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나오는 LH 혁신안
전관 영향력 혁파에 초점 맞춰
공공주택에 경쟁체제 도입 추진
LH 마지막이란 각오로 실천해야

LH는 수차례 혁신안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마지막이란 각오로 혁신안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LH는 수차례 혁신안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마지막이란 각오로 혁신안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는 혁신을 강조하는 조직이 많다. 정치권과 정당, 국회와 정부는 물론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불신이 큰 곳일수록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여론을 살핀다.  

내년 제22대 4·10 총선을 석달여 앞두고 각종 혁신 방안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는 발표만 그럴싸할 뿐 이내 잊히고 만다. 혁신 방안이란 것도 진정 민생과 국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잠시 위기를 모면하거나 선거 때 표를 노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것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에 따른 후속 조치다. 공공주택 시장에서 LH 독점을 깨고, 입찰·설계·감리 등 아파트를 짓는 모든 과정에서 LH 전관前官의 영향력을 혁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LH는 그동안 공공주택 사업을 독점해왔다. LH가 발주하는 연간 10조원 규모 물량을 따내기 위해 설계·시공·감리업체들은 퇴직 전관들을 채용한다. LH의 독점과 전관이 만들어낸 부실 시공·관리 소홀의 실상은 ‘철근 누락’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이번 혁신 방안에서 LH의 공공주택 독점 공급자 지위를 허물기로 했다. 민간 건설사가 LH와 경쟁해 공공주택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퇴직자 취업 심사 대상을 2급에서 3급 이상으로, 대상 기업도 200여개에서 44 00여개로 늘린다. 안전 항목을 위반하면 일정기간 LH 사업 수주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한다. 

공공주택의 품질과 사후 서비스가 떨어지는 이유로 LH 독점이 지적된다는 점에서 민간을 참여시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 이참에 공공주택의 72%를 공급하는 LH의 주택 건설 기능을 상당 부분 민간으로 넘기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실행 단계에서 유념할 부분도 있다. 민간 참여를 늘리면서도 공공주택의 분양가와 임대료가 오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공공주택 사업은 이익 추구보다 서민 주거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공공주택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참여하는 민간 건설사에 공공기관 사업 입찰 시 가산점 등 다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는 검증 체계와 규제가 LH 아파트의 분양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긴요하다. 안전 점검은 꼼꼼히 하면서도,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거나 공사기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 현장 매뉴얼이 요구된다. 설계·시공·감리 사업자 선정권을 조달청 등에 이관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전관 카르텔을 막을 장치도 절실하다.    


LH의 혁신 방안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3월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를 선정하기 전에 땅 투기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조직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다짐하며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듬해 LH 혁신 점검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올 1월에는 내부통제와 경영관리를 강화하는 2차 혁신안이 나왔다. 매번 전관 폐해 근절책을 담았지만 여태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정부와 LH의 실천이 미흡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이번 LH 혁신안에서 “LH 투기 사태 이후 두차례 혁신 방안을 마련했으나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과거 혁신안이 내부통제 강화와 조직·정원 감축에 치중한 나머지 LH의 높은 시장 영향력에 따른 이권 해소 등 근본적 논의가 부족했다고 반성했다. 

국토교통부가 인정했듯 LH의 과도한 이권에 대한 통제와 상호견제 시스템 부족으로 인천 검단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4월)와 철근 누락 사태(7·9월) 등 부실이 잇달아 드러났다. 국토부가 무량판 구조 아파트를 전수 점검한 결과, 민간 아파트는 단 한건의 철근 누락이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LH는 22개 현장에서 철근 누락이 적발됐다.

LH의 고질병을 바로잡는 일이 정치일정의 영향을 받아선 곤란하다.[사진=연합뉴스]
LH의 고질병을 바로잡는 일이 정치일정의 영향을 받아선 곤란하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혁신안의 핵심인 공공주택의 민간 경쟁체제 도입을 위해 내년 총선 이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LH의 고질병을 바로잡는 일이 정치일정의 영향을 받아선 곤란하다. 그렇지 않아도 고금리 및 공사비 급등 여파로 민간·공공 주택의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회를 설득해 관련 입법을 서두르고, 개혁 조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LH 혁신 방안이 비슷한 내용으로 잇달아 나오는데 별 성과가 없자 국민 불신과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LH 혁신안이 이번에도 그렇고 그런 ‘혁신 시리즈’ 선언에 머물면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림은 물론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LH 혁신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강력히 실천해야 마땅하다. ​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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