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무과에 급제한 이순신의 관직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변방을 떠돌며 승진과 강등을 반복하며 전전긍긍했죠. 그런 이순신이 47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장군의 직위를 가지고 부임한 곳이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입니다. 공식 직위는 정3품에 해당하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조선은 나름 시스템을 갖춘 국가였습니다. 일부에선 일본의 침략을 꼼꼼하게 대비했습니다. 봉화를 정비하고 흐트러진 군비를 점검하는 식이었습니다.
예술에서 모티프는 창작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건이나 사물, 의미 있는 요소들을 일컫기도 한다. 갤러리 학고재에서 선보이고 있는 ‘모티프’전은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논리와 서사를 모티프를 통해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선보인 ‘직관 2017’에 이은 청년작가 단체전이다. 지난 전시에서 예술의 첫째 창작 요건인 직관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모티프의 개념을 활용한다. 로와정ㆍ배헤윰ㆍ우정수ㆍ이은새ㆍ이희준 등 5인 청년작가가 참여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과 표현 기법을 선보인다.이번 전시는 청년 세대의
이순신의 첫번째 묘소는 음봉면 금성산에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뒤에 지금의 어라산으로 이장됐습니다. 왜 옮겨졌을까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 적군의 흉탄을 맞고 돌아가신 게 아니라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위장됐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노량해전에서 무사히 귀환한 지 16년 뒤에 자연사하셨고, 그제야 비로소 묘에 묻히셨다는 겁니다. 금성산에서 어라산으로 이장된 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합니다. 또 다른 설도 있습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살아남았다가 임금으로부터 화를 입을까봐 몸을 스스로 던졌다는 겁니
파스텔톤 작품들이 마치 컴퓨터 스크린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듯 시선을 붙잡는다. 유려한 붓질로 뛰어난 색채감을 보여주는 작가 피오나 래(Fiona Rae)의 작품들이다. 개관 30주년을 맞은 학고재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 ‘학고재청담’을 마련해 개관전으로 ‘피오나 래’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30여년간 회화 작업을 해온 피오나 래의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자리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작업한 최근작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엄선했다. 피오나 래는 영국 현대미술의 세대교체 신호탄으로 평가받는 전시 ‘프리즈(Fr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는 작곡가(모차르트)뿐만 아니라 원작자도 걸출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시인 겸 극작가인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는 빈의 궁정시인을 지낼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진지하고 비극적인 내용·정가극)의 발전에 기여한 주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2막 = 비텔리아 공주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세스토는 티토왕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암살 계획을 실행한 후 숨어있던 세스토에게 안니오가 찾아와 티토왕이 살아있다고 알려준다. 친구를 죽이려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세스토는 안니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금지된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영국 유학 중 록 음악에 빠진 청년 얀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프라하의 봄을 위해 존경하는 스승과 공부를 뒤로한 채다. 하지만 공산당 독재체제가 계속되던 고향은 여전히 한겨울처럼 춥기만 하다. 국립극단이 올해 마지막 공연으로 ‘록앤롤 (ROCK ‘N’ ROLL)’을 선보인다.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개입, 벨벳혁명 등 파란의 역사 속에서 지식인의 갈등, 이데올로기로 인한 억압 등을 록 음악과 함께 그려낸다. 민주화ㆍ자유화 바람이 불던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를 배경으로 록 음
1583년 11월,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7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소식은 2개월 뒤인 1584년 1월 이순신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순신은 즉시 낙향해 3년상을 치렀습니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입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 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1597년 4월 11일에 8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순신은 이 사실을 이틀 뒤인 4월 13일에 알게 됩니다. 전쟁 중이다 보니 3년상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일주일이 채 되기 전인 4월 19일에 이순신은 백의종군 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의 나이 쉰셋이었습니다.이
1897년(고종 34년) 시작된 대한제국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여 1910년 짧은 시대를 마감한다. 그간 미술계에서는 대한제국 시기의 미술을 조선시대 미술 전통의 쇠퇴기로 인식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되는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은 대한제국의 미술 역시 과거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노력했으며, 외부 요소를 적극 받아들였던 역동적인 시대였음을 보여준다.이번 전시는 당시의 회화ㆍ사진ㆍ공예 200여점을 통해 대한제국 시기 미술이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를 소개한다. 특히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한국 추상표현주의 대표 화가 김두례의 작품은 대담하면서도 절제된 색채가 정적인 구도와 만나 묘한 느낌을 준다. 그의 독자적인 화풍은 누구나 그림을 보는 순간 ‘김두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한국 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혀온 김두례의 개인전이 25일까지 롯데 갤러리 잠실점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오방색에서 확장된 다양한 색과 회화의 기본 요소에 집중한 색면 추상회화 70여점이 선보인다.김두례는 1993년 첫 개인전 이후 풍경화ㆍ인물화ㆍ누드화를 두루 탐색하던 중 1999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공부
이순신은 한양 건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순신과 그의 후손들이 살던 곳은 바로 이곳, 아산 현충사 내에 있는 이순신 고택古宅입니다. 이 집은 이순신의 외갓집이었다는 설도 있고, 처갓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였다는 주장을 저는 일리 있게 받아들입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결혼 초기에 부인의 집에서 사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양반 가문도 마찬가지였지요.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도, 어머니 신사임당의 집이 있던 강원도 강릉이었습니다.이순신이 어린 시절에 내려온 아산은 어머니인 초계 변씨의 연고지였습니다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1791년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막으로 이오페라의 배경은 로마제국 시대다. 오페라를 의뢰받는 모차르트는 4주 만에 작품을 완성해 초연까지 마치며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21번째이자 마지막 오페라라는데 의미가 있다. 모차르트가 작품이 초연된 지 3개월 후인 1791년 12월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막 = 비텔리아 공주는 티토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텔리우스 황
이순신이 16일간 근무했던 곳 : 사복시 터“본영의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그 편에 순찰사의 공문과 명나라 시랑 송응창의 패문을 가지고 왔다. 사복시의 말 5필을 중국에 보내기 위해서 올려 보내라는 공문도 왔기에 병방 진무를 보냈다(계사년 5월 12일, 난중일기 중 계사일기).”사복시는 조선시대에 말과 마구, 그리고 목장을 관장하던 관청입니다. 1586년, 이순신은 아버지의 3년상을 마칩니다. 그리고 부임한 곳이 사복시입니다. 직책은 종6품 주부主簿였습니다. 그런데 사복시에 부임한 지 불과 16일 만에 함경도 조산보 만호가 됐습니다.
모다 다카하시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작업 방식은 모든 주변 사물을 가장 사랑스러운 것으로 바꿔 놓는다. 접시ㆍ꽃병 등 일상용품들에서부터 강아지ㆍ고양이ㆍ새 등 의인화된 동물까지 그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순수한 동심을 일깨운다.이길이구 갤러리에서는 도쿄 출신의 예술가 모구 다카하시의 초대전 ‘PIECES OF JOY’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뉴욕ㆍ도쿄ㆍ런던ㆍ브뤼셀ㆍ멜버른 등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전시를 펼쳐온 작가의 국내 단독 초대전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모구는
태양의 서커스 ‘쿠자(KOOZA)’가 한국에서 초연된다. 쿠자는 현존하는 빅탑(텐트극장) 공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공연으로 꼽힌다.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 첫 공연 이래 62개 도시에서 800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쿠자는 ‘상자’ ‘보물’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코자(koza)’에서 따왔다. ‘상자 안의 서커스’라는 공연 콘셉트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연 스토리와도 맞닿아 있다. 공연은 주인공 이노센트가 문을 연 상자에서 트릭스터(어릿광대)가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면서 시작한다. 트릭스터의 세계로 빨려 들어온
두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은 오페라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오페라 ‘시금석’과 ‘리비에타와 트라콜로’도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시금석은 로시니의 작품 중 가장 우아한 스타일의 오페라로 꼽히는 작품이다. 1812년 초연한 이후 53회의 연속 공연을 진행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1막 = 돈 많은 백작 아스드루발레는 자신의 별장으로 친구들을 초대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 중에는 백작이 마음을 두고 있는 미망인 클라리체가 있다. 다른 두 여인 아스파시아와 풀비아도 초대를 받았다. 두 여인은 각자 백작의 청혼을
문명文明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ㆍ기술적ㆍ사회 구조적 발전을 의미한다. 그래서 문명을 떠올리면 편리함ㆍ혜택ㆍ발달 등 긍정적 연관어들이 나열된다. 우리의 삶의 양태는 문명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지금도 우리는 문명 속에서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전展은 1990년대 초부터 25년간 형성돼 온 문명의 다양한 모습을 지구 차원에서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를 아우르며 개별문화를 부정하기보다 대중이 집단으로 공유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우리 시대의
이순신은 1579년 2월 종8품 훈련원 봉사가 됐습니다. 훈련원 봉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순신의 상관 중에 서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익은 이조정랑이었습니다. 이조정랑은 정5품에 불과하지만 인사권에 관여하기 때문에 매우 영향력이 있는 자리였습니다. 서익은 그의 측근을 특진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종8품 봉사에 불과한 이순신이 반대하고 나서는 게 아닙니까? 이 일로 이순신은 서익의 눈밖에 났고, 얼마 못 가서 지방으로 좌천당하고 말았습니다.이순신의 성품이 얼마나 대쪽 같았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는 또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스물세살의 청년 이순신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회薈라고 지었습니다. 이순신은 스물한살에 결혼했습니다. 부인은 보성군수 방진의 딸입니다. 방진은 조선 제일의 명궁名弓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이순신은 결혼 1년 후인 스물두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예를 연마했습니다. 무과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과를 준비하기 시작한 시기를 보면 부인과 장인(명궁이자 무신)의 영향이 컸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신 집안에서 나고 자란 이순신이 무과 시험을 준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사진인지 추상 회화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어둡다. 얼핏 보면 수풀만 무성해 보이는 숲이지만 뭔가 깊은 사연을 직감할 수 있다. 가로 720㎝에 달하는 이 야산의 모습은 사진작가 권순관의 ‘어둠의 계곡’이다. 그는 이 캄캄한 숲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걸까.권순관의 개인전 ‘The Mulch and Bones’가 11월 10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국가의 사회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흔적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어둠의 계곡’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피난 중이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 : 충무로 인쇄소 골목서울 중구 마른내로 47. 명보아트홀의 주소입니다. 명동성당이 근처에 있고, 백병원도 이 부근에 있습니다. 명보아트홀의 옛 이름은 명보극장입니다. 지금은 CGVㆍ롯데시네마 등에 밀려났지만 예전엔 참 유명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적지 않은 차와 사람들이 명보아트홀 앞을 오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갑니다. 극장 앞에 자리잡은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 조선시대에 충무공 시호를 받은 분은 아홉명이나 됩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