 이해시키는 학습을 통해 문제 해결 중심의 코딩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고등학교는 학생의 진로ㆍ적성을 고려해 학점제 형태의 다양한 코딩과목을 신설했고,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선 영재학급을 2025년까지 7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도 투입했습니다. 일례로, 방과 후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교육을 제공하는 ‘디지털새싹 사업’에 2022~2024년 총 2803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중ㆍ고등학생 참가자가 디지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청소년 SW동행 프로젝트’에도 지난해 61억원을 집행했습니다. 

과거의 코딩 열풍이 무색하게도, 현재 프로그래머는 고용 시장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그럼 3년이 흐른 현재, 정부의 코딩 교육 정책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요? 따져볼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코드를 짜는’ 프로그래머 수요가 되레 줄어들었습니다. 인공지능(AI) 때문입니다. 코딩 열풍이 분 지 불과 2~3년 만에 ‘코드를 짜는 AI’인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프로그래머 수요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시니어 프로그래머 수요는 변화가 없지만, 이제 막 경험을 쌓는 주니어 프로그래머 고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AI에 맡기는 게 비용 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인 듯하다.” 

분위기 바뀐 코딩 시장

이런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생성형 AI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미국입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내 프로그래머 고용 인구는 2022년 42만2000명에서 지난해 32만5000명으로 22.9% 감소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프로그래머 4분의 1이 사라진 셈입니다. 

개발자를 뽑는 공고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대표 구인 플랫폼 ‘인디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미국 전체 일자리 채용 공고는 5년 전보다 10% 증가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 공고는 같은 기간 35% 감소했습니다.

해고를 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5월 13일 전체 직원의 3% 규모인 6000명을 해고했는데, 그중 40%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였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IT 대기업인 네이버는 지난해 314명을 신규 채용했습니다. 프로그래머 수요가 극에 달했던 2022년 599명 대비 47.5% 줄어든 수치입니다. 카카오의 신규 채용도 같은 기간 870명에서 258명으로 70.3% 감소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 정책에 따라 의무적으로 코딩을 배운 학생들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게 배운 지식을 활용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니까요. 김대식 카이스트(전자ㆍ전기공학) 교수가 지난 10월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에서 한 말을 들어보시죠.

“가장 먼저 AI에 대체될 직업은 프로그래머 같은 직업군이다. 공장과 다르게 이들이 생산하는 소프트웨어는 실체가 없어 ‘없애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코딩을 배우는 학생들이다. 100만명의 초등학생이 코딩을 배운다고 가정하자. 그중 실력이 뛰어난 10%만 생존하고 90%는 도태될 것이다. 90%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기회비용을 날린 셈이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정부 정책과 현실이 괴리를 빚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코딩이 그랬다면, 지금은 AI입니다.  지난 10일 교육부가 발표한 ‘모두를 위한 AI 인재양성방안’을 살펴볼까요? 정책 방향은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AI 인재’를 가능한 한 빨리 확보하는 것입니다.

대학원생의 학사ㆍ석사ㆍ박사 과정에 도입하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제)이 대표적인 개편 방안입니다. 박사 취득 기간을 기존 8년에서 5.5년으로 줄여 우수한 AI 인재가 빨리 산업ㆍ연구계로 진출하게 만들겠다는 게 목표죠. ‘AI 패권’을 두고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패스트트랙은 도입이 시급한 정책임엔 분명해 보입니다.

코딩과 붕어빵 AI 정책

다만, 두번째 방향인 초중등 교육은 살펴볼 점이 있습니다. 초중등 교육의 목표는 ‘보편적인 AI 교육 확대’입니다. AI 교육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이를 위해 현재 730곳인 초ㆍ중등 AI 중점학교를 2028년까지 2000곳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AI 중점학교는 학생들이 AI 기초ㆍ심화 교육을 받도록 특화된 학교입니다.

AI 특화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과학고와 영재학교도 늘립니다. 지금은 14곳에서만 진행 중인데, 이를 내년까지 전체 과학고ㆍ영재학교(27곳)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이밖에 일반 학교도 ‘정보’ 과목에서 AI 수업 비중을 연간 13시간에서 21시간으로 늘립니다. 총예산은 1조4000억원. 초중등 교육에 9000억원, 대학ㆍ대학원 등 고등교육에 5000억원을 투입합니다.

어떤가요? 과거 정부가 추진한 코딩 교육 정책과 차이점이 느껴지나요? 관련 교육 시간의 비중을 늘리고, 특화 교육과정을 확대하는 등 교육부가 발표한 초중등 AI 교육 정책 중엔 코딩 교육 정책과 비슷한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정책의 간판이 코딩에서 AI로 바뀌었을 뿐, 접근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세월이 흘러 이들 학생이 취업 시장에 나갔을 때입니다. 코딩 교육 정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그래머 수요가 줄었듯, 치솟는 AI 인재 수요가 어떻게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벌써부터 시장 안팎에선 뛰어난 실력을 가진 AI 인재 위주로만 채용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7월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시죠. “현재 AI 인력은 소수의 고숙련 직업군에 집중돼 있다. 수학자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전자공학 기술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고학력의 남성 중심 구조가 두드러진다. OECD 국가 AI 인력의 60% 이상이 고등교육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10월 23일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에서 “우리는 직업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5~10년 안에 인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조차 바뀔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AI 인재를 길러 배출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판단은 옳은 걸까요? 코딩 교육 때처럼 너무 늦게 시스템을 바꾼 건 아닐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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