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지역의 인문예술공동체

시인보호구역 전경 

지난해 눈물을 머금고 ‘안녕’을 고한 시인보호구역이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왔다. 시인보호구역은 대구를 기반으로 동네 사랑방과 같은 문화예술공간이자 문화예술공동체로 기능해왔다. 약 8년간 활발히 문화 행사를 진행한 시인보호구역이지만, 작년 말 젠트리피케이션과 자금난 등으로 세 번의 이사 끝에 아쉬운 이별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후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시인보호구역을 사랑했던 시민들 사이에서 ‘시인보호구역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손길을 모은 끝에 시인보호구역은 북구에 새 둥지를 틀었다. 뉴스페이퍼는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책임지는 시인보호구역의 재개장을 맞이해 시인이자 문화기획자로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고 있는 정훈교 시인을 만나보았다.

시인보호구역에 전시된 시구

Q. 재개장을 축하드립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보호구역이 이어질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재개장이 된 사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재개장 하게 되었나요? 그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 우선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질문처럼 정말 재개장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작년 10월쯤 뉴스페이퍼 신문사에 <슬프지만, 시인보호구역 안녕!> 제목으로 칼럼을 실었을 때는 정말 ‘슬프지만, 시인보호구역 안녕’이었습니다. 

여타의 독립책방을 겸한 공간들이 자금난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인보호구역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2012년부터 ‘시인보호구역’ 이름으로 공간을 운영했는데, 소위 돈 되는 일이 아니었지요. 지역에서는 “사회적기업이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요. 그만큼 사회적 가치 확산에 힘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일이고 지자체의 지원이나 후원을 받는 일이 아니니, 경영은 늘 힘들었습니다. 그간 회사 다닐 때 모아둔 퇴직금, 적금, 보험 해약 그리고 대출을 받으면서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확고한 대의(大義)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에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재간이 없었지요. 마지막 보루였던 대출도 더 이상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쉽고 아쉬운 일이지만 문을 닫는 일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이 칼럼의 조회 수를 보니 1만2천회가 넘더라고요. 지역은 물론이고 타지역에서도 많은 관심을 주셨다는 것인데, 이 자릴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칼럼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보호구역 현황을 솔직하게 쓴 글이었는데, 그동안 시인보호구역을 찾았던 분들이나 멀리서 응원을 보내셨던 분들이 문을 닫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는지는 모르셨죠. 그래서 어떤 분은 인터뷰하러 오셨다가, 울면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요. 다른 분들도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미안하다라는 분도 많이 계셨고요. 당시 MBC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했고, 그 무렵 시인보호구역을 자주 찾아주셨던 분들 위주로 일명 ‘시인보호구역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답니다. 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몇 년은 좀 쉬고 나중에 다시 열려고 했는데, 이분들이 먼저 대책회의를 좀 갖자. 우리가 얼마씩 낼 테니 살려보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는 쑥스러워서 미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는데, 정말 제 심장은 뜨거운 눈물로 가득찼었지요.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에 일명 <시인보호구역 살리기> 시낭송 콘서트가 처음으로 열렸고요. 2020년 새해에 들어서서, 많은 분들이 모여 회의를 갖고 일명 <시인보호구역 문화살롱>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SNS 단체대화방에 100명 넘는 분들이 함께 해주셨고, 어떤 분은 정기적으로 얼마씩 후원을 하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행사나 이전할 때 일손을 보태시기도 하셨고요. 

지금은 DAUM에 시인보호구역 카페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6월에 재개장했는데, 모두 우리 <시인보호구역 문화살롱> 회원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심지어 오픈식도 이분들이 다 챙겨주셨습니다. 또 재개장을 위해 밤낮으로 함께 했던 소설 쓰는 이진리 님, 독립문학예술잡지 책임디자이너인 한글 님. 이 두 분이 없었다면 재개장은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은 이 두 분께서 시인보호구역 매니저로 함께 운영하고 계시고요. 시인보호구역은 이제 개인사업장이 아니라, 명실상부 지역민이 함께 하는 사회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시인보호구역 내부

Q. 시인보호구역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새로운 공간도 의미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으신지요.

⇒ 2012년 김광석거리에서 시작해, 김광석거리가 소위 ‘뜨는 곳’으로 바뀌면서 결국 2014년 말쯤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쫓겨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회사를 다니면서 하던 때라, 그저 즐겁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2015년 봄, 사직서를 내고 전념하게 되었는데요. 이미 이때는 ‘좋아서 즐거워서’라는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명감 없이 개인적인 만족으로 돈 안 되는 일에 1억 넘게 쓰는 바보가 있을까요. 

2020년 지금도 마찬가지만 지역에서는 등단한 젊은 작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012년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은 더욱 어려운 환경입니다. 누군가가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지역문학은 종국에는 멸종되겠구나’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운영하는 중입니다. 

우여와 곡절을 지나 2020년 여름, 다시 서게 되었는데 ‘시인보호구역도 조금은 더 젊어져야겠다’ 그리고 ‘시인보호구역이 중심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분들이 중심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동안 행사나 프로그램도 개인에서 참여자, 독자, 관객 중심으로 변모하려고 합니다. 

시인보호구역은 설립 당시부터 인문예술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연령과 계층을 떠나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공간에서는 기존보다 더 많은 분께 조언을 구하고 듣고 있습니다. 좁게는 문학, 넓게는 문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저변 확대에 좀 더 고민하려고 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조금씩 더 다가가겠습니다.

Q. 그간 많은 작가들이 찾아 왔다 갔습니다. 앞으로도 시인 초청회가 있을 예정인지요?

⇒ 네, 맞습니다. 그간 정말 많은 작가분들이 다녀갔습니다. 도종환, 류시화, 김용락, 이하석, 손택수, 박준, 박소란, 문보영, 유용주, 손미, 황종권, 김성규, 윤석정, 박승민, 윤일현, 박방희, 조동범, 박남준, 하린, 이원규, 강병융 등등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일명 <촉촉한 특강>이라고 해서 초청 작가의 작품이나 이야기를 듣고, 독자 낭독의 시간을 갖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거고요. 문학의 텍스트 방식뿐만 아니라, 이제는 마임이나 노래 등을 겸한 낭독콘서트와 함께 하는 <촉촉한 특강>이 될 것입니다. 

곧 8월 29일에는 시인 손미 씨와 시노래 가수 박경하 씨를 모시고 낭만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후에는 시노래마을 대표인 신재창 씨, 그리고 시인 주영헌·김승일 씨를 모시고 가을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아마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풍성하고 따뜻한 <촉촉한 특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대해주셔도 좋고요, 또 시인보호구역과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셔도 됩니다.

시인보호구역 내부

Q. 문화운동가로서 정훈교 선생님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 제가 처음에는 문화운동가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문화기획자인지도 몰랐고요. 2017년 대구문화재단 생활문화제 준비 단계에서 당시 문화기획자를 맡아 주시면 안 되겠냐고 찾아왔었는데, 그때 알았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제가 문화운동가, 문화기획자가 되어 있었던 거죠. 저의 신념과 행동을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문화운동가가 되었나 봅니다. 제 신념은 시인보호구역 설립취지에 다 녹아있습니다. 설립취지의 핵심은 신진예술가 발굴 및 지원, 문학 및 문화예술의 저변확대, 따스한 인문예술공동체 만들기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12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며 다짐했던 마음.

저는 시만 쓰고 싶었습니다. 시집만 읽고 싶었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저는 비록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지만, 다음 오는 분들은 그 길에 다가갈 수 있도록 힘써보자, 이런 각오였습니다. 평소에 음악인, 미술인, 연극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와 교류하다 보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의 환경적인 측면까지도요.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또는 직장을 다니면서 예술 활동을 하시더라고요. 물론 다 그렇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렇게 문학 외에도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현재의 제 모습이네요. 

실제 문화기획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축제나 행사 때 총괄기획이나 감독을 맡기도 했고요. 또 문화운동가로서는 대구광역시 관광자문위원, 대구광역시 행복북구문화재단에서 추진하는 문화도시 추진위원이기도 하고요. 또 사단법인 한국문화예술관광진흥원을 설립해서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역시나 회사를 그만두며 다짐했던 신념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 다짐을 잊지 않고 쉼 없이 나가려고 합니다. 부족하더라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인보호구역에서 발간하는 독립문학예술잡지

Q.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건 자본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인보호구역의 자본 건전성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 그렇지요. 아주 정곡을 찌르는 질문입니다. 그동안 운영을 해보니 자본이 없으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하고, 좋아하는 분들과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작년과 올해 일을 겪으며 정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대표 아닌 대표의 길을 가야하는구나, 하고요. 그래서 자본 건전성을 위해 문화예술 사업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2016년 출판사를 등록하고 주춤했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출판 사업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이 연장선에서 시인보호구역 시인선(시보 시인선)을 시작했고요. 이미 독립출판 작가의 도서와 등단 시인의 시집도 여러 권 냈었고요. 지자체의 도서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미뤄왔던 영상촬영(문학비디오 등) 제작에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미 서너 번 문학영상을 촬영해 호평을 받았고, 제작 의뢰도 받고 있습니다. 외에도 홈페이지를 리뉴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홈페이지는 8월 중순쯤에 만나실 텐데요, 온라인 쇼핑몰도 겸할 예정입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내용인데, 시인보호구역 제주도 지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당장에는 실현할 수 없지만, 내년 하반기에 실현 가능하도록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시인보호구역 체인점에 대한 구상도 하고 있고요. 

또 2018년·2019년 청소년 독서문화캠프(문화체육관광부 2년 연속 선정) 경험을 살려 청소년 독서캠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미 만화, 사진, 미술, 음악, 문학 등으로 다양한 독서문화캠프 경험이 있고, 2년 연속 선정으로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지자체나 교육기관 등과 연계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 또한 관심과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이외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남겨주세요.

⇒ 우선 재개장에 대한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신, 뉴스페이퍼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시인보호구역은 이미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 개인이 아닌 따듯한 시스템의 정착으로 시인보호구역 운영을 매뉴얼화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본이 너무 없어서, 지금은 물론 어렵고요.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 곧 <협동조합 시인보호구역>으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월 중에 공식인가를 받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인보호구역이 사라지거나 늙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늘 아낌없는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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