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집단 갈망과 기업의 탐욕 … 5G 거짓말
5G 3.5㎓ 기지국 설치맵 분석➌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애초 불가능했던 5G 민낯 ‘세계 최초’란 덫에 빠져 숱한 통신소비자 눈속임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 없어 2000년대 美 무선랜 광풍 그 실패에서 배워야 할 점 5G 기만극 공론화 통해 소비자 통신 부담 줄여야
# 5G 주파수는 28㎓, 3.5㎓ 두개다. 둘 중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담보하는 주파수는 28㎓인데, 사실상 ‘가동 중지’ 상태다. 그럼 3.5㎓ 주파수는 어떨까. 이 역시 금세 깨질 봄꿈처럼 기대할 게 없다. 무엇보다 3.5㎓ 기지국을 충분히 구축할 공간이 부족하다. 설사 전국 구석구석에 3.5㎓ 기지국을 만들더라도 ‘20배 빠른 속도’는 불가능하다. 3.5㎓의 최대 속도가 LTE보다 약간 빠른 수준이어서다.
# 두 이야기는 우리가 단독 입수한 ‘5G 3.5㎓ 기지국 설치맵’을 분석한 결과다. 28㎓든 3.5㎓든 지금의 5G는 이통3사가 홍보했던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거다. 5G를 두고 정부와 기업이 공모한 ‘기만극’이란 웃지 못할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쯤 됐으면 5G의 민낯을 공론화하고, 새로운 통신정책을 짜는 게 수순이자 순리다. 그런데 정부와 이통3사는 이번에도 애먼 봄꿈만 키운다. 정부는 6G 시대를 운운하고, 이통3사는 그 옆에서 군불을 때고 있다. 이게 정상일까. 더스쿠프 ‘5G 3.5㎓ 기지국 설치맵’ 마지막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에서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벌어진 무선랜 실패극과 5G 기만극을 비교해 봤다.
# 원대한 계획
2004년 4월. 미 필라델피아 시장 존 스트리트(John Street)는 센터시티 러브파크에서 ‘무선랜 핫스폿(Hot Spot·와이파이 접속공간)’의 기공식을 열었다. 계획은 원대했다. “필라델피아 전역을 와이파이로 뒤덮겠다.” 인터넷 사업자 어스링크(Earthlink)가 사업을 제안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시민들은 열광했다. 미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추진한 프로젝트인 데다, 투입 비용이 1000만 달러(약 120억원·당시 기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뉴욕타임스는 이 프로젝트에 ‘빅(big)’이란 단어를 붙인 기사(big wifi project for Philadelphia)를 게재하면서 필라델피아의 실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치즈 스테이크, 크림치즈, 우애의 도시는 잊어라. 필라델피아는 이제 노트북의 도시로 알려지길 원한다(forget cheese steaks, cream cheese and brotherly love. Philadelphia wants to be known as the city of laptops.)
# 보이지 않는 뇌관
‘와이파이 제국’을 향한 필라델피아의 혁신적 행보는 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 등 다른 지자체를 자극했다. 어스링크에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업체 AT&T까지 뛰어들면서 필라델피아의 ‘와이파이 프로젝트’는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혁신의 이면엔 ‘보이지 않는 뇌관’이 숨어 있었다. 다름 아닌 기업의 갈망과 정치인의 욕망이었다.
# 암울한 그림자
1990년대 ‘다이얼-업(dial-up·용어설명)’ 방식으로 성장한 어스링크는 2000년대 들어 무선통신기술이 진화하면서 쇠락의 늪에 빠졌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광대역 통신망 시장에 진출해야 할 만큼 절박했다.
이런 어스링크에 신기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존 스트리트 시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였다. 존 스트리트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거대한 프로젝트’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스링크의 갈망과 정치인의 욕망이 맞물리면서 필라델피아의 ‘와이파이 프로젝트’가 과대포장됐다는 점이다.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무선랜 핫스폿의 설치 비용은 1000만 달러가 아니었다. 송수신기를 다는 데만 2000만 달러가 필요했다.
와이파이 기술력이 필라델피아 전역을 커버할 만큼 빼어나지도 않았다. 빅 프로젝트로 추앙받던 필라델피아의 빅픽처엔 그렇게 암울한 그림자가 스며들고 있었다.
# 실패작이란 꼬리표
한번 내려앉은 그림자는 끝내 걷히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는 2006년 ‘와이파이 프로젝트’를 론칭했지만, 금세 기술적·재정적 어려움에 부딪혔다. 난제를 풀지 못한 어스링크는 샌프란시스코·뉴올리온스 등과 맺은 계약을 줄줄이 파기했다.
당시 룰라 허프 어스링크 CEO는 양심고백을 방불케 하는 한탄을 남긴 채 백기를 들었다. “도시 와이파이 구축사업은 뛰어난 아이디어일 뿐 성공적인 사업모델은 아니다.”
미 전역을 혁신으로 물들였던 필라델피아의 ‘와이파이 프로젝트’는 실패작이란 꼬리표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앞세운 기업의 조급함, 이를 치적으로 삼고자 했던 정치인의 무모함이 만들어낸 초라한 결과였다.
# 욕망의 신기루
“새로운 기술의 효과는 단기적으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장기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We tend to overestimate the effect of a technology in the short run and underestimate the effect in the long run).”
-미국 과학자 로이 아마라-
초기 기술은 천천히 진화한다. 바닥부터 다져야 하기 때문에 장애가 많고, 한계도 숱하다. 하지만 신기술을 접한 사람들은 종종 ‘지나치게 앞서가는’ 오류를 범한다. 이런 오류가 인기를 얻어야 생존하는 정치인의 욕망과 얽히는 순간, 신기술은 신기루로 변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도시들을 뒤흔든 필라델피아발 ‘와이파이 프로젝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도 비슷한 예가 있다. 바로 5G 프로젝트다.
# 23시 선언의 이유
2019년 4월 3일 밤 11시. 정부와 이통3사는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미국 이통사 버라이즌보다 2시간 빠른 시점이었다. 느닷없는 ‘23시 선언’을 두고 “세계 최초란 타이틀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란 우려가 번졌지만, 신기술을 향한 국민적 기대감은 꺾이지 않았다. 이통3사가 국민 앞에 선보인 ‘5G의 미래’가 상상 이상의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앞세운 홍보문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5G 서비스 속도는 20Gbps(초당 20기가비트)다. 이전 통신 서비스 LTE의 이론상 최대 속도(1Gbps·초당 1기가비트)의 20배 빠르다….”
기대감이 커진 덴 대통령의 말도 한몫했다. “5G는 기존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 넓고 체증 없는 통신 고속도로다(문재인 대통령·2019년 4월 세계 첫 5G 상용화 기념사).”
하지만 이 내용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5G의 평균 속도는 20Gbps에 훨씬 못 미치는 0.8Gbps(2021년 기준)에 불과했다. 20배 빠르긴커녕 LTE의 최대 속도(1Gbps)보다도 느린 수준이었다.
# 허구의 산물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와 이통3사는 ‘5G가 4G의 최대 20배 속도를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5G 상용화를 선언한 지 1년 만인 2020년 최기영 과기부 장관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5G의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주파수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 역시 2021년 국정감사에서 “5G가 20배 빠른 건 이론적 수치”라고 인정했다.[※참고: 이를 근거로 공정위는 지난 6월 ‘LTE보다 20배 빠른 5G’란 문구를 과대광고로 결론짓고, 이통3사에 과징금 336억원을 부과했다.]
당연히 5G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5G 주파수 대역은 28㎓(고대역 주파수)와 3.5㎓(중대역 주파수) 두개다. 이중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주파수는 28㎓인데, 지금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3.5㎓는 정상가동 중이긴 하지만, 속도는 LTE보다 약간 빠른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LTE보다 20배 빠르다’는 5G는 치적을 남기려는 정치집단의 욕망과 신기루를 팔아 수익을 올리겠다는 이통사의 욕심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이었던 거다. 필라델피아의 와이파이 프로젝트가 그랬듯 말이다.[※참고: 5G 주파수 28㎓·3.5㎓ 문제는 視리즈 1편 “터지지도 않는데…” 5G 기지국 얼마나 더 만들 수 있나, 2편 5G 기지국 2곳 중 1곳 LTE와 중복 설치란 제목의 기사에서 자세히 다뤘다.]
# 피벗의 함의
그럼 정부와 이통3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답은 필라델피아에서 찾을 수 있다. 뼈아픈 실패를 맛본 필라델피아는 무용지물로 전락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감시카메라·공무원 휴대용 단말기 등에 연결했다. 대중을 위해 설계하고 도입했던 무선랜의 용도를 공공의 안전으로 바꿨던 거다.
필라델피아의 이같은 피벗(전략적 변경· Pivot)은 훗날 미국 도시들이 와이파이 프로젝트를 무리 없이 수행하는 데 ‘반면교사’ 역할을 해냈다. 세계적 도시계획 전문가 앤서니 타운센드는 자신의 저서 「스마트시티 더 나은 도시를 만들다(SMART CITIES)」에서 필라델피아의 피벗을 이렇게 평했다.
“…필라델피아의 사례를 발판으로 테네시주 채터누가(chattanooga)와 같은 도시들은 좀 더 체계적이고 목적지향적이며, 절제된 방식으로 와이파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 불편한 단상
이처럼 실패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실패의 원인을 깨쳐야 또다른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 우리 정부와 이통3사의 갈 길도 명확하다. 출발부터 비틀어진 5G 문제를 공론화하고, 거짓과 탐욕으로 얼룩진 통신시장을 정비해야 한다. 이건 수순이자 순리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퇴행退行’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5G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체도 없는 6G를 띄우고 있다. 직전 정부가 그랬듯 이번에도 ‘세계 최초’를 운운한다. 이통3사는 공정위가 5G 과대광고를 이유로 부과한 과징금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온전히 터지지도 않는 5G를 쓰는 국민 3000만여명은 값비싼 통신비에 짓눌리고, 이통3사는 그런 국민을 볼모로 역대급 이익을 쌓고 있다. 어떤가. 이게 정상인가. 5G의 불편한 단상은 국민 눈에만 보이는 걸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 참고: 560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8월 28일 발간한 경제매거진 더스쿠프 視리즈 ‘5G 기지국의 비밀’의 총론입니다. 視리즈 1편 “터지지도 않는데…” 5G 기지국 얼마나 더 만들 수 있나(8월 27일 일요일 온라인 출고), 2편 5G 기지국 2곳 중 1곳 LTE와 중복 설치(8월 28일 월요일 온라인 출고)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