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자화상➋] 파산 선택하는 청춘을 위한 변명
20대가 빠진 영끌 · 빚투의 늪 금리인상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청년층 채무조정 제도, 비판 쏟아졌지만 낙인 효과 막고 청년층 재기 도와야
취업도 어렵고, 내집 마련도 쉽지 않다. 방심했다간 낙오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간 뒤처지거나 소외될 것만 같다. ‘부모 찬스’를 부여받지 못한 20대 청년층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주식을 사거나 내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플렉스’ ‘욜로’ 등 과시적인 소비성향이 부메랑을 날렸다는 반론도 있지만, 왜 우리나라의 20대가 ‘영끌·빚투의 늪’에 빠졌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 중소기업에서 MD로 근무하는 오은나(28)씨.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놨다. 주위에 주식 안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붐이 일어난 데다 ‘월급만으론 평생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모아둔 여유자금이 500만원뿐이었던 그는 시중은행에서 1000만원을 신용대출(변동금리 연 4.29%)로 받아 국내 우량주에 투자했다.
주식시장 상승세와 함께 오씨는 한달도 안 돼 10% 넘는 수익을 냈다. 달콤한 투자맛을 본 그는 2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투자했지만 재미는 거기까지였다. 이후 주식시장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오씨의 수익률은 –50% 이하로 고꾸라졌다. ‘빚투’의 결과는 매달 90만원에 달하는 원리금 상환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가 연내 8%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오씨는 “빚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될 줄 몰랐다”면서 “결국 믿을 건 월급뿐이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 6년차 직장인 권은경(29)씨는 지난해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그가 내집 마련을 서두른 건 눈 뜨고 나면 치솟는 집값 때문이었다. 영영 집을 못 사게 될까 불안했던 권씨는 눈을 낮춰 경기도 김포에 84㎡(약 25평) 아파트를 5억원대에 구입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1억원에 신용대출 1억원(변동금리 연 3.42%), 보금자리론(고정금리 3.5%) 3억원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김포에서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게 고되긴 했지만 내집 마련의 기쁨이 더 컸다.
하지만 요즘 기분은 사뭇 다르다. 대출금리가 계속 오르는데 김포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매달 250만원가량을 대출상환에 쏟아붓고 있는 권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금리가 더 오를 텐데 월급을 죄다 대출 갚는 데 쓰게 생겼다”면서 “이러다 ‘하우스 푸어’가 될까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이 사례는 비단 오씨나 권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수년 새 주식이나 주택을 ‘패닉 바잉’한 20대는 숱하다. 20대(만 20세 이상 30세 미만)가 갖고 있는 국내 5대 증권사(키움·미래에셋·삼성·NH투자·한투)의 증권 계좌 수(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가 2020년 109만594좌에서 지난 4월 167만4720좌로 53.5% 증가한 건 단적인 예다.
같은 시기 집값이 폭등하면서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젊은층도 적지 않다. 2019~ 2021년 주택을 구입한 사람(250만1574명) 중 20·30대 비중은 28.9%(72만2775명)에 달했다. 20·30세대의 주택 구입 비중이 높은 지역은 서울(33.4%), 경기(31.1%) 등이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지금 집 사지 않으면’ 루저가 될 것 같은 불안함이 이들의 니즈를 부추긴 셈이다.
[※참고: 물론 여기선 전제로 둬야 할 게 있다. 모든 20대가 빚투나 영끌에 빠진 건 아니라는 거다. 지금 20대가 어려움에 처한 게 오로지 빚투나 영끌 때문인 것도 아니다. 장혜영(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채무조정 특례 지원(2019년~2022년 6월)을 받은 청년 중 51.3%의 사유가 ‘생계비 증가’와 ‘실직’이었다. 주식 등 ‘투자 실패’로 채무조정을 받은 이는 0.8%에 불과했다. 위기에 빠진 20대를 모두 영끌·빚투족으로 몰아세우는 건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영끌·빚투에 빠진 이들을 ‘한탕주의’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그들에겐 영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 20대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 시스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이 기사에선 그런 것들을 두루 다뤘다.]
임명호 단국대(심리학) 교수는 “20대 청년층이 영끌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덴 미래에는 ‘기회’가 더 줄어들 거란 암울한 전망이 한몫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경기침체로 취업은 어렵고, 내집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20대는 조급함과 불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나만 뒤처지거나 소외될까 두려워 무리해서라도 자산을 증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20대 사이에서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 sing Out)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 받아서 주식 사고,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내집 마련에 나선 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월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후 빚투·영끌족에 직접적인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이 총재는 “20·30대 젊은층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3%대 금리가 평생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면서 “지금은 그런 가정이 변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갈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6월에 이어 두번째 자이언트 스텝이다. 그 결과,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면서 한국은행도 또다시 금리 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향후 2년 이상 금리 인상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20대는 사채 등 고금리 대출시장으로 내몰릴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금 20대가 처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해 20대의 개인파산 신청 건수(대법원)는 828건으로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1년(555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330건의 20대 개인파산 신고가 접수됐다.
채무조정을 신청한 20대도 크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 20대 채무조정 신청자는 7594명으로 2019년(5917명) 대비 28.3%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40대, 50대의 채무조정 신청자 증감률은 6.0%, -0.7%, 4.0%에 그쳤다. 자산 기반이 취약한 20대가 금리 인상기에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젊은층이 빚투에 뛰어든 이면엔 부동산을 투기시장으로 만든 국가의 책임이 없지 않다”면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미래경제를 이끌어갈 젊은층이 파산 위험에 처하는 건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혹자는 20대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면서 반론을 편다. ‘플렉스(Flex)’ ‘욜로(YOLO)’ 등 과시적인 소비성향이나, 근로소득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큰돈을 꿈꾼 ‘한탕주의’가 문제의 화근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 시각은 20대를 지나치게 좁은 시야로 바라본 결과란 지적이 많다. 지금의 20대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어려운, 그래서 ‘부모보다 가난하게 사는 첫 세대’가 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 속에 놓인 세대다. 그렇다면 지금 20대의 진짜 삶은 어떨까. 커버 파트2에선 20대를 둘러싼 오해와 현실을 조명해 봤다. [※참고: 커버 파트2 20대 시대유감, 빚투와 편견은 8월 9일 화요일에 업로드할 계획입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