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씌우자니 그렇다고 안 씌우자니… 따릉이 딜레마
더스쿠프 연속기획 넘버링+ 따릉이 10년의 기록 3편 자전거 이용자 헬멧 착용해야 해 그러나 따릉이 헬멧 제공 없어 과거 시범사업 했으나 성과 저조 서울시, 위법과 편익 사이 딜레마
‘서울시민의 발’ 따릉이를 탈 때 법적으로 헬멧을 써야 할까요 안 써도 괜찮을까요? 혹시 ‘공공 헬멧’을 착용하라고 권고하면 여러분은 따릉이를 타실 건가요? 더스쿠프 넘버링 ‘따릉이 10년의 기록’ 마지막 편은 이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우리는 넘버링 ‘따릉이 10년의 기록’ 1편과 2편에서 지난 10년 따릉이가 달려온 길을 들여다봤습니다. 먼저 1편에서는 따릉이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봤습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는 지난 10년간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서울 시민 2명 중 1명은 따릉이 회원입니다. 현재 4만5000대가 서울을 누비고 있고, 누적 이용건수는 2억5000만건을 넘었습니다.
다만, 고질적인 한계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중장년층의 이용률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점, 특정 지역 대여소에 따릉이 쏠림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점 등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에 3년 연속 적자가 100억원을 웃돌았다는 점도 살펴야 할 이슈로 보입니다.
2편에선 서울시가 시민들이 매일 체감하는 따릉이의 불편요소를 줄이기 위해 얼마만큼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더스쿠프 기사를 토대로 살펴봤습니다.[※참고: 이 이야기는 ‘덮지붕 없는 대여소 바뀌지 않은 풍경ㆍ더스쿠프 677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처럼 1편과 2편에서 ‘따릉이 10년’을 자세히 기록했지만, 우리가 살펴보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따릉이의 ‘근본적인 안전 문제’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헬멧 착용’ 문제입니다. 시민들이 따릉이를 탈 때 과연 헬멧을 써야 할까요? 그냥 안 써도 괜찮은 걸까요?
먼저 법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제 50조 4항)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자는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따릉이 이용자 중 헬멧을 쓰고 있는 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공공자전거 특성상 개인이 헬멧을 들고 다니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데다, 이용 방식 자체가 ‘필요할 때 즉시 빌려 타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통계도 이를 보여줍니다. 따릉이 이용자만을 따로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전체 자전거 이용자 착용률을 보면 현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4 손상유형 및 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헬멧 착용률은 16.2%에 불과했습니다. 오토바이 헬멧 착용률(74.2%)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왜 이런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자전거 운행 시 헬멧 미착용으로 적발돼도 범칙금 납부 등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헬멧 안 썼다고 웬 범칙금?’이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전거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에서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습관은 큰 위험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2024년 기준 자전거 이용 현황’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는 총 5571건입니다. 하루 15건꼴로 발생한 셈입니다. 전년(5146건)보다 425건(8.3%) 늘었습니다. 사고 10건 중 7건(66.0%)은 앞을 제대로 보지 않거나,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등 안전운전 의무를 따르지 않은 게 원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헬멧 착용과 같은 기본 안전 수칙이 중요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서울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8년엔 여의도와 상암 일대에서 안전모를 무료로 빌려주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착용률 저조, 헬멧 도난ㆍ분실, 시민 여론 악화 등의 이유로 세달 만에 시범사업을 접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안전모 착용률이 3~4% 수준으로 저조했고, 미회수율은 30%에 달했다”며 “시범운영을 하면서 시민 여론조사를 했는데 88%가 헬멧 착용을 반대했다”고 말했습니다.
‘헬멧 시범 사업’에선 또 다른 난제도 발견됐습니다. 무엇보다 예산 문제가 논쟁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시범 사업 당시 헬멧 2500개와 보관함 6개, 소독기 1대 등을 마련하는 데 약 6800만원이 들었습니다. 헬멧 가격만 따로 떼놓고 보면 1만~1만5000원 수준이었죠. 11월 기준 따릉이가 4만500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따릉이용 헬멧을 비치하는 데 수억원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에 ‘부족한’ 관리 인력 문제도 공론화했습니다. 230여명이 따릉이의 수거ㆍ배치ㆍ육안 검사 등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헬멧까지 관리하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은 서울시를 ‘딜레마의 늪’에 빠뜨렸습니다 헬멧을 비치하자니 현실적 난관이 크고, 비치하지 않자니 ‘지자체가 위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렸습니다. 정경옥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따릉이 이용자가 스스로 헬멧을 착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릉이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안전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헬멧 착용을 강제하는 법적 조치보단 교육과 홍보를 통해 따릉이 이용자들이 스스로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아울러 자전거 도로 확대 등 자전거 인프라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병행할 때 더욱 안전한 따릉이 운행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반면 최재원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서울시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에 했던 시범 사업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해결 방안이 없는 건 아니다. 핸들이나 바구니 등에 헬멧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식으로 분실 우려를 줄일 수 있다. 위생 문제의 경우 최근엔 항균성 재질 플라스틱이 많다 보니 이를 헬멧에 활용할 수도 있다. 서울시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문제라는 얘기다. 자전거 사고 절반 이상은 두부 손상이다. 추가 예산이 필요하더라도 시민 안전 측면에서 헬멧 제공은 다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두 전문가의 의견은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따릉이 이용자의 ‘안전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서울시민의 발’ 따릉이는 과연 안전과 편의를 모두 지키며 달릴 수 있을까요?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