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 누군가에게 집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최초의 인간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이란 점이다. 집은 사는 동안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이슈 안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만들어지는 집이란 공간에선 수많은 감정이 충돌한다.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다. 집은 그 자체로 감정의 집합체인 거다. 회화·도예·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집이라는 소재에 천착해온 강준영 작가에게 집
국립현대미술관은 2017년부터 예술 장르를 확장하고 영역 간 경계를 허무는 융복합 프로그램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을 진행해 왔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2019년 ‘동시대 광장’, 2020년 ‘모두를 위한 미술관’에 이어 올해에는 ‘멀티버스(Multive rseㆍ다중우주)’를 주제로 삼았다. 멀티버스란 물리학 가설인 ‘다중우주론(multiple universe)’에서 파생된 용어다. 지구를 포함한 ‘우리의 우주’뿐만 아니라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다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한국 초연의 막이 올랐다. 그레이트 코멧은 미국 극작가 데이브 말로이와 연출가 레이첼 차브킨이 손잡고 만든 성스루(sung-through·대사 없이 노래로만 구성된 뮤지컬)이다. 당초 국내 초연은 지난해 9월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한차례 미뤄졌다. 줄거리는 이렇다. 1812년 러시아 모스크바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혼란에 빠져있다. 젊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전쟁에 나간 약혼자 ‘안드레이’의 귀환을 기다리다 그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그러
여기, 각자의 환상 속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있다. 오래전 남편이 떠나 혼자 분투하며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 ‘아만다’. 아만다는 인기 많고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산다. 유일한 희망은 자식의 행복이다. 아들 ‘톰’은 시인을 꿈꾸지만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일한다. 톰은 꿈을 좇을 수 없는 메마른 현실 앞에 방황한다. 딸 ‘로라’는 어릴 적 앓은 병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절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장애로 인한 콤플렉스에다 수줍음 많은 성격 탓에, 세상과 교류하지 않고 유리 동물만 돌보며 산다. 한집에 있지만 제각각 다른 곳을
1938년 일제강점기. 한성덕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성에서 다방을 운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그의 다방에선 많은 일이 벌어진다. 변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옛 양반들부터 양장을 입은 사업가,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패거리들, 경찰서 순사, 총독부 관리까지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모였다가 흩어지길 반복한다.그 속에서 한성덕은 몸부림친다. 시대의 변화를 좇아가며 다방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시간은 온갖 시위로 혼란스러웠던 1961년을 지나 올림픽을 목전에 둔 1988년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흐른다.외세의
불에 탄 빌딩이 무너져 내린다. 도둑질에 굶주린 사람들이 도사리고, 칼에 찔려 상처 입은 이들이 도시 곳곳을 서성인다. 한 여인은 잘린 머리를 들고 무너진 다리 밑을 자전거로 횡단하고 있다.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미국 작가 릭 프롤이 묘사한 1980년대의 뉴욕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이 한창이던 무렵, 실업률과 범죄율이 치솟던 당시 뉴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릭 프롤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미술계에선 ‘기이한 회화의 대가’로 불린다. 깨진 창문과 유리병,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 바닥에 흩날려 있는 꽃잎…. 그림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지루한 것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다.”코로나19는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을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운동화를 꺾어 신고 편하게 드나들던 장소는 몇 번의 수고로움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게 됐고, 설렘 가득 안고 공항으로 향했던 마음은 언제 다시 콩닥거릴지 기약이 없다. 이제 우리는 랜선 여행을 떠나고, 랜선 친구를 만난다. 직접 마주하던 수많은 풍경은 이제 화면상의 이미지로 대체되고
촉망받는 젊은 선원 ‘에드몬드 단테스’. 그는 약혼녀 ‘메르세데스’와 그의 지위를 노린 주변 인물들의 모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다. 악명 높은 감옥에서 14년의 절망적인 시간을 보낸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간다. 감옥을 극적으로 탈출해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이름을 바꾸고 복수를 시작한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복수의 칼날은 오히려 자신에게 파고든다.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던 그는 파란만장한 여정 속에서 용서와 화해, 사랑의 가치를 찾는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프랑스 국민작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언어를 통해 확고한 골격을 세우고 비로소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직감에 의지하지 않고 누구나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어떤가. 자신의 감정들을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혹, 말로는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있진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한다.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우리의 감정, 이를테면 내면은 언어보다 깊고 넓다는 얘기다.만화가로서 강렬
무대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서쪽 마녀 엘파바가 죽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사악한 사람의 죽음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노래를 부르며 마녀의 죽음을 기뻐한다. 그런데, 서쪽 마녀는 정말 나쁜 마녀일까. 시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린 시절의 엘파바가 등장한다. 부모의 실수로 초록색 피부를 갖고 태어난 탓에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만 엘파바는 정의롭고 똑똑한 아이로 성장해 나간다.마법 학교에 입학한 엘파바는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허영심과 질투가 많은 글린다를 만난다. 둘은 서로 울고 웃으며 조금씩
해마다 3월 1일이면 모두가 유관순 열사를 기린다. 그런데 아는가. 남쪽에서 유관순이 만세를 부를 때 북쪽에선 더 어린 열다섯의 소녀 동풍신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소외됐다. 만세를 외치다 일제에 의해 생을 마감한 김향화는 기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1919년 간호사였던 박자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다 민족적 울분을 참지 못해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했다. 만세 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중은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아내로 그를 더 잘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타고난 천재와 그를 질투할 수밖에 없는 2인자의 고뇌를 담은 연극 ‘아마데우스’가 무대에 오른다.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극본을 원작으로 한 아마데우스는 음악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를 질투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심리를 조명한다. 가난한 시골마을 출신의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는 우연히 모차르트의 공연을 보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신들린 연주력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발함, 시대의 감성을 뛰어넘는 작곡 실력은 살리에리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하
“나는 나무다. 나무로 산 지 오래다. 나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나무가 춤추면 나도 춤춘다.” 임옥상 작가에게 나무와 매화는 날 것 그 자체다. 작가 그 자신이기도 하다. 임옥상은 민중미술가 1세대다. 정치탄압에 비판적이었던 1970~1980년대 직설적이고 호소력 있는 그림으로 민중운동을 이끌었다. 시대를 말했고, 거리로 나섰고, 멈추지 않았다. 그런 임옥상이 나무와 매화를 그린다. 이 작업은 그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정치 고발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민중미술가였던 그가 이제 그림 그리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한 예술가
“입을 옷이 없다.” 이런 말을 한번쯤은 해봤을 거다. 그렇다면 당신의 옷장을 한번 열어보라. 그리고 최근 1년간 한번도 안 입은 옷만 추려보자. 어떤가. 당신은 정말 옷이 없는가. 심지어 신발장과 책장, 서랍, 찬장, 창고도 열어보자. 최근 몇년간 안 쓴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꺼내 보면 당신은 ‘안 쓰고 쟁여 놓은 물건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하면서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다큐멘터리 영화 ‘미니멀리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은근히 남들과 비교하면서 “너에겐 이게 필요해”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하는 광고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첫사랑의 세계는 기이하기만 하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깊게 몰입하게 되는 첫사랑은 환상적이고 황홀하지만 미숙한 착각으로 끝나기도 한다. 러시아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붉은 정원’이 2018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붉은 정원은 초연 당시 좌석 점유율 96%, 유료 좌석 점유율 91%를 기록하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1850년 러시아. 중년이 된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어릴 적 살던 정원으로 돌아와 첫사랑을 떠올린다. 20년 전 어느 여름날
0.03㎜의 가는 펜으로 국내외 자연 풍광과 전통 문화재를 그려온 ‘기록 펜화’의 대가 김영택 작가가 지난 1월 13일 별세했다. 그의 화업畵業 30년을 결산하는 펜화 개인전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전시는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그를 응원하기 위해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의 제안으로 준비 중이었다. 안타깝게 작가가 영면에 들었지만 함께 전시를 준비 중이던 가나문화재단은 예정대로 그의 전시를 열기로 했다.투병 중에도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던 작가였지만 그는 40대 중반까지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살았다. 그러다 1994년
한밤중, 가톨릭 학교에 재학 중인 4명의 남학생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은 라틴어·수학·성경학습 등 엄격한 학교 일과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그들은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로 이동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붉은 천으로 감싸진 책을 한장씩 넘기면서 그들은 금지된 사랑과 폭력, 욕망의 이야기를 낭독하고 원작자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와 스토리에 매료된다. 모임은 매일 밤 이어졌다. 학교 규율 위반임에도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 속 인물들의 역할극에 점점 빠져든다. 급기야 자신들의 삶에 역할극을 투영하기 시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1990년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욱진 작가는 평생을 작품과 함께했다. 마지막 아틀리에였던 경기도 용인의 신갈 화실에선 5년 동안 220여점을 남기며 식지 않는 예술적 열망을 작품에 녹여냈다.장욱진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회화 세계를 펼친 작가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을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스스로 “나는 심플하다”고 강조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선 단순함과
영국의 동화작가이자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은 1986년 여덟 편으로 구성된 서사시 「스나크 사냥」을 발표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 항해를 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환상의 동물 스나크(snark)를 잡는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서사시에서 스나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지만 다수의 인물이 의인화한다. 각자가 품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 스나크란 존재로 발현되는 거다.갤러리2가 다섯명의 작가와 함께 각자가 마주하는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오종의 작품이 출발하는 지점은 서사시에 등
공연장에 들어서면 인도 특유의 향내가 관객들의 코를 자극한다. 무대 앞쪽에는 인도 길거리에서 파는 다양한 물품이 진열돼 있다. 배우들이 건네는 인도의 전통 음료 ‘짜이’를 마시다 보면 공연이 시작된다. 화면 중앙에 있는 스크린에는 인도에서 찍은 배우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관객들은 어느새 인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연극 ‘인디아 블로그’는 ‘여행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듯 무대 위에 올린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기획된 창작 연극이다. 색다르고 신선한 연출로 2011년 초연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